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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크루즈 여행의 장단점

by Bora

가기 힘든 곳을 쉽고 편하게 갈 수 있다는 것이 크루즈 여행의 가장 큰 장점이다.


남미 대륙 끝에 외따로 떨어진 포클랜드 제도나 카리브해의 작은 섬들, 유럽 최북단 노드캅... 이런 곳들은 크루즈가 아니라면 훨씬 더 많은 시간과 노력, 경비를 들여야만 가 볼 수가 있다.


내 인생 최고의 장소였던 남극 대륙 파라다이스 베이.

바다는 물결조차 일지 않을 정도로 잔잔하고 사방의 설산과 빙하들이 제각각의 자태와 위용으로 배 주변을 둘러싸고 있던 그 순간, 천국이 바로 그곳이었다.


크루즈가 아니라면 내가 어떻게 남극의 빙산 사이에서 산책할 수 있었을까.


조깅 트랙에서 빙산과 유빙을 벗 삼아 걷던, 시간이 천천히 흐르기를 소망하던 순간들은 크루즈 여행이었기에 가능했다.




막연히 비쌀 것이라고 알려진 크루즈 여행은 의외로 경제적이다. 인터넷을 뒤져가며 직접 찾아 예약한 크루즈는 신문 광고에서 보던 값비싼 요금의 절반에 불과했고, 여느 패키지여행보다 저렴하면서도 훨씬 편안했다.

한밤중에 호텔에 도착해 허겁지겁 짐을 풀고, 새벽이면 눈을 비비며 일어나 하루의 절반을 버스나 비행기에 갇혀 보내는 여행. 그리고 지친 몸을 이끌고 유명 관광지 앞에서 잠깐 멈춰 인증 사진을 남긴 뒤 다시 이동하는 일정. 이런 패키지여행이 점점 사라지고 있지만, 여전히 자유여행이 막연한 사람들에게 크루즈만큼 안성맞춤인 방식도 없다.


숙박, 이동, 식사가 모두 포함된 크루즈는 특히 물가가 높은 북유럽을 여행할 때 더욱 빛을 발한다.

빌 브라이슨의 <발칙한 유럽 산책>에서 북유럽 여행을 그는 이렇게 표현한다.

‘초콜릿 바를 하나 사면 거슬러주는 잔돈에 경악을 금치 못하고, 그보다 조금이라도 더 비싼 물건을 사면 통한의 눈물이 절로 나온다. 스웨덴에서 뭔가를 사 먹는다는 건 가슴이 미어지는 경험의 연속이다’라고.


이런 북유럽을 알뜰하게 여행할 수 있었던 것도 크루즈 덕분이었다.

스칸디나비아의 매혹적인 풍경을 꿈꾸면서도, 사악한 북유럽 물가를 떠올리며 여행 계획을 접어두곤 했다. 그러던 중, 홀랜드 아메리카 라인이라는 크루즈 선사의 마감 임박 특가 상품을 우연히 발견했다. (사실, 틈만 나면 크루즈 상품을 검색했던 터라 ‘우연’이라고 하기엔 어폐가 있다.)

마침 칠순을 맞이하는 큰언니와 여행을 계획하던 참이었는데, 세 자매의 일정이 다행히 맞아떨어졌다. 출발 2주 전, 일사천리로 크루즈와 항공편을 예약했다.


내가 선택한 북유럽 발틱해 크루즈는 코펜하겐에서 출발하여 에스토니아 탈린, 러시아 상트 페테르부르크에서 1박 2일, 핀란드 헬싱키, 스웨덴 스톡홀름, 독일 로스토크, 독일 킬을 거쳐 코펜하겐으로 돌아오는 10박 11일짜리 크루즈였다.


결과적으로 우리는 북유럽 크루즈 10박 11일, 항공포함 12박 13일의 여정을 일반 유럽 패키지여행보다도 훨씬 저렴하고 알차게 다녀왔다.

패키지여행보다 자유롭고 넉넉한 일정에 비용도 절감되는 크루즈만의 장점을 마음껏 누린 여행이었다.




몸이 불편해도, 나이가 들어도, 체력이 약해도 일단 배에만 올라타면 오로지 즐길 일만 남는 것 역시 크루즈 여행의 장점이다.


아침에 배가 기항지에 도착하면 가벼운 손가방 하나 들고 동네 마실 가듯 도시를 둘러보다가 저녁이면 내 집에 돌아오듯 편안하게 들어가 잘 차려진 식사를 즐긴다. 이런 여유와 편안함은 다른 어떤 여행에서도 쉽게 누릴 수 없는 경험이다.


