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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울 연 Oct 16. 2024

포기하는 방법

한순간에 알바에서 매니저가 됐기 때문에, 같이 일하는 알바들 사이에선 경력과는 무관한 위계가 생겼다.


당시 우리 카페엔 제일 오래 일한 2년 정도 된 아르바이트생이 있었다.

점장님만큼 손이 빨랐고 사실 그 아르바이트생은 여기에서 일하기 전에 이미 카페 직원이었던 경력도 가지고 있었다. 따지자면 커피 짬만 해도 나보단 무조건 일을 잘한다는 뜻이었다.

모든 알바들이 나를 ‘매니저님’이라고 불러도 그 사람만큼은 절대 그 호칭을 부르지 않고 꿋꿋이 이름으로 나를 불렀다.     


시간이 지난 지금도 돌아보면 인정한다. 그 사람은 일을 정말 잘했다. 사람을 대하는 태도만 빼고 보면 배울 점이 참 많았다. 어려운 손님을 대하는 방식이나, 일을 어떻게 해야 덜 힘든데 점장님이 알아주시는지, 말을 재치 있게 하는 센스도 있었던 것 같다.

같이 있으면 언제나 내가 매니저로서 느껴지지 않겠다는 생각에 작은 실수 하나를 할 때마다 집중력이 흔들렸다.     


그러던 어느 날 배달 실수를 했고, 매장이 바빴던 터라 사고를 수습하는 도중 일이 겹쳐 매장에서도 손님의 주문이 누락되는 상황이 생겼다.     


우선 배달 실수를 해결하느라 점장님과 통화를 했다.

매장에선 불편을 끼쳐 드려 죄송하단 의미로 다른 디저트로 서비스를 드리고 싶었는데, 그래도 되는지 마저 여쭤볼 어리숙한 매니저였다.


그러면 매장에서 실수한 것도 알려드려야 하는데 점장님도 내가 매니저급 실력은 안 된다고 판단하실 것 같아 속상하기도 하고, 멋대로 서비스를 드리기엔 거만해 보일 것 같고 배달 실수 자체로도 실망하셨을 텐데 하는 여러 복잡한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이 모든 상황을 지켜보는 시선이 느껴져서 땀이 났다.     


“천천히 해요 천천히, 왜 이렇게 정신을 못 차려.”

그런 나를 보고 김알바가 말했다.     


우스웠다. 내 모습이.     

알바에게 정신을 못 차린다는 말을 들은 것보다, 그 직전 했던 말이 조금 위안이 됐다는 사실에 더 자존심이 상했다.

순간 정신이 그래서 번쩍 들었다.


내 멋대로 서비스를 줘서 점장님께 건방져 보일지라도, 점장님이었더라도 이렇게 행동했을 것이며,

알바가 보기에도 가장 매니저스러운 해결 방법이 아니었나 싶어졌다.    

 

심호흡을 한 번 하고 배달 건을 해결하곤 손님께 당당히 걸어가 죄송하다는 말을 연신 하며 서비스로 디저트 하나를 건넸다. 점장님 오더 없이 내 판단대로 행동했지만 점장님께서는 오히려 잘했다는 칭찬이 있었고, 김알바는 그런 나에게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사실 속으론 조금 통쾌했다. 본인의 위치는 내가 마음대로 서비스를 줘도 되냐고 따질 위치가 아니지 않은가.     

밀린 설거지를 빠른 속도로 끝내며 뿌듯한 얼굴을 지은 김알바는 나에게 말을 걸었다.


“언제 일 잘할래요?”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나왔다. 마감의 전체적인 형태는 내 주도하에 이뤄지기에, 김알바가 하지 못하는 부분이 애초에 많았다. 난 처음부터 매니저니까 그게 당연하기도 하고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는 논 외로 나를 일 못하는 사람이며 그런 사람이 우리 카페 매니저다라는 게 기본적인 틀로 깔아놓고 평소에도 말을 했다.     


나는 김알바가 나를 그렇게 생각하는 태도를 전부 뜯어고치고 싶었다. 일을 잘하려고 하는 것 자체부터 자존심이 상했지만, 어쨌든 팩트는 배울 게 없는 사람은 아니라는 생각에 더 열심히 일했다. 열심히 일하려고 했다기보다 일을 잘하려고 노력했다.     




새로운 알바가 들어와서 인수인계를 진행하고 있었다. 알바에게 일을 시킨 뒤 김알바와 주방에 둘이 남게 되었을 때였다.     


“말투를 좀 바꾸든지 하는 건 어때요?”


“무슨 말투요?”


“아니 일 시킬 때 너무 공격적인 것 같아서요.”     


‘이건 좀 선을 넘는 것 같은데.’하고 찰나 생각이 들었다.


남의 시선이나 평가에 대해 집착하는 나인 걸 알고 있었지만, 태초부터 나보다 낮은 위치에 있는 알바의 시선까지 내가 신경을 쓰는 게 맞는 걸까?

어쩌면 나도 은연중에 김알바보다 낮은 위치에 있다고 나조차 여겼던 건 아닐까?     


알바와 매니저 사이엔 분명한 위계질서가 있다.

내가 아무리 노력해서 객관적으로나 주관적으로나 더 일을 잘하게 됐다고 한들, 김알바는 나를 여전히 같은 위치에 있는 알바로밖엔 보지 않았다.     



집에 가는 길 문득 내가 오늘 한 생각들이 합리화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아빠에게 물어봤다.     


“아빠 근데 지는 게 이긴다는 게 말이 되는 거야? 난 져서 이기면 기분이 찝찝한 것 같은데.”     


“때론 그게 최고의 방법이지. 아직 이해하기 어려울 순 있어도 그게 가장 지혜롭게 이기는 방법이야.”
 

지는 게 이기는 거다라는 속담이 있다.


김알바는 내가 본인의 조언을 전부 받아들이고 내 모습을 바꾸려고 할수록 이상하게 들떠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나는 앞으로 그 모습에 동요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결국 포기하는 방법은 다른 사람의 시선을 내려놓는 것이었다. 내 역할에 대한 확신이 생기자, 타인의 시선이 더 이상 나를 흔들 수 없게 되었다. 매니저로서의 내 위치를 이해하고, 나의 성장에 집중하는 것이 더 중요한 게 아닐까.


진정한 포기는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것들을 놓아주는 용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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