나의 첫 크루즈 여행은 바다가 아닌 강에서 시작됐다. 겁도 없이 혼자서 나일강 크루즈 배에 올랐던 게 30년도 더 전의 일이다.
생애 첫 해외여행, 그것도 홀로 떠난 여정에서 카이로에 도착한 나는 나일 크루즈가 이집트 여행의 백미라는 말만 듣고 여행사를 찾아가 무작정 예약부터 했다.
그런데 여행사가 연결해 준 크루즈 투어는 이미 예약돼 있던 독일인과 프랑스인 그룹에 동양인 여자 혼자 불쑥 끼어든 형식이었다. 막상 배에 올라타고 나서야 나 혼자만 유일하게 영어권(아무리 짧아도 내가 할 수 있는 언어는 영어뿐이었으므로) 승객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어찌나 당황했던지.
가이드는 독일어와 프랑스어로만 설명했고, 나는 그 말을 들으며 혼자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하지만 그런 것도 잠시뿐, 시간이 흐를수록 답답함을 넘어 우울해졌다. 가뜩이나 첫 해외여행인데, 혼자서 배를 타고 내리는 것도 자꾸 놓쳐서 크루즈 내내 긴장을 놓을 수가 없었다. 저녁에 열리는 선상 파티에도 나가지 않고 선실에 틀어박혀, 대화에 대한 갈증을 일기에 쏟아냈다. 그때의 일기를 보면 불안과 외로움, 그리고 하루라도 빨리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만 한가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일강변의 신전들, 강 위에 떠 있는 펠루카(이집트의 돛단배), 그리고 사막을 걷는 낙타들… 크루즈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너무나도 아름다웠다. 언젠가 내 짝을 만나게 되면 꼭 다시 한번 오리라는 막연한 상상을 하기도 했다.
아무리 황홀한 풍경이라도 함께 나눌 사람이 없다면, 그 감동과 즐거움도 반감된다는 걸 온몸으로 깨닫게 된 여행이었다.
첫돌 이후로 세계 곳곳을 함께 여행했던 아들과의 마지막 여행 역시 크루즈였다.
중학생이 된 아들과 단둘이 떠난 남미 크루즈 여행. 하지만 그 여행은 후회만 가득 남았다. 반항심이 차곡차곡 쌓여가던 사춘기 아들은 마지못해 내 말을 따랐고, 나는 내가 옳다고 믿는 방식대로만 여행을 이끌었다. 여행이 끝난 후 본격적인 사춘기가 시작되면서 아들과의 가슴 아픈 전쟁이 이어졌다.
결국 모든 문제는 나에게 있었다는 걸 깨달은 후 아들과 함께 했던 여행의 추억을 담아 <엄마, 당신은 모른다>라는 제목의 책을 출간하기도 했다.
그 책 속에 아들이 쓴 글을 보면 아무리 남들이 보기에 멋진 여행이라도 그것을 즐기는, 즐기고자 하는 사람의 마음이 따라주지 않으면 그저 의미 없는 여정일 뿐이라는 단순한 진리를 일깨워준다.
배부른 소리일지 모르겠지만, 나는 사실 여행을 그리 달갑게 여기지 않는다. 어렸을 때는 그저 아무 생각 없이 부모님만 따라다녔지만, 조금 더 나이가 들면서 내가 왜 이러고 있나 하는 생각을 하며 점점 여행을 거부하기 시작했다.
여행을 본격적으로 거부하고, 피하기 시작한 때는 중학생 때부터다. 내 거부에도 불구하고 중학교 1학년 여름에는 유럽 버스여행을, 겨울에는 남미 크루즈를 갔다 왔다.
두 여행은 모두 외국인들과 함께 한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그 공통점은 외국인과 말을 섞기 싫어하는 나에게 큰 부담으로 다가왔고, 이 여행들, 특히 남미 크루즈를 통해 나는 해외여행을 매우 싫어하게 되었다.
