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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울 연 Oct 04. 2024

후회하지 않을 결심

학교를 그만뒀다. 나는 자기주도학습을 해와서 누구보다 열심히 공부했다고 자부했었는데, 그 결실을 내다 버린 거나 다름이 없다. 주위 사람들은 아직까지도 대학생인지 졸업을 했는지 뭘 하고 사는지 잘 모른다.

성공하기 위해서는 자기가 할 일을 여기저기 소문내고 다니라는 말을 들었다. 그래야 더 열심히 하게 된다는 취지랬나.

아직 그 말의 본뜻을 이해하기는 어렵다. 굳이 성공하기도 전인데 좋은 말만 들어도 모자랄 시간에 내 평판을 들어가며 흔들리고 상처받고 고민하며 시간을 버릴 이유는 없지 않을까 해서. 성공하면 그때 소문내도 안 늦지.



대학에 갓 입학한 새내기인 나는 많은 욕심이 있었다. 수시로 대학을 와서 수능에 열을 쏟지 않아도 됐는데, 수능을 쓸데없이 잘 본 덕에 최저가 높았던 여러 대학에 붙었다. 목표하던 국립대와 사립대 중 넓은 세상에서 용의 꼬리가 돼 보자는 마음으로 사립대에 오게 됐다. 덕분에 등록금이 3배 정도는 높았지만, 수능이 끝나자마자 19살부터 알바를 시작했었던 터라 학비만큼은 내가 부담하는 게 맞지 않을까 하는 의무감이 있었다.

다시 생각해 보면 그렇게 다 껴안을 필요는 없었던 것 같다. 당시엔 그저 부모님의 애정 어린 칭찬과 나를 자랑스레 여기시던 모습이 모든 내 삶의 원동력이 되었다.

아침 일찍 학교에 갔다가 알바 가기 전 시간이 뜰 때 과제와 끼니를 해결하고, 퇴근 후에는 밤새 열심히 공부했다. 장학금이 목적이었다. 그러면 학비조달이 목적이었던 알바는 내 용돈 벌이가 될 수 있을 테고, 장학금이라는 단어 자체는 엄청난 프라이드와 부모님의 자랑거리가 될 것 같았다.

시험 기간엔 거의 잠도 안 자고 밤새 열심히 공부했다. 전액 장학금까진 아니더라도 돈을 어느 정도 받을 수 있었지만 2학년까지 비슷한 생활이 이어지던 어느 날, 갑자기 밤을 새우고 시험을 보고 또다시 일하고 퇴근하는 길에 이런 의구심이 들었다.


‘나는 성적이 잘 나와서 기쁜 걸까, 단지 장학금을 받아서 기분이 좋은 걸까.’ 하는 그런 생각이.

외부 장학생까지 합격했던 터라 면접을 볼 당시에도 같은 생각을 했었다. 어쩌면 정말 간절한 학생들의 기회를 뺏은 건 아닐까 하고 미안하기까지 했다. 물론 나도 간절하긴 했지만, 면접을 볼 당시에 내 가능성을 봐달라는 둥 온통 진심은 없던 꾸며진 말로 합격한 기분이 드는 동시에, 학습에 도움을 주고 싶다는 취지인 기관의 그 돈을 받을 때마다 공존하긴 어려운 감정들이 복합적으로 느껴져 머릿속을 헤집었다.


‘진짜 내가 하고 싶은 게 무엇일까?’

나는 남들보다 앞서가는 모습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다.

내 삶에 안주하지 않고 나아가려면 그 모습에 집착할 수 밖에야.

사실 동기들도 다른 대학 친구들도 아마 전부 같은 생각을 이 나이쯤 했다. ‘졸업하면 뭐 해 먹고살지?’ 또는 ‘전공이 적성에 안 맞는 것 같아.’ 의대나 간호대나 치대 약대 같은 전문직을 할 수 있는 학과를 간 친구들도 전자는 아니더라도 후자의 고민을 많이 했다. 만약 내가 고등학교 때부터 일정하게 같은 꿈을 바라왔다면, 장학금을 위해서가 아닌 장학생의 기쁨만으로 학교를 열심히 다니지 않았을까?


