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는 공휴일에 바쁘다. 카페뿐만 아니라 식당도 놀이공원도 사람들이 쉴 때 갈만한 곳은 당연히 사람들이 쉬는 날 바쁘다. 우리는 연중무휴다. 욕심이 아니라 여담이지만 만약 내 가게가 생기더라도 나도 연중무휴로 장사를 하고 싶다.
공휴일이 아니라도 평상시에도 많은 손님은 본인이 쉬는 날, 퇴근 후, 학교가 끝나고, 회식이 끝나고처럼 무언가를 마치고 휴식을 취하러 카페로 온다는 말이다.
“마감했어요?”
과탄산소다로 세탁한 행주를 탁탁 털어 널고 있는 우리를 향해, 문을 활짝 열고 물어보셨다.
“네 저희 오늘 영업시간 끝나서요, 죄송하지만 내일 와주시겠어요?”
영업이 끝났다는 말을 못 들었을 리가 없는데, 문을 닫고 나가긴커녕 활짝 연 뒤 성큼성큼 프론트를 향해 걸어오는 게 아닌가. 곧이어 다른 일행도 들어오셨다.
“지금 그럼 뭐 포장도 안 돼요?”
어려운 일은 아니다. 커피 종류만 빼면 설거지 몇 개만 더 하면 되니, 몇 천 원 더 버는 건 이득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달랐다. 포스기를 껐기 때문에 팔고 싶어도 진짜 마감을 해버려서 손 쓸 수 없다.
“죄송합니다. 저희가 오늘은 마감을 이미 해서요..”
“아니 뭐가 그렇게 어렵다고 돈 얼마든 줄 테니까 음료 만들어달라니까?”
“여기 앞에 탄산수라도 팔아. 얼마에 팔 거야”
다른 일행도 말을 덧붙였다.
“지금 이 분이 누군진 알고 그러는 거야? --대 교수님이라고 어?”
“아잇 부끄럽게 왜 그래~”
안 궁금하다. 술에 취한 수준이 아니고 술에 절여진 두 사람은 더 이상 나에겐 손님이 아니었다.
가능한 빠르게 가게에서 나가줬으면 좋겠는 마음이 전부였다. 그러려면 죄송하다는 말을 반복해서 하는 게 가장 빠른 방법이었다.
자취를 하던 나는 학교 근처에 있는 집보단, 출퇴근에 용이하게끔 카페 쪽으로 취직과 동시에 이사도 했다. 휴게 시간에 집에 와서 맛있는 밥을 먹고 맘 편히 쉬고 집안일도 짬짬이 하고, 무엇보다 교통비가 안 들고 날씨에 방해받지 않고 출퇴근을 할 수 있는 게 정말 큰 장점이었다.
치명적인 단점은 두 가지가 있다. 보통 대학생이 아닌 손님은 그 근처에 살고 있거나, 늦은 시간에 오는 손님은 근처 편의점 야외 공간에서 술을 더 마시는 경우도 있다.
내 집은 걸어서 2분도 안 걸리는 가까운 거리에 있다.
다시 말해 나와 마주하고 언성을 높이던 진상들은 내 이웃 주민이 되기도 하고 내가 사는 건물에 들어가는 모습을 전부 볼 수 있다는 뜻이 된다.
영업 종료 10분 전, “실례합니다. 저희가 곧 마감해야 해서 자리 정리 부탁드립니다.”라고 하면 보통 다들 바로 반납하시곤 나가신다.
영업 종료 10분 전임을 고지했는데도 내 말엔 대답도 없이 일행들과 진지한 대화를 나누던 손님이 있었다.
먼저 할 수 있는 일들을 처리하며 손님이 가시는 걸 기다리는 방법 말곤 없다. 말 그대로 아직 영업 중인 상태는 맞으니 아직까지 이 손님은 진상의 범주는 아니다. 마감을 알렸지만 대답 없이 대화를 이어가는 손님을 보며 나는 '일'과 '사적인 시간'의 경계가 얼마나 흐릿한지 새삼 깨달았다.
이 순간이 그들에게는 휴식일지라도, 나에게는 하루의 끝이었다.
영업 종료 5분 전 다시 찾아가 말씀을 전했다. 중년층 남성 한 분 여성 두 분이 계셨는데 대화를 들어보니 어떤 영업을 하고 계신 것 같았다. 나는 융통성 없는 사람이고 예외는 없어야 한다고 생각해서 한 번 더 말씀드렸다.
“죄송합니다. 저희가 이제 곧 문을 닫아야 해서요 자리 정리 부탁드립니다.”
“아이 씨 알겠다고.”
그 대답을 들은 20살 쫄보는 프론트로 돌아와 제발 빨리 가주길 비는 방법 밖엔 생각하지 않았다. 그래도 내가 책임져야 하니까 영업 종료 정시가 됐을 때엔 다시 가서 말할 수밖에 없었다.
“죄송합니다 저희 이제 문 닫아야 돼서요.”
가달라고 할지 정리 부탁드린다고 할지 고민할 필요도 없이 곧이어 내 말은 뚝 잘렸다.
“아 나 진짜... 알겠다고 했지 어?”
약간 때리려고 하는 듯한 겁주는 모션이 느껴졌다. 다른 일행들이 빨리 가자며 나가버려서 별다른 상황은 없었지만, 뭐 일행이 없었으면 때렸다는 건가 우리 이제 곧 퇴근해야 되는데 밖에서 기다리고 있으면 어떡하지 하는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알바와 나누던 대화로 혼자 별별 상상이 다 들었다.
처음 말했듯이 다들 무언가를 마치고 오는 카페에는 아직 하루를 마치지 못한 직원들이 있다는 걸 알아줬으면 좋겠는 마음뿐이다. 우리도 퇴근이란 걸 해야 하지 않을까?
그런 날엔 아빠가 전화를 안 받는 상황을 대비하여 카페 불도 끄기 전 통화 연결이 된 후에 밖을 나선다.
다정한 우리 아빠는 카페 문 잠그는 소리도 들어야 하고, 내가 사는 건물의 공동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도 들어야 하고, 내가 사는 집의 문이 닫기는 소리를 듣고 나서도, 이중 잠금을 했는지까지 확인을 하고 나서야 전화를 끊으시는 분이다.
현실적으로 아빠랑 집 가는 내내 한 마디도 안 끊길 순 없다. 그럼에도 아빠는 아무런 대화를 하지 않더라도, 할 말이 없어서 정적이 이어지더라도 집 문을 닫는 소리를 들어야만 통화를 마무리한다.
‘용건만 간단히.’가 일상인 아빠가 타지에서 밤늦게 귀가하는 딸을 위해 해주는 전화 서비스는 백 마디 말보다 내가 가늠할 수도 없이 커다랗고 따듯하다 못해 뜨거운 사랑이었다.
아빠가 나를 얼마나 사랑하고 걱정하는지 짐작도 할 수 없다.
대신에 쑥스러움을 집어치우고 한마디면 아빠는 알아봐 주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생각하지 않으실까.
“아빠 사랑해”
앞으로도 퇴근길은 때로는 지치고 때로는 무서울지 모른다. 하지만 그 길 끝에는 언제나 나를 기다리는 따뜻한 목소리가 있기에, 오늘도 나는 무섭지 않게 그 길을 걸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