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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원희 Oct 26. 2024

배고픈 독립

헝그리정신은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우리는 대박현장에서 날아다녔다. 동생은 돈을 벌었고, 나는 기술을 몸에 익혔다.

어느 정도 머리가 굵고 나의 의견들이 생길 때쯤 독립을 할 때가 왔다며, 동생이 줄눈시공 3,4집 정도 할 수 있는 줄눈재와 안료등 장비를 챙겨주었다. 너무 배부르게 시작하면 쉽게 포기한다는 말과 함께, 한집 시공하고 돈을 벌어서 장비를 늘려가라고 했다. 이쯤엔 기술을 배우려고 하는 사람은 많은데 알려주는 곳이 많지가 않았다. 줄눈쟁이들끼리도 각자 알고 있는 기술이나, AS방법 같은 노하우들을 쉬쉬하며 알려주지 않을 때였으니까. 나는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줄눈업의 비포장길을 먼저 걸어본 든든한 동생이 있는 배부르게 시작한 케이스라 그렇게 얘기했으리라 생각된다.


  나는 대구에서 사업자를 내었다. 영업에 대한 구상을 하고 있었다. 이 정도면 잘 될 거라는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동생에게 많은 것을 받았고, 배웠기에 시공에 대한 자신감은 충만했다. 공짜로 프린트할 수 있는 친구 집을 찾아가 전단지 인쇄하고, 거주 중인 아파트를 들어가 전단지를 붙이기도 했다. 한 달이 지나가는데 그 누구도 나에게 줄눈을 맡기지 않았다. 한날 지인에게 전화가 왔다. 견적을 뽑아 달라는 거였다. 견적을 뽑는 방법을 그렇게 배웠는데도 막상 현장을 가보니 막막했다. 매번 그렇게 동생에게 사진을 보여주며 조언을 구해가며 견적을 뽑는 것도 배우고 또 배워야만 했다. 구축 아파트 대상으로 영업할 생각이었지만 시공도, 영업도 어느 것 하나 쉽지가 않았다. 비용이 비싸고, 물을 사용할 수 없는 시간이 너무 길었다.


  줄눈재는 습기가 있으면 경화가 잘 되지 않는다. 경화 전 물을 사용하면 내구성이 떨어지거나, 부분적으로 경화가 되어 끈적끈적하게 엿처럼 붙어서 묻어나거나, 줄눈의 라인이 물결처럼 이색이 나거나, 기포가 생기는 등 다양한 경우의 수가 발생한다. 가정집의 특성상 욕실에는 물이 한가득 있을 꺼라 최대한 바싹 말리고 시공을 해야 한다. 매지를 제거했을 때 물이 흘러나올 수 있고, 주인도 모르는 누수가 있을 수 있는 상황을 고객에게 충분히 안내해야 한다. 타일의 유분이 많거나 곰팡이가 많은 경우 탈착 하자도 빈번하며, 곰팡이가 옮겨올 수도 있다. 타일 안쪽의 안 보이는 구조도 파악을 하고 있어야 했다. 정보가 많이 부족한 탓에 인터넷과 동생의 경험을 의지하며, 최대한 많은 시공으로 나의 부족한 경험을 채워나가야 했다. 살고 있는 지인집들과 우리 집을 시공하며 연습했다.


 대구 지역에 있는 신축아파트 리스트를 뽑았다. 입주시기와 입주민 카페들을 검색하는 것이 매일 일과였다.  박람회를 들어가기 위해서는 일정을 정확하게 알고 있어야겠다는 생각에서였다. 지금은 박람회를 안 하는 곳은 찾아보기 힘들지만, 10년 전만 해도 박람회가 없는 아파트들도 있고, 업체들이 소액을 지불하면 광고를 할 수 있는 아파트들도 있었기에 기회를 만들어 낼 수 있었다. 남들은 주말에 박람회도 하고 일을 하는데 나 혼자 집에 덩그러니 일을 안 하고 있는 것 같아 조급한 마음이 들었다. 그러던 어느 추운 겨울날, 막내가 이제 막 걷기 시작할 때였다. 아이를 봐줄 사람이 없어서 막내를 둘러업고 사전점검 현장으로 전단지와 명함을 들고나갔다. 이미 경력이 있는 업체들은 아파트 안에서 영업을 하고 있었고, 아파트 밖에도 포진해 있었기에 내가 설자리는 없어 보였다.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고는 입구가 겨우 보이는 코너에서 명함을 전달하는 일이었다. 입주민들은 주차장으로 바로 들어가고 있었기에,  입주민 만나 명함을 주는 것조차도 하늘의 별따기였다. 그래도 내가 점찍어둔 아파트에서 꼭 시공을 하고 말겠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한 명 한 명 성심껏 명함을 드렸고, 커피를 사려고 나온 입주민분이 내 앞에 멈춰 섰다. 그 아파트 카페를 만든 카페지기였다. 그것을 알리 없었던 나는 타일 하자를 찾아드리겠다는 말과 함께 눈에서 레이저를 뿜으며 줄눈에 관해 열심히 설명했다. 며칠 후 나는 카페지기의 시공 예약을 잡았고, 줄눈시공 역시 성공적으로 할 수 있었다. 그는 어린 딸과 손잡고 나와서 명함을 돌리는 내가 간절해 보였고, 그 간절함으로는 뭐든 할 수 있는 사람처럼 보였다고 한다. 그분의 홍보덕에 그 아파트에서 나는 꽤 많은 시공을 할 수 있었다.  

    

  첫 시공을 시작으로 감사하게도 소개, 소개가 연결되어 줄눈시공을 계속할 수 있었다. 통장에 400만 원이라는 여유 돈이라는 것이 생겼다. 그동안 승용차에 자재를 실어 시공을 했었고, 집에 차가 필요한 날이면 자재를 다시 내려주기를 반복하며 일할 때 쓸 수 있는 차를 사고 싶었는데 드디어 살 수 있게 되었다. 비록 작은 다마스지만 우리의 첫 사무실을 얻은 것 마냥 신이 났었다.  '줄눈시공 전문가'라는 멘트를 넣어서 차에 랩핑까지 마무리하며 나의 배고픈 독립은 시작되었다.


   기술을 배우면서도 시작하면서도 배고팠다. 장비마저 완벽하게 세팅하고 시작하는 배부른 독립을 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독립은커녕 다시 동생밑으로 들어가거나 혹은 줄눈을 포기하고 직장을 구했거나 그렇게 하지 않았을까? 뭐든 풍족하다고 좋은 것만은 아니다. 헝그리정신이 없었다면 지금의 나의 모습도 없지 않았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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