깁미깁미깁미
"언니 뭐 마실 거야. 뭐? 뜨거운 거 그래 알았어."
100미터 밖에서도 한국말은 영어를 뚫는다. 한국말이 총알처럼 민자의 귀를 관통한다. 민자 뒤를 돌아본다. 뽀글거리는 K 파마를 한 한국 아주머니 네 명이서 카운터 앞에 서 있다.
꿀꺽. 민자 마른침을 삼킨다. 온몸이 뻗뻗하게 굳어진다. 한국 사람들만 보면 민자 심장이 두근거린다. 오늘은 아무 탈 없이 지나가기를. 제발. 신이시여.
"얘한테 시키는 거야?" 아. 민자의 감이 빗나가지 않았다. 한국말로 주문을 받으려다 민자 한국말을 모르는 척 태연하게 영어로 아주머니의 주문을 받는다. "헬로"
"핫 커피 투." 아주머니 하나가 손가락을 안테나처럼 세워 민자 얼굴에 삿대질을 한다. "쟤보고 컵도 따로 달라고 해. 크림은 따로." 어느샌가 아주머니 하나가 테이블에 앉아 자리를 맡으면서 말을 했다. 쩌렁쩌렁한 한국말이 민자가 일하는 스타벅스를 점령한다."알았어" 아주머니 들 중 제일 영어에 자신 있어 보이는 아주머니가 주문을 한다.
"나눠먹게 컵도 달라고 해." 이번엔 다른 아주머니다. " 깁미 모얼 컵." 기미기미기미 갑자기 컨츄리 꼬꼬의 Gimme Gimme 깁미깁미 노래가 떠오른다.
민자 손길이 바쁘다. K 아주머니들이 주문한 오늘의 커피 두 잔, 그리고 여분의 컵 두 개를 챙겨 드린다. 아주머니는 고맙다는 땡큐 한마디도 없이 카운터에서 컵과 커피를 들고 사라진다.
"휴" 멀어져 가는 K 아주머니의 뒷모습을 보며 민자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찰나 테이블에서 한국말이 다시 들린다.
"언니 그거 있잖아 커피 젓는 거 그거 달라고 해. 그리고 크림도 따로 담아 달라고 해." 아까 커피를 받아간 그녀가 다시 민자에게 다가간다. " 깁미 크림." 민자 기계적으로 크림을 컵에 따른다. "스탑." 그녀가 손바닥을 피며 소리를 지른다. "투머치" 짙게 바랜 녹색 눈썹 문신 사이로 짜증이 배어 나왔다.
"아 언니 설탕도 달라고 해. 넉넉하게 달라고 해."
민자 설탕을 한 움큼 집어 아주머니에게 건넨다. 혹시 필요할까 싶어 냅킨과 스틱으로 된 꿀까지 건넨다.
"땡큐. 해브 어 굿데이." 민자가 먼저 아주머니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건넨다.
15년 전 민자가 처음 캐나다에 왔을 때, 부족한 영어 덕분에 커피 주문 하나도 제대로 못했던 날들이 생각났다.
'그래, 아마 영어가 서툴러서 그럴 수도 있어. 긴장되고 쑥스러워서 고맙다는 말을 못 할 수도 있지. 누군가에게는 영어로 그런 말을 하는 것이 어려울 수도 있으니까. 그래도 나중에는 다른 스타벅스에 가시면 그냥 땡큐라고는 하셨으면 좋겠다.' 민자 멀어져 가는 K 아주머니를 보며 혼잣말을 한다.
“땡큐”
고맙다는 말 한마디와 진심 어린 미소가 얼마나 큰 차이를 만드는지, 민자는 잘 알고 있었다. 나이가 많아서 그리고 많이 배운 걸로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예의와 배려가 괜찮은 사람을 만든다는 것을.
예의가 사람을 만든다. 정말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