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내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나는 16년 차 물리치료사이다. 24살에 물리치료사가 된 나는 설렘 반 두려움 반으로 다가올 날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대학병원으로 실습을 다녀온 후 국가고시 시험을 치르고 난 직후라서 그런지는 몰라도, 사실 자신감에 차 있는 상태였다. 대학병원은 신경계 물리치료실이어서 나도 신경계 물리치료사가 되고 싶었으나 경쟁률에 뒤처져 개인병원으로 가게 되었다. 대학병원에 가지 못하고 개인병원에 가게 된 나는 무척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그곳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내가 생각했던 물리치료사의 삶이 아니었다.
환자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전쟁 같은 시간이....
어르신들이 물리치료를 받으러 물밀듯이 몰려왔다. 핫팩만 싸고 전기치료 패드만 붙이기에도 정신이 없었다. 이건 내가 생각했던 치료사와 거리가 멀었다. 하루하루 핫팩 싸고 전기치료 패드를 붙이는, 그냥 아르바이트생이 된 기분이었다. 물론 도수치료를 하고 있는 선배 물리치료사 선생님들은 멋져 보였다. 하지만 난 그 멋져 보이는 것을 할 수 없었다. 실력도 안 되고 경력도 안 되기에 임상에 나와서도 공부를 계속해야 한다는 건 알았지만 업무가 끝나고 나면 피곤해서 공부할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러던 중 갑자기 이전에 떨어졌던 종합병원에서 추가로 인원을 모집했고, ‘에라 모르겠다’ 하며 냈더니 덜컥 합격이 되었다. 지금 병원에 갑자기 퇴사해야 했으므로 죄송한 마음이 있었지만 내가 원하던 신경계 물리치료실로 갈 수 있다는 생각에 주저 없이 이직을 선택했다. 이직한 뒤, 그제야 내가 원하던 신경계 물리치료사가 되었다. 그러나 이 또한 만만한 건 아니었다. 학교에서 배운 것과 실제 치료 현장은 너무나도 달랐다. 신입인 나에게 치료를 받고 싶어 하는 환자는 없었다. 여기에서도 난 그저 아르바이트생 같은 느낌이었다. 환자 중에서 발병한 지 2년 미만인 환자분은 ‘급성기’*로 전문 신경계 물리치료사 자격을 취득해야 치료가 가능하였고, 난 발병 후 2년이 지난 환자분들만 치료할 수 있었다.(*급성기는 건강심사평가원 기준에 따라서 달라진다. 예전에는 신경계 환자의 경우 2년 미만을 급성기로 보았고, 요즘은 6개월 미만을 급성기로 보고 있다.) 그러나 모든 환자가 으레 그러하듯이, 당연히 신입이었던 내가 아닌 실력이 좋은 치료사에게 치료받고 싶어 했다. 그러므로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멍하니 지켜보며 전기치료만 하는 일이었다. 힘들어하던 내 모습이 보였는지 선배가 술 한잔을 권유했다.
술 한 잔, 두 잔 마시면서 선배의 말 한마디가 내 마음에 비수를 꽂았다.
환자가 무섭니?
치료사가 환자가 무서워서 되겠어?
진짜 치료사 선생님 소리가 듣고 싶다면 네가 먼저 준비가 되어야 한다. 그전까지는 자존심 따위는 버려야 한다.
그날 밤은 오만가지 생각이 내 머릿속을 괴롭혔고, ‘자존심보다 배움에 더욱 집중하자’ 마음을 먹은 뒤 그다음 날부터 나의 행동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다른 선생님들의 치료하는 모습들을 계속 지켜보며 머릿속으로 계속 공부를 시작했다. 눈빛이 달라 보였는지 술을 사주신 선배 선생님께서 나에게 환자 한 분을 맡아서 치료해 보라고 권유를 했다. 두렵긴 했지만 좋은 기회라 생각하고 내 첫 번째 환자분의 치료를 시작하였다. 뇌졸중이 발병한 지 15년 되신 할아버지였다. 휠체어를 타고 다니셨는데, 사실 일어나는 것도 힘든 환자였다. 보통 병원에서 1:1 치료 시간은 30분으로 정해져 있다. 그러나 할아버지는 나의 첫 번째 환자였고, 나는 욕심이 앞서기 시작했다. 나는 열정이 과다해서, 혹은 그 무엇도 고려하지 않고 환자에게 앉았다 일어나는 운동과 서있는 상태에서 균형을 유지하는 훈련만 계속 시켰다. 나는 아무런 기술도 없이 힘으로 환자를 붙잡고 운동을 시켰다. 원래 지정된 30분이란 시간은 터무니없이 부족하기만 했고, 나는 담당 환자가 없어 시간이 많았기에 50분 가까이 진행했던 것이었다. 다른 선생님께서 나에게 이런 말을 해주었다.
