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회는 만들어 내는 것
줄눈재는 빠르게 경화되는 폴리우레아라 코팅 재라고 이해하면 쉽겠다. 주제에 경화제를 섞으면 약 5-6시간 이후 타일사이 백시멘트에 붙어 단단해진다. 경화 후에는 표면은 유리면 같이 매끄러워서 이물질들이 침투하지 않고 청소하기가 쉬워진다. 줄눈재에 다양한 재료의 안료를 넣어서 색상을 만들어낸다. 재료로는 필름지를 잘게 자른 것부터, 운모 돌가루, 유리가루, 숯까지 곱게 갈아 코팅을 입힌 다양한 분말가루다. 요즘은 물감 같은 액체형 안료도 있다. 고객의 취향별로 골드, 실버, 그레이, 브라운 계열의 20가지 이상 색상들을 선택할 수 있다. 줄눈재의 가사시간은 20여분 남짓이고, 안료의 종류에 따라서 점도도 가사시간도 달라진다. 점도가 달라지면 시공할 때 사용하는 헤라의 각도, 힘을 주는 방법도 달라진다.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면 얇게 막을 씌운 것처럼 잔상이 생기는데 추후에 떨어지는 하자를 만들어낼 확률이 높다. 줄눈시공에 관한 이론과 경험을 쌓아 갈수록 나의 작업은 더 정교해지고 까다로워졌다. 줄눈과 친해지고 익숙해지면서, 영업에도 자신감이 생겼다.
매주 사전점검 현장에도 어김없이 나갔고, 박람회정보도 꾸준히 모았다. 옆에서 침산동이라고 하면 어느 아파트 몇 세대가 언제 입주를 하는지, 사전점검일은 언제인지도 외우고 다녔다. 머릿속엔 3달의 스케줄을 액자처럼 넣고 다녔고, 고객이 "일정을 10월 20일 가능하냐?" 물으면 그날이 무슨 요일이고, 시공이 있는지 없는지는 스케줄표를 보지 않도고 바로 대답할 있을 정도였다. 누가 툭 건드리기만 해도 단가표는 내 머릿속에서 막힘없이 튀어나왔다.
줄눈 시공에 대한 깊은 이해가 쌓일수록 나는 더욱 자신감 있게 고객들에게 설명할 수 있었고, 그 결과 영업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현장에서 고객의 질문에 막힘없이 응대할 수 있었던 것은 모두 나의 준비 덕분이었다. 이렇게 쌓은 자신감을 바탕으로, 나는 더 큰 기회를 찾기 시작했다. 특히, 아파트 입대위의 공지는 나에게 절대 놓칠 수 없는 기회였다. 누구나 제안서를 넣을 수 있고, 입주민들이 모인 자리에서 회사 소개를 하고, 박람회 없이 카페홍보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주겠다는 공지를 보고 제안서를 넣었고 기회가 생겼다. 만반이 준비를 하고 갔다. 줄눈이란 무엇인지 궁금해하는 모든 사람들의 Q&A에 막힘없이 대답하고 싶었다. 샘플부터 전단지, 명함, 그리고 제안서까지 꼼꼼하게 챙겨서 갔다. 옷맵시를 다듬고 인사는 어떻게 하면 신뢰도를 높일 수 있는지부터 차분하게 상담할 수 있도록 연습까지 하고 갔다. 막상 40명 이상 되는 사람들 앞에 서서 마이크를 잡고 회사를 소개하고 나를 소개하려고 하니 얼마나 떨리던지, 어떻게 했는지도 기억이 나질 않는다. 나가려는 나를 보고 누군가가 따라와서 불러 세웠다.
‘너 누구야? 어디 소속인데 여기 어떻게 알고 왔어?’
솔직히 말하면, 나는 어떤 공식 소속도 없었다. 주기적으로 박람회에 참가하는 대형 업체도 아니었고, 그저 열정 하나로 움직이는 작은 줄눈업체였다. 이쪽 업계에서는 한 기획사를 중심으로 행사가 진행되고 있었고, 그들끼리 오랜 인맥으로 얽힌 힘 있는 그룹이었다.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는 사람들이었지만, 나 같은 작은 업체는 쉽게 그들 사이에 낄 기회가 없었다.
하지만 나는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기회를 찾았다. 그러던 중, 마침내 기회가 찾아왔다. 그 그룹의 대표 격인 사람이 내가 광고한 아파트들의 이름을 말하며, 이 업체가 누구인지 궁금했다며 나를 불렀다. 오히려 나에게 어떻게 그렇게 효과적으로 광고했는지 되묻기까지 했다. 나는 자신 있게 그동안 쌓아온 정보와 경험들을 설명하며 대화를 이어갔다.
그렇게 안면을 트게 되었고, 나도 드디어 입주시장의 박람회, 즉 메이저 리그에 발을 들이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