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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원희 Oct 25. 2024

네게 보이것과 나에게 보이는것은 다르다.

기공과 데모도의 차이

언제까지 데모도만 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하루빨리 기공이 되어서 내 현장에서 돈을 벌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수박 겉할기밖에 못했는데, 기술을 다 배웠다며 가당치도 않은 생각을 했다.

차분하게 배우다 보면 알아서 다 알려주고, 먹여주고, 재워주고 할 텐데 그때 나는 너무 성급했다.

     

나의 경력이 6,7개월 넘어갈 무렵 입주박람회를 가서 영업을 해볼 수 있었다. 말도 버벅거렸던 내가 그간 어깨 너머로 배운 모든 것을 쏟아부어낸 첫 현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현장을 들어가기 위해 동생은 입대위에게 매일 쪽지와 메일을 보냈고. 기획사(입주박람회 행사 주최측)에 매일 전화를 했다. 주변에 입주하는 아파트의 명단을 들고 사전점검 날짜마다 전단지를 돌리러 다녔다. 제안서를 만들어야 한다고 해서 파워포인트를 배우고, 제안서를 만들었다. 넣는 제안서마다 빠꾸 먹으니, 도대체 나는 왜 안되냐고 박람회장을 쫓아가서 대표를 직접 찾아가 물어보기도 했었다. 알고 보니 끼리끼리 박람회를 들어가는 경우가 많았고, 좋은 현장은 쉬쉬하며 자기들끼리 행사를 진행하기도 했다. 말 그대로 자기들끼리 해 먹었다. 그런 무리 안에서 공석이 생기는 경우도 많이 없었기에 아무런 백도, 지인도 없는 우리는 박람회를 들어가는 것조차 어려웠다. 그러던 중 실수를 한 줄눈업체 하나가 기획사에서 퇴출이 되면서 그 자리에 악착같이 착출을 원했던 동생이 들어갈 수 있게 되었다. 다른 이의 축출은 우리의 기회였다. 어쨌든 우리는 그 박람회에서 대성공을 이루었다. 일이 넘치게 많아진 동생은 2명의 데모도를 더 구하게 되면서, 나는 기공으로 현장을 맡아서 일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천만다행으로 가족이었기에 가능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다른 이의 유입은 나에게 기회가 되었다. 이쯤 줄눈업을 하려는 사람들이 우후죽순 기술을 배우려고 엄청나게 찾아왔기에 가능했으리라.


내가 그 현장을 담당하는 대표였다면, 아직 미흡한 나에게 현장을 내어주지는 않았으리라. 나중에 동생에게 물어보니 나름 잘하고 있어서 믿고 갈 수 있었다고 한다.     

앞으로 대박현장이 입주하려면 2달이 남았다. 시공을 연습할 수 있는 시간이 2달이 남았다는 이야기였다. 그 기간 내에 나의 줄눈시공이 상품화될 수 있도록 맹연습을 했다. 동생집에서 숙박을 하면서 출퇴근 경비와 시간을 줄이고 나의 실력을 다듬는데 집중을 했다. 나름 잘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시공할 때마다 날카로운 눈으로 요목조목 집어내며 이야기를 하는데 계속 열이 뻗쳤다. 내가 보기엔 똑같이 깔끔하고 라인도 잘 나왔고, 어디 하나 튀어나온 곳도 없었는데 말이다.   

   

“네게 보이는 것과, 나에게 보이는것은 다르다.” 


뭐가 다른 건지 자세한 설명은 해주지도 않으면서 단지 오래 했다는 이유만으로 내가 한 것을 칭찬 한번 안 해주는  동생이 얄미웠다. 내가 몇 시간을 끙끙대며 마무리한 줄눈을 확인하고는 또 똑같은 소리만 뱉어내고 가는 동생이 야속해서 속으로 다짐했다. 줄눈으로 내가 더 잘 나가는 날 똑같은 소리를 해주겠다며 이를 악물었다. 무슨 뜻인지도 헤아리지도 못하면서 말이다. 아마도 열변을 토하며 동생이 이유를 설명해 주었다고 한들 나는 못알아 들었을 것이다.

     

한 1년 뒤쯤  내가 시공 한 집 AS가 들어왔다. 자매가 같이 2집 시공을 맡긴 터라 정확하게 기억하는 고객이었다. 줄눈 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미숙한 줄눈쟁이였음에도 나는 줄눈에 대한 엄청난 지식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고, 시공에 대한 자신감도 하늘을 찌를 때라 누가 뭐라 해도 잘난 줄눈쟁이인척을 했었을 때 시공한 집이었다. 고객 역시 줄눈전문가라 치켜세워주셨고, 2번을 시공하며 만났었기에 나는 그 고객님의 얼굴까지 기억하고 있었다. 줄눈쟁이들이 초보때 시공한 AS 가보면 눈을 뜰 수가 없을 거라는 말을 엄청 했었지만 당당한 나는 내가 시공한 줄눈이 잘 되었는지 보고 사진까지 찍어올 참이었다. 


'맙소사!! 이 줄눈 내가 했다고?'

내 눈이 의심스러웠다. 어떻게 그때 내가 줄눈을 잘한다고 말하고 다닐 수 있었을까?라는 생각에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동생이 한 말이 무슨 말인지 1년이 지난 후에야 알게 되었다. 아니다 뼈저리게 느끼게 되었다. 삐뚤 하지는 않지만 어딘가 모르게 킬각이 없고, 모서리는 잘 처리가 되어있지만 두리뭉실한 것 같은 미묘한 차이를 그때는 못 보았던 것이다. 나의 하늘을 찌르는 자신감은 뒷배에 줄눈쟁이 동생이 든든하게 있었기에 가능했었다는 것을 생각하지 않고 까불었던 거다. 물론 고객님의 만족도는 높았지만, 줄눈쟁이가 되어 바라본 나의 시공은 디테일이 부족했다. 

    

줄눈시공은 누가 하는지에 따라서 모양이 크게 변하지는 않는다. 

육안으로 봐서는 솔직히 경력을 가늠할 수도 없고, 색상에 따라서, 고객의 취향별로 만족도가 달라진다. 

다만, 똑같이 생긴 아파트지만 조금씩 달라지는 현장을 이해하고, 숙련도에 따라서 내구성이 달라질 수 있겠다. 커튼 바꾸듯이 뜯어내고 바꿀 수 있는 시공이라면, 기계로 딱딱 찍어낼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느냐만은 모든 조건은 다르기 때문에 핸드메이드로 꼼꼼히 만들어내야 한다. 현장에 맞는 제대로 된 밑작업, 고객과 소통하며 맞춤 시공하는 것 또한 시공자의 능력이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시공을 노련하게 해내는 노련미는 숙련된 기공만이 할 수 있는 능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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