“열심히 하는 건 좋은데 시간은 지켜야지, 다른 사람들은 30분씩 치료하는데 너만 이러면 안 된다. 시간 지키면서 일하고 남은 시간에 전기치료나 다른 보조를 해라. 저분은 발병 기간이 너무 오래된 분이라서 어차피 더 이상의 기능 회복이 불가능하니까 그렇게까지 하지 말아라. 오히려 관절에만 더 무리를 가하게 될 거야.”
그때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죄송합니다” 뿐이었다.
다른 치료사들을 생각해서 시간만은 지켜야겠다 생각했지만, 내 첫 번째 환자분에 대한 마음은 놓을 수 없어서 30분 안에 최대한 운동을 많이 시키려 노력했다. 다른 선생님들은 나에게 ‘왜 굳이 왜 저렇게까지 하나’하는 안타까운 눈빛을 보내기도 했다.
치료가 시작된 후 6개월의 시간이 지났지만, 선배님 말씀대로 노력의 성과와 변화는 나타나지 않았다. 말 그대로 기능적 회복을 만들어 내지 못하고 환자분께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 것이다. 노력한다고 했는데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 더 좋은 치료 방법은 없는 것인지 답답하기만 했다. 선배들에게 물어보아도 이미 발병 기간이 너무 오래되어서 사실 저분은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말뿐이었다. 답답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내 담당 환자가, 그러니까 그 할아버지가 주변 눈치를 보며 슬며시 나에게 다가오더니 손을 잡는 것이었다. 그 손에는 꼬깃꼬깃 접힌 만 원짜리 하나가 있었다. 돈을 건네주는 할아버지의 눈시울은 붉어지더니 나에게 말했다. “나도 사실 알아, 더 이상 회복이 불가능하다는 거. 그래도 진심으로 이렇게 치료해 주어서 고맙네.”
그 말을 들은 나는 너무 죄송했고, 동시에 부끄러웠다. 아픈 사람들은 사실 내 몸이 어떤지 다 알고 있구나 본인의 몸이 어떤지. 이분이 나에게 고마워한 건 치료사로서 능력이 아닌 사람으로서의 고마움이구나.
이 일을 기점으로, 직접적으로 수술을 할 수 있는 의사가 아닌 물리치료사는 어떤 치료사가 되어야 할까라는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 스스로가 던진 이 질문이, ‘치료사’로서의 삶을 시작하게 해준 계기가 되었다.
내가 브런치를 시작한 이유는 물리치료사처럼 치료 기술 습득을 위한 것이 아니다. 내가 이 글을 쓰는 목적은 잠재적인 질환에서 벗어나고 좀 더 건강한 삶을 살기 위한 길을 제시하기 위해서다.
우리는 살면서 다음과 같은 상황을 한 번쯤은 겪어보았을 것이다.
“발목을 살짝 삐었는데 어떻게 해야 하지?“
“병원을 가기에는 그렇게까지 아픈 건 아닌데... 파스 붙일까?
“치마가 자꾸 돌아가.”
이런 것들은 그렇게 아픈 것이 아니기에, 병원 생각을 하지 않거나 혹은 불편하더라도 병원 가기가 꺼려질 것이다. 혹은 이런 것도 있다.
“우리 애가 걸음걸이가 이상하네.”
“나도 측만증인가?”
인터넷을 보다가 지레짐작 걱정이 된 적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체형 교정센터를 운영하면서 이러한 질문들을 정말 많이 들었다. 일상생활에서 우리는 생각보다 아프긴 한데 병원 가기는 모호하고, 불편하지만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 모를 때가 많이 있다. 병원에서 물리치료사로, 체형센터를 운영하는 트레이너로서 많은 사람과 만나보니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기초적인 지식이 부족해 많은 불편함을 겪는구나 하는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다. 조금의 기초지식만 있다면 통증의 상당 부분을 해소할 수 있을 텐데 말이다. 물론 내가 앞으로 쓰는 글을 통해 100% 해결된다고 장담하는 것은 절대로 아니다. 하지만 의사 또는 물리치료사처럼 전문적인 지식과 기술이 없더라도, 누구나 손쉽게 신체를 교정하고 통증을 해결할 수 있는 길잡이가 되어주리라 생각한다. 앞으로는 알고만 있어도 내 일상생활 속 건강과 체형관리에 도움이 되는 내용들을 그동안 있었던 나의 경험들로 풀어나가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