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
졸업장을 배송받는 시대에 나는 졸업식에 가기로 했다.
처음에는 나도 같은 마음이었다. 이게 뭔 대수냐 하는 마음말이다. 그래서 졸업식에 오겠다는 가족들에게 나도 안 가는 졸업식에 가서, 잘 즐기다 오시라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말했다. 그러자 할머니와 아빠는 그런 게 어딨냐며 졸업식은 무조건 가야 하는 거라고 했다. 이 말을 듣고 나는 졸업식에 집에 있을 계획을 포기했다. 안 가겠다고 버티다가 결국에는 끌려나가는 모습을 이 나이 먹고 연출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럴 만큼의 혈기도 없었다. 얼마 전, 친척 동생과 친구들로부터 졸업식에 가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나도 안 가볼까 했지만 역시나 나에게는 해당사항이 없는 이야기였다.
나름대로 한 번 튕겨봤지만 어림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된 나는 그냥 마음을 착하게 먹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다시금 졸업식에 대하여, 그 의미에 대하여 생각해 보았다. 졸업식은 서로를 축하하고 축하받는 자리다. 동시에 지난 4년간 나를 후원해 준 부모님과 교수님들을 비롯한 주변사람들에게 감사를 전할 수 있는 그런 자리이다. 모두가 행복한 인생에 몇 안 되는 순간이 바로 졸업식인 셈이다. 누군가 이 흔치 않은 기회를 포기할 만큼, 일생일대의 중요한 무언가를 하고 있냐고 물으면 그건 또 아니었기 때문에 애초에 나에겐 졸업식에 가지 않을 명분은 없었다. 이렇게 생각하니 갑자기 이 행사를 정말 잘 치러야겠다는 사뭇 진지한 마음이 들었다. 그렇지만 졸업식을 잘 치른다는 것은 이런 진지함과는 거리가 멀다. 그저 즐기면 되는 것이다.
그렇게 졸업식 날이 되었고, 나는 그간의 짧은 세월을 함께 보내온 이들을 향한 존중과 감사의 마음으로, 그 순간을 최대한 즐기고 왔다. 훗날 어떠한 미련이나 후회가 남지 않도록 지난 대학생활을 그곳에 훌훌 털어 버리고 왔다. 만약 졸업장을 배송받는 선택을 하였다면, 이러한 기쁨과 가벼움을 아마 느껴보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졸업장은 아무런 의미도 가지지 못한 채 책장 어딘가 구석진 곳으로 향했을 것이다.
사실 어떤 순간을 기념한다는 것이 나에게 있어서는 좀 낯설게 느껴진다. 왜냐하면 나는 항상 현실보다 조금 앞에 있는 미래를 바라보고 살아왔기 때문이다. 마치 지루한 수업이 끝나기만을 바라며 집에 가고 싶어 하는 그런 마음으로 말이다. 그래서 나는 살아온 습성대로 졸업식을 가지 않으려고 했던 것이다. 그렇게 하마터면 졸업장을 집에서 받아볼 뻔했고, 그렇게 또다시 아무것도 남기지 못한 채 흘려보낼 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