나는 머릿속이 복잡하면 잠깐 쉬었다 나중에 생각하는 방법이 아니라, 그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선 그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 말곤 없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생각을 반복해서 하는 편이다. 나에게 계속 질문을 던졌다.

'지금 행복이란 감정은 느껴?'

‘넌 졸업하면 뭐 해 먹고살 거야?’

'이게 네가 꿈꾸던 대학생활이야?'

‘스펙은 언제 쌓을 거야? 대외활동은 언제 할 거야?’

'남들보다 앞서가고 싶다며, 이게 그 결과야?'

‘바라던 그 일을 할 순 있을 것 같고?’

‘그게 하고 싶은 일은 맞아?’

‘도대체 너는 꿈이 뭐야?’

마지막 질문에 도달했을 때 유일하게 분명한 나의 대답은 하나였다.



‘내 꿈은 부자야.’



과학이 좋다던 학창 시절의 나는 조향사가 어울린다는 말 하나로 장래희망에 적어갔던 그 꿈, 오빠가 가지 못했던 엄마 아빠의 어떤 한을 풀어주고 싶어서 화학공학으로 결론지었던 거구나.

그런데 사실 진작 알고 있었다.

하다 보면 하고 싶어질 줄 알았다. 더는 미루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무시할 수 없을 만큼 커졌다는 걸 2학년 1학기가 끝나고서야 알았을 뿐. 나는 배우고 싶다는 의지가 강해서 여기 온 게 아니고, 졸업장 하나를 위해서 이렇게 남의 기회를 뺏고 내 시간과 돈을 버리고 있으며, 학습의 정의와는 너무도 먼 생활을 하는 중이구나.

다른 학교로 간다든지 이제 와서 내 꿈을 찾는 게, 진짜 내가 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 따지는 게 의미가 있긴 한가 싶었다.

취업하더라도 결코 그때의 나는 행복할 수 없을 것이라는 결론이 났기 때문에, 더는 의미 없이 학교에 가는 건 좋을 게 없지 않나.


당시 알바를 하고 있던 카페가 지금의 매니저가 된 곳이다.

마감 타임을 했기에 카페 매출을 매일 매달 봤고 오래 일한 나는 대충 점장님의 월급이 짐작이 됐다. 그래서 속으로 엄청난 계산을 했던 것이다.

‘내가 졸업해서 빨라야 24살 어느 중소기업에 입사한다 가정하더라도 월급이 250만 원 정도 할 테고 지역은 집이랑 멀 테니까 고정지출이나 세금 등등 다 제외하면 결국에 ---’


머리가 여느 때보다 빠르게 돌아갔다. 가게 매출을 말할 순 없지만 우리 카페는 지역에서 검색했을 때 1등을 자리 잡고 있고 외각에 위치한 탓에 여러 우수한 면이나 독창성이 가려져서 많이 아쉽다는 생각도 자주 했다.

어차피 이도저도 아니라면 빠르게 일을 시작해서 직영점 점장이 되는 건 어떨까. 정말 어쩌면 이게 내 적성에 맞는 일이지 않을까. 난 아직 어리니까 이게 미끄러지면 경험을 토대로 창업을 해보는 방법도 있다.

애매모호한 대학 졸업장을 들고선, 아무런 스펙도 없고 알바 경험만 많은 취준생이 되어, 자기소개서에 가난하지도 않았던 우리 집을 들먹이며 본인은 헝그리 정신이 있다고 어필하는 내용을 쩔쩔매며 쓰는 내 모습이, 너무도 구체적으로 그려졌다. 그것보다야 어느 면에서든 낫지 않을까.


