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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울 연 Oct 07. 2024

(안) 죄송합니다.

일을 오랫동안 해왔지만, 여전히 입에 잘 붙지 않는 말이 있다. 별로 죄송하지 않은데 죄송하다고 해야 하는 상황에 다들 어떻게 그렇게 뻔뻔하고 태연하게 사과를 할 수 있을까? 진정성 있는 사과는 바라지도 않는 손님을 향해 죄송하다는 말을 할지, 아니면 반박하며 싸울지를 두고 내 머릿속엔 많은 저울질이 생겼다.  

   

매일매일 출근하는 우리 카페는 1인 1 메뉴가 원칙이다. 내 잔고로는 우리 카페에 올 수 없다. 일행이 있더라도 그럴 수 없다. 정작 그러면서 손님에겐 1인 1 메뉴가 원칙이라고 말하는 내가 역설적이었다. 저 손님이 정말 돈이 없다면 세상이 얼마나 원망스러울까 싶었다. 괜한 동질감 때문에 코 끝이 찡했다. 그냥 배부르다는 이유로 그딴 원칙이 어디 있냐며 나에게 욕설을 하는 미친놈에 불과했지만 말이다.

    

1인 1 메뉴인 건 내 잘못이 아니지 않나? 손님이 배불러 먹기 싫다는데 이 또한 손님 잘못은 아니지 않나?

그렇다고 나에게 폭언을 해도 되는 건가? 지금 같이 폭언을 할까 말까? 내가 지금 화가 나는 게 정상일까? 그렇다고 화를 내도 되는 상황일까?     


자영업은 시간이 지날수록 늘어가는 추세지만, 진상 손님도 날이 갈수록 심해지는 것 같다. 정말 이상한 비례 관계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

근무를 하다 보면 끝까지 말이 안 통하는 손님을 만나기도 한다. 마치 벽을 상대로 소리치는 기분이 든다.

이 벽을 허물어볼까 하는 도전정신이 생기다가도 그냥 이렇게 살게 두자 싶어 지는데 다들 이래서 진상이 안 줄고 점점 느는 게 아닐까? 그러면 나라도 저 벽을 허물어야겠다 하는 어리석고 건방진 다짐을 해버렸다.




"넷이 왔는데 3잔 먹는 게 왜 안 돼. 내가 가는 카페는 다 된다고 했는데. 왜 안되냐고"   

  

"죄송합니다. 저희 카페는 1인 1 메뉴라서요, 지금 드시는 게 아니더라도 음료가 아니라 빵이나 떡 포장하셔도 괜찮으시고 ---"

가능한 친절하게 내뱉은 내 말은 곧이어 끊겼다.     


“체해서 침을 맞고 왔는데 뭘 어떻게 먹어? 어린 계집애가 어? 시발 장사를 아직도 이딴 식으로 하는 데가 있어? 소문낼 거니까 영수증 가져와.”     


나는 손님이 체했다는 사실을 몰랐다. 체했으면서도 술은 먹을 수 있었나 보다.

몇 마디 폭언을 더 하다가 보다 못한 일행들은 그 진상을 어르고 달래 자리에 앉혔지만, 구석에서 나를 노려보는 눈을 마주할 때마다 속에서 화가 치밀어 올랐다.


당장 가서 사과받고 싶었다. 나야말로 진정성이 있고 없고를 떠나 말뿐인 사과라도 받고 싶었다. 아무리 생각을 반복해서 되뇌어도 내가 잘못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고, 심지어 친절하게 대해드렸다.

곧이어 오는 다른 손님들에게 웃으며 감사합니다를 외치며 많은 음료를 기계적으로 만드는 손과 다르게 머릿속엔 온통 못 참겠다는 생각뿐이라, 순간 모든 이성적 사고가 멈추고 손이 벌벌 떨리고 얼굴이 뜨거워졌다. 아까 그 자리에서 더 싸울 걸 나는 왜 망설인 걸까?


