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식당까지 해봤지.
"쟤 가면 우리끼리 불고기 먹자."
캐나다 한식당에서 디시워셔를 했다. 하루종일 벽만 보고 서서 말 한마디 안 하고 설거지만 하는 일. 그일을 디시워셔라고 불렀다.
가족끼리 하는 캐나다 한식당에 이력서를 냈다. 나는 일이 급했다. 돈도 급했고.
"그럼 내일부터 출근하세요."
살고 있는 반지하에서 가까운 한식당이었다. 찬밥 더운밥 가릴처지가 아니었다. "디시워셔 힘들 텐데." 친구 말을 뒤로하고 나는 씩씩하게 주방으로 들어갔다. 한 사람이 들어가면 꽉 찰 만한 공간이었다. 하루종일 접시니 프라이팬을 씻었다. 내가 닦는 그릇은 죄다 메이디인 차이나 도자기 그릇이었다. 그것들이 어찌나 무거운지 다섯 개만 씻궈도 팔이 욱신거렸다.
"너 이거 하나씩 깨잖아? 1불씩 네 월급에서 깔 거야." 캐나다 대저택이 있다던 한식집 사모님이 으르렁 거리며 말했다. "네. 네." 나는 꿈뻑꿈뻑 똥멍청이처럼 눈만 깜빡거리고 대답했다.
튀기고 볶는 음식이 많았다. 그 한식당에는. 한 시간이 멀다 하고 나는 프라이팬이며 사골냄비 같은 것을 닦았다. 팔이 후들거리고 다리까지 저려왔다. 홀에서는 사모님과, 한국에서 동생의 일을 도와주러 왔다던 큰 사모님의 하하호호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쉬는 시간인가? 나는 쉬는 시간 언제 주지?' 물어보지도 못했다. 산같이 쌓여있는 설거지 때문에도 그리고 내가 감히, 나 같은 접시닦이가 감히 무엄하게 사모님 사장님에게 쉬는 시간을 물어본다는 자체가 언감생심이었다.
내가 일하는 한식당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계급 같은 게 있었으니까.
화장실이 가고 싶었다.
하루종일 서서 설거지를 하느라 물 같은 건 마시지 않았는데도 이놈의 오줌보는 눈치도 없이 터질 것 같았다. 그래서 혹시나 화장실을 가도 될지 물어볼 찰나였다. 그때 한국에서 왔다던 이모가 말했다.
"우리, 쟤 가면 우리끼리 불고기 해 먹자."
그날 난 화장실을 가지 못했다. 아니 가지 않았다. 참았고 버텼다. 그러다 보니 또 참을만했다. 집에 와서 다짐을 했다. 캐나다에서 잘 살아야지. 잘 살아서 나도 불고기 같은 거 마음대로 먹고 화장실 가고 싶을 때 마음대로 갈 수 있는 일을 하고 살아야지. 그렇게 계획을 세웠다.
가족끼리 운영했던 그 한식당은
나를 쟤, 야라고 불렀던 그 한식당은
인생의 계획이라곤
디시워셔였던 내가 퇴근하면 불고기를 먹는 것.
그게 사모님 사장님의 미래였고 계획이었다.
나는 그곳에서 불고기 대신 삶의 계획을 세웠다.
When they go low we go hig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