학교를 곧바로 휴학하고 점장님께 뜻을 전했다. 우리는 가끔 여러 지역에 많은 지점을 내는 게 점장님 꿈이라는 대화도 나눈 적도 있었기에.

“저 점장님이 말씀하셨던 꿈 같이 이뤄보고 싶어요. 같이 오래 일하고 싶습니다.”

철이 없었을 수도 있다. 나는 그저 인생 처음 내 의지만으로 하고 싶다는 감정이 들어서, 이게 꿈이 맞을까 하는 확신이 없었을 뿐 지금 도전해보지 않으면 평생을 후회할지도 모르겠다는 확신만은 있었다.


모두가 인생을 살면서 후회를 한다. 내가 오래 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5살이 된 아이가 후회라는 단어를 안다면, 어제 조금 더 놀다 잘 걸 하고 후회를 경험했을 것이다. 그러니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누구나 후회한다는 것이다.

선택을 미루고 사실 내가 하고 싶은 게 아닌 걸 앎에도 그저 시간이 해결해 줄 것이라는 핑계와 변명 속에서 시간이 흘렀다.

그렇게 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상상은 후회와 결은 다르지만, 선택을 미루는 게 무조건적으로 좋지만은 않다고 말하고 싶다. 다시 돌아갈 시간이 충분하다는 가정하에, 깊은 고심 끝에 가장 가고 싶은 길을 고르길.

아마 우리는 다른 길을 골랐다고 한들 후회했을 것이다. 이건 후회가 아니라 미련에 가까운 감정이다.

우리는 신이 아니기에 정답을 알 수 없고, 누군가가 선택을 대신해 줬다고 고마워할 게 아니라면 그리고 평생 선택을 남에게 미룰 것도 아니라면 타인을 원망할 수도 없다. 그러나 너무 스스로 미워하지 않았으면 좋겠는 마음이다.


선택의 갈림길에 서있다는 말은 다시 말해서 후회의 갈림길에 있다는 말이 된다. 어느 길을 가도 걸어가는 발은 내 발이고 보고 있는 눈은 내 눈이기에 자신을 믿는 수밖에 없지 않을까?

과거의 본인이 그 당시 할 수 있던 최고의 선택이었고, 돌아가더라도 그 선택을 반복할 수밖에 없을 거라며 미래가 될 현재의 나를 믿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어제의 우리보다 작은 선택들 덕에 어느 부분에서라도 나아졌다. 보이지 않고 증명할 수 없어도 한 걸음 걸어간 게 맞으니 너무 조급해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후회하지 않겠다고 자부하지 말자. 후회 없는 선택을 하겠다는 강박에 힘들어하지도 말자. 가보지 않은 길은 아무도 알 수 없고 그 길을 선택했더라도 다른 길에 대한 미련은 남을 수밖에 없지 않을까.’ 하며 매일을 다독인다.



매일 내 일상 루틴 중 하나는 퇴근하는 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아빠와 통화하는 것이다.

학부열이 불탔던 우리 집은 한순간에 대졸이 아무도 없는 우리 집으로 변했다.

나는 부모님의 어떠한 압박이나 강요도 없었지만, 내가 그 끈을 놓았다는 사실이 스스로 괴로웠고 때때로 자주 내 선택이 맞을지 망설이며 주저하기도 한다.

아빠는 그런 나에게 말해줬다.


“딸. 아빠는 딸이 무슨 일을 하든, 하고 싶다고 하면 응원할 거야. 공부가 됐든 아니든 아빠는 언제 어디서든지 응원해.
걸어가다 보면 멈칫하는 순간이 올 순 있지만, 그 길이 아니다 싶으면 잽싸게 뛰어 돌아오면 되는 거야. 뒤돌면 엄마랑 아빠가 있어. 쫄지 말고 하고 싶은 거라면 맘껏 해봐. 아직 젊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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