나는 사장이 아닌 매니저라서, 행동하기 전에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점장님이라면 어떻게 행동할까? 지금 내 행동이 매출에 영향을 줄 만한 행동일까? 우리 카페 평판에 심각한 영향을 주려나?

결국엔 사과는 못 받았다. 가서 따지고 언성을 높이며 싸웠지만 돌아오는 말은 그런 말 한 적 없다는 변명이었다.



반납한 쟁반에는 텅 빈 음료 세 잔과 싹 비워진 디저트 접시가 있었다.


사과는커녕, 체했다는 말이 무색할 만큼 나를 조롱하듯 깨끗이 비워진 잔과 디저트 접시들 속에서, 나 혼자 그 억울함을 삼켜야 했다. 이 억울함은 단지 나의 감정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매일같이 겪는 이런 일들은 내가 왜 이 일을 하고 있는지 스스로에게 묻게 만든다.

사과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에서조차 사과를 해야만 해는 것이 서비스업에서의 감정노동임을 안다. 알고 있음에도 빈 접시가 남기고 간 건 음식이 아니라 나의 자존심을 깎아내린 씁쓸함이었다.     




내가 일하는 곳은 시골이고 대표님은 여기에서 모르는 분이 없으실 만큼 발이 넓으셔서 조금만 수소문해도 누가 누군지 알 수 있다. 직업은 장례도우미로 나이는 예순이라고 하셨던가.


얼마 전에 할머니가 돌아가신 나는 복잡한 기분이 들었다. 할머니 장례식장에서 나를 위로해 주시던 도우미분들 얼굴이 스치기도 하고 손녀딸을 좋아하시던 할머니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 저분도 분명 누군가의 부모이자 할머니가 아니었던가.



내가 어떻게 했어야 할까? 카페의 원칙을 어긴 채 죄송하다고 말했어야 할까? 아니면 그 자리에서 죄송하다는 사과를 꼭 받아냈어야 할까?

분명 내 인생 모토는 후회는 하지 말자였는데 어느덧 돌아보면 작은 거에서부터 후회하지 않은 순간이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진상 손님을 상대할 때마다 내 신념이 흔들리는 걸 느낀다. 사과를 받아내지 못한 시점부터 나의 망설임과 침묵이 후회로 남았기에.




하지만 때론 그 후회가 더 나은 나를 만들 수 있다는 걸 배웠다.


이런 상황을 겪는 것은 나만의 문제가 아닐 것이다. 수많은 서비스업 종사자들이 비슷한 경험을 하며 매일 갈등과 고통 속에서 일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어떤 방식으로든 그 상황을 받아들이고, 다시 하루를 시작한다. 이것이 우리가 배워야 하는 참을성인지, 아니면 변화가 필요한 지점인지 고민하게 된다.     


어려운 손님들도 우리 삶의 일부인만큼, 우리는 그들과의 경험에서 성장하고 배워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려움 속에서도 친절함을 잃지 않으며, 서로를 이해하고 존중하는 사회를 만드는 것은 중요하기에.

이제 진상 손님을 단순히 무시하지 않고 그들의 부당한 행동에 맞서 싸워, 그들이 점차 줄어들고 더 이상 그 행동이 용납되지 않는 사회적 분위기를 만들고 싶다는 더 단단한 다짐을 했다.


오늘도 퇴근하는 길에 아빠와 어김없이 통화했다. 진상이 많았던 날엔 아직도 아빠한테 말하지 못한다. 사랑하는 딸이 그런 취급을 받았다고 듣게 된다면 이만큼 속상한 일이 아빠한테 또 있을까 싶어서, 아빠의 하루의 끝을 내가 망치고 싶진 않다.


그럼에도 아빠는 내가 아무 말도 하지 않아도 알아차리셨다.


"딸 너무 힘들면 그냥 다 집어치우고 집에 와도 돼. 집에 언제 와도 괜찮아, 알고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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