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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원희 Oct 26. 2024

굴러온 돌의 균형 맞추기

딱 중간만 하면 되는 거야!

 메이저리그에 진입하게 되면서 바쁜 일정을 보내게 되었다. 박람회장에서 사용할 샘플판, 모형집을 만들고 다른 업체들은 사용하지 않는 좋은 안료를 찾아 홍보했다. 어떻게 해야 눈에 잘 띄는지에 대해 수없이 고민했다. 지금이라면 다른 업체들의 제품도 비교해 보고, 건축과 육아 박람회도 찾아다니면서 눈에 띄는 간판이나 전단지 디자인을 참고해 눈높이를 높였겠지만, 그땐 그런 걸 전혀 몰랐다. 그냥 앞만 보고 달리는 경주마 같았다. 무조건 잘해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동종업체 사람들도 마냥 좋게 봤을 리 없고, 치고 올라오는 후배들이 무서웠을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든다. 행사장에 가면 종종 동종업체 사람들이 무시하는 듯 눈을 째린다. 나이가 나보다 많았던 그들은 좀처럼 말을 높이는 법이 없다. 나의 샘플 하우스 보며 비꼬듯 묻는다.

    

“어디서 이런 걸 사? 얼마 줬어?”  “재주도 좋다. 열심히 해. ”   

  

동생은 행사장 가면 중간만 하라고 늘 강조했다.     

“어디 가도 그냥 모른다고 하면 중간은 하니까.. 화내지도 말고, 그냥 모른다고 하고, 아는 척도 하지 말고, 계약 많이 나왔다고 말하지도 말고, 물어보면 적당히 했다고 해. 그냥 무조건 중간이라고만 해.”   

  

그들을 볼 때마다 한번씩 속에서 열불이 났다. 아무리 웃으며 넘기려 해도, 마음속에선 천사와 악마가 계속 싸움을 붙였다. ‘어디서 이런 걸 샀냐고? 재주가 좋으니까 직접 만든 거지, 지난번에도 똑같이 물어봤잖아!.’ 마음속으로는 그들에게 한마디 쏘아붙이고 싶었지만, 그저 웃으며 ‘네, 감사합니다’라고 답했다. 침착하게 대처해야 했다. 굳이 맞대응할 필요도 없고, 그렇다고 기분 나쁠 필요도 없고, 나는 그냥 웃었다. 웃는 게  정답이었다. 참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나는 몸으로 느끼고 있었다.  

 불뚝불뚝 눈이라도 마주치면  '가만히 있으니 내가 가마니로 보이나, 보자 보자 하니까 내가 보자기로 보이나.' 라며 똑같이 무시라는 것이 하고 싶기도 하다가,  '그래~ 빌런 없으면 이 세상 사는 재미가 있을 리가 있나!!.' 그렇게 내려놓고 마음을 가다듬는 연습을 얼마나 했는지 모른다. 마음속으로는 쌈닭이 되어고 가고 있었다.

     

박람회장에서는 내가 너무 잘나도 시기 질투 때문에 욕먹는 업체는 오래 버틸 수가 없다. 그렇다고 너무 못나도 무시당하고, 안 되는 현장 알 박기만 하는 처지가 되니 그것도 오래 버틸 수가 없다. 동생이 늘 강조했던 ‘중간만 하라’는 말을 마음에 머릿속에 수없이 되뇌다, 그 말을 행동으로 지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직접 겪으며 깨닫고 있었다.


입주박람회는 단지별 세대수에 따라서 입점되는 업체의 수가 정해지고, 박람회 업체로 선정되면 입점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한마디로 그 아파트의 영업권을 사 온다고 보면 된다. 여름철 해수욕장이나 축제하는 곳에 가면 푸트트럭들이 있다. 모두 알고 있듯이 입점료를 내고 정해진 기간 장사를 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입점 업체들은 입주민들 커뮤니티인 네이버카페에 카테고리가 생성되고, 그곳에 일정기간 동안 홍보를 할 수 있는 권한이 주어진다. 그리고 입주시작되기 한두 달 전쯤 2일 또는 3일 컨벤션 센터에서 입주행사를 진행한다. 기획사에서는 모객을 위해 사진전검(내 집 처음 방문하는 날) 때 선물을 주고, 행사 당일 사은품도 제공하며, 화재보험 무료가입등을 홍보한다. 업체들은 카테고리에 박람회에 올 수 있도록 할인, 서비스 시공들을 제공하며 마케팅을 한다. 행사날은 우리의 간택을 기다린다. 한 단지를 위해 최소한 3개월의 시간과 2일의 현장영업, 입점비까지 따져보면 꽤 많은 비용이 들어간다.

          

두어 차례 박람회 하면서 나는 굴러온 돌이 박힌 돌 빼먹는다며 욕도 먹었지만, 누구냐며 먼저 친해지고 싶다며 먼저 전화를 걸어오거나 커피를 사들고 오는 업체들도 생겨났다. 나는 행사준비도 철저하게 했지만 정해진 날짜에 해야 하는 광고는 놓치지 않고 열심히 했고, 기억에 남는 문구를 만들어 내려고 애를 쓰다 보니 광고를 보고 나를 찾아오는 고객들도 생겨나기 시작했다.         

  

“줄눈시공, 안 해본 사람은 있어도 한번 해본 사람은 없습니다.”

“곰팡이랑 싸우지 마세요. 줄눈시공 잘하는 저한테 맡기세요.”

“건강과 인테리어 효과를 한 번에 잡을 수 있는 줄눈시공은 제가 잘합니다”

“이글 보고 캡처해서 오세요. 새해 복~~ 받으실 거예요~”      

재미있고 인기 있었던 광고들을 패러디하며 나의 광고는 조회수가 다른 이들보다 높았고, 박람회 현장에서 늘 반응이 좋았다. 다행히 박람회 현장에서는 째려보는 동종업계 사람들보다 다른 업종 사장님들이 훨씬 많았다. 나의 계약으로 얻은 신뢰로 다른 업체를 소개하면 좀 더 수월하게 계약으로 연결되기 때문에 미움보다는 사랑을 훨씬 더 많이 받았다. 감사하게도 좋은 분들도 많이 만나면 인맥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나는 그 중간에서 균형을 맞추려고 노력했지만, 문제도 많이 있었고, 적이 된 업체도 있다. 한결같이 응원해 주시는 분들부터, 늘 나만 보면 감사 인사를 하는 분도 있다.  어떻게 내가 100프로 다 좋겠어. 50프로 좋고, 50프로는 싫은 거지. 그렇게 중간에서 중심을 가지고 소신을 지키려고 노력하며 살아야지. 조금씩 경력이 쌓여가며 여유도 생겨가고 있다.


그래도 나는 늘 최고가 되어야 한다는 압박감에서는 벗어나지 못했다. 10년이 지난 지금도 행사하기 전에는 늘 떨리고 긴장되는 것을 보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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