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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이데올로기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

by June H Mar 16.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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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때때로 어떤 주제를 놓고 대화를 나눌 때, '나는 그 대상 혹은 문제에 대해 이런 식으로 생각해.'라고 말하곤 한다. 이는 그 대상에 대한 자신의 이데올로기를 상대방에게 전달하는 것과 같다. 즉, 내가 어떤 사고의 틀로 그 대상을 바라보는지를 드러내는 말이 된다. 마찬가지로, '이건 이래야 돼, 저건 저래야 돼.'라고 말할 때도, 이에 대한 근거는 개인의 이데올로기에 있다. 정리하자면, 개인의 이데올로기란 어떤 대상을 생각하는 방식 내지는 방향을 의미한다. 이런 관점에서, 개인은 어떤 대상에 대해서는 특정한 이데올로기를 취하면서도, 다른 대상에 대해서는 이와 전혀 다른 이데올로기를 가질 수도 있다. 또한, 드물지만 거의 모든 대상에 대해서 하나의 이데올로기만을 취하는 개인도 존재할 수 있다.


그러나 특정 대상에 대한 개인의 이데올로기는 그저 형성되는 것에 가깝다. 즉, 타인과의 대화 같은 상호작용을 통해 어느 순간 나에게 그러한 사고의 틀이 있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지, 우리가 의도적으로 그것을 만들어 낼 수는 없다는 것이다. 나는 개인의 이데올로기가 특정 대상에 관한 경험과 그 경험에 대한 해석이 축적되면서 형성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특정 대상과 관련된 경험과, 이에 대한 해석이 쌓여 자연스럽게 해석의 방향성이 생긴 것. 그것이 이데올로기의 형성이라고 본다. 그런데 이데올로기의 형성의 바탕이 되는 특정 대상에 대한 경험은 개인의 환경, 상황, 그리고 맥락에 의해 제한되어 있다. 또한 그 경험에 대한 해석도 마찬가지로 환경, 상황, 그리고 맥락에 영향을 받는 우리의 무의식에 의해 자동적으로 처리된다. 이런 의미에서 본다면, 우리는 결코 특정 대상에 대한 이데올로기를 스스로 만들어냈다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환경, 정치, 사회, 역사 등의 특정 주제에 관하여 모두가 각기 다른 입장을 고수하는 것은 마땅히 그렇수 있는 것으로, 부정적으로 보지 않는다. 하지만, 예외적으로 '나' 자신에 대해서, '나는 이런 사람이다.'라고 말하는 사람과는 자연스럽게 거리를 두게 된다. 우리는 특정 대상에 대한 개인의 이데올로기가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는 인생 전체를 놓고 봤을 때, 그 대상에 관하여 접하는 경험이 상대적으로 적을뿐더러, 이미 쌓인 해석은 하루아침에 뒤집을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반면에, 그 대상이 나의 자아에 관한 이데올로기라면, 그것은 변하기 매우 쉽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우리의 몸에 국한된 존재로서, 매 순간 나 스스로를 경험한다. 그리고 스스로에 대한 경험은 항상 다르다. 어제의 나는 오늘의 나와 다르듯이 말이다. 그것은 경험적으로 누구나 알 수 있는 사실이다.


따라서, 어떤 이유에서, 어느 시점에 '나는 어떤 사람이다.'와 같은 자아에 관한 이데올로기가 형성이 되었다고 하더라도, 이것이 계속 유지되기란 어렵다. 그것은 모순 때문이다. 만약 스스로에 대한 형성된 이데올로기를 붙잡는다면, 그 순간부터 온종일 '나'를 경험하는 우리는 그것에 모순되는 나의 모습을 계속해서 마주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모순에 대하여 우리는 스스로를 속일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 스스로에 대해 형성된 이데올로기를 붙잡고 살아간다면, 그것은 매우 소모적인 일이 될 것이다. 그렇기에, '나는 이런 사람이다.'라는 이데올로기를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은 불행할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이데올로기와 다른 자신의 모순점을 마주할 때마다, 계속해서 고통을 느끼며, 그것을 애써 부인하기 위해 끊임없이 에너지를 쏟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데카르트의 유명한 명제가 있다. 때로는 이 명제를 뒤집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존재한다, 고로 생각한다." 나는 그저 존재하는 것이고, 나는 나의 생각을 완전히 통제할 수 없다. 만약 내가 '나는 이런 생각을 해야겠다.'라고 결정했다고 하더라도, 실제로 떠오르는 생각들은 의식적으로 결정된 것이 아니다. 그렇기에 나는 존재하고, 그 존재 위에 생각이 스쳐 지나갈 뿐이다. 나의 생각은 내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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