크루즈가 우리에게 과분한 여행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다. 다만 확실한 것은 보통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여행 중에서 가장 사치스러운 여행인 것만은 사실이다. 한 배에 층수가 몇 개나 있고, 방 상태는 웬만한 호텔보다 좋은 수준이다. 식당은 고급스러운 음식들로 가득하고, 오락과 여가 시설까지 최고급이었다. 농구장과 골프장, 수영장까지 구비되어 있었고, 수영장 앞의 무대에서는 매일 밤 파티가 열린다.
하지만 나에게 이런 고급스러운 환경은 오히려 부담스러운 것이었다. 나는 여행을 즐기기는 했으나 마음 한 구석에는 항상 불편함이 자리 잡고 있었고, 그 불편함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심화되었다.
크루즈 배에 탄지 일주일 정도 되었을 때쯤, 함께 어울리던 콜롬비아 아이들(나보다 1살에서 2살 정도 많았다)이 나를 따돌리기 시작했다. 심한 것은 아니어서 관점에 따라 그냥 장난으로 볼 수도 있고, 인종차별이라고 할 것도 아닌 정도지만, 그 사건은 그때까지 몇 년 동안 축적되어 있던 내면의 외국인에 대한 트라우마를 표출시켰다. 그때부터 여행은 나에게 가장 싫은 것이 되었다.
<엄마, 당신은 모른다>에서
아들과의 크루즈 여행에서 나는 책을 벗 삼아 휴식을 즐기며 여행을 만끽했다. 기항지에서는 볼거리를 찾아 부지런히 돌아다녔고, 배에서는 다양한 이벤트를 즐기고, 스파와 조깅도 꾸준히 했다.
아들에게도 운동을 하거나 놀 시간을 충분히 줬다고 생각했지만 그 당시 한참 빠져들었던 게임도, 친구도 없이 주로 혼자서 놀아야 하는 아들 입장에서는 그걸 진정한 여행이라고 할 수 없었을 것이다.
배에 머무는 날이면 야외 테라스 테이블에 앉아 학원에서 받아 온 수학 문제집을 풀게 했다. 풀장에서 근무하던 크루즈 직원이 아들의 문제집을 들춰보고 빙그레 웃으며 지나가기도 했다. 그 웃음이 무슨 뜻이었을까?
그때는 신경조차 쓰지 않았지만, 지금 돌아보면 얼굴이 화끈거릴 만큼 무지하고 미련한 행동이었다. 나 역시 여행지에서 숙제를 해야 했다면 싫었을 텐데, 그때는 그것이 효율적인 방법이라 굳게 믿고 있었다.
남미 크루즈 여행을 마지막으로 아들은 가족 여행을 완강히 거부했고, 본격적인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우리의 관계는 최악으로 치달았다. 돌이켜보면 모든 문제는 한 인간으로서 독립하려는 아들에 대한 존중 없이 내 뜻대로 판단하고 결정해 온 나에게 있었다. 내 잘못을 깨닫고 우리의 관계를 회복하기까지는 수년의 세월이 걸렸다.
아들과 함께 했어도 결국 나 혼자만의 여행과 다를 바 없었던 남미 크루즈
비록 아픈 추억 속의 크루즈로 이야기를 시작하지만 이 경험들은 크루즈 여행에서 함께 하는 이의 존재가 얼마나 소중한지를 알려준다.
나는 크루즈 여행이 좋다.
한 번 배에 오르면 무거운 짐에 대한 부담도, 이동에 대한 불편함도, 식사 걱정도 봄눈 녹듯 사라져 버리는 크루즈는 잘만 고르면 가성비 최고의 여행이다.
시간의 여유가 생긴 후로는 마음에 맞는 친구들, 자매들, 남편, 그리고 남편 친구 모임까지, 기회가 있을 때마다 나는 여행 일정에 크루즈를 끼워 넣었다.
지금까지 지중해, 발트해, 카리브해, 남아메리카에서 남극까지 다양한 크루즈를 타고 바다를 누볐다. 여행을 다녀와 경비를 정산해 보면, 비행기나 육로로 이동하는 여행보다 오히려 더 경제적인 경우도 많았다.
크루즈 여행의 진정한 즐거움은 혼자가 아니라 마음 맞는 사람들과 함께할 때 더욱 빛난다.
그동안 시행착오를 거치며 터득한 소소한 팁과 나만의 크루즈 여행법을 공유해 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