크루즈에서는 부부 중 한 사람이 휠체어를 타고, 다른 한 사람이 밀어주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 나는 그 광경이 그렇게 보기 좋았다. 탄 사람도, 미는 사람도 편안하고 행복해 보였다. 물론 겉으로 보이는 모습이 전부는 아니겠지만, 장애가 있어도 여행을 꿈꿀 수 있다면 크루즈만큼 접근하기 쉬운 여행도 없지 않을까?




바다 위를 떠다니는 호텔인 크루즈에서는 어떤 리조트보다도 더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다.


수영장, 피트니스 센터는 물론이고 조깅 트랙, 저녁마다 펼쳐지는 공연들, 에어로빅, 댄스, 요가 코스까지 하루 종일 배에 머무는 날에도 심심할 틈이 없다.


식사는 오히려 건강을 위해 과식을 조심해야 할 정도다. 아침에 눈을 떠서 잠들 때까지 다양한 음식이 무제한으로 제공된다. 저녁이면 몇 가지 코스든 상관없이 원하는 대로 주문할 수 있는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에서의 정찬은 다른 여행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호사다.




크루즈 여행에는 물론 단점도 있다.


사실 크루즈 여행은 주마간산식으로 여러 지역을 스치듯 지나갈 수밖에 없는 여행법이다. 기항지에서는 보통 한나절, 혹은 반나절만 머물기 때문에 충분한 시간을 들여 자유롭게 둘러보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틀 연속 기항하는 경우를 제외하면 야경을 즐길 기회도 거의 없다. 일반적인 자유여행처럼 시간의 구애를 받지 않고 하릴없이 머문다거나 긴 시간을 들여 깊이 있는 탐방을 할 수는 없다.


크루즈 여행은 환경오염 문제에서도 자유로울 수 없다. 여객기와 크루즈선은 막대한 온실가스를 배출하며, 기후 변화에 영향을 미치는 주된 요인 중 하나로 꼽힌다.

배에서 쏟아내는 엄청난 양의 음식과 남겨지는 쓰레기를 보면, 종종 죄책감을 느끼기도 한다. 배에서 소비되고 남은 음식물 쓰레기는 어떻게 처리되는 걸까?


크루즈 여행 중에는 탄소를 잔뜩 배출하다가 집에 돌아와서는 우유팩을 깨끗이 씻고, 페트병의 비닐을 정성껏 분리하며 종이박스의 스티커를 떼어내는 내 모습을 보면, 스스로도 모순적이라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내가 크루즈를 타지 않는다고 그 배가 출항하지 않는 것도, 비행기가 뜨지 않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가지고 스스로 합리화할 수밖에.


또 다른 단점으로는 뱃멀미가 있다. 하루 종일 배에서만 생활해야 하니 멀미를 걱정하는 사람도 많다. 하지만 경험해 보니 실제로 멀미를 하는 경우는 드물다. 물론, 파도가 워낙 심한 날이나 유독 멀미에 예민한 사람은 영향을 받을 수도 있겠다. 개인차가 있는 만큼, 걱정된다면 멀미약을 준비하는 것이 좋다.


인터넷 연결 문제도 있다. 크루즈가 대도시와 가까운 지역을 항해할 때는 문제가 없지만, 카리브해의 섬이나 남미 대륙 끝의 드레이크 해협처럼 외딴 바다를 지날 때는 며칠 동안 완전히 세상과 단절될 수도 있다. 배에서 제공하는 인터넷 패키지를 구매하더라도 연결이 불안정해 기본적인 웹서핑조차 어려울 때가 많고, 동영상 시청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나는 오히려 세상과의 그런 단절을 즐겼다. 복잡한 세상과 떨어져 있다는 것이 어떤 면에서는 홀가분한 자유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불편함으로 다가올 수도 있을 것이다.




나는 여행을 사랑한다. 세상 어딘가, 아직 내 발길이 닿지 않은 곳이 있다면 하나라도 더 품고 싶다.

크루즈 배에서 바라본 남미 최남단 도시 우수아이아.


크루즈 여행에도 단점은 있지만, 그보다 훨씬 더 많은 장점들이 있기에 지금도 나는 틈만 나면 크루즈 코스를 뒤적인다.


어딘가로 떠나고자 할 때, 가성비 좋은 크루즈를 골라 여행의 한켠에 배치하면, 정이 길어져도 내 집처럼 온전히 쉬며 지친 몸과 마음을 재충전할 수 있다. 그렇게 힘을 비축한 뒤 이어지는 여행은 더욱 깊고 풍요로워진다. 그것이 내가 선호하는 여행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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