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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원희 Oct 26. 2024

땅 파서 돈 벌어, 비싼 떡 잘 사 먹었다!

오늘의 적이 내일의 동지가 되는 곳

모든 업체들이 쉬쉬하면서 모든 정보를 비밀리에 공유하고 있었다. 나는 다양한 정보도 없고, 그들만의 규율도 잘 몰랐다. 눈치껏 조금 이상한 것이 있어도 조용히 눈감아야 하는 경우들이 종종 있었다. 박람회를 나가는 것만으로도 안정적으로 영업이 가능하다고 생각했지만, 크게 잘못 생각하고 있었다. 내가 알아야 할 것들이 뭔지도 모르고 여기저기 계속 찾으러 다니는 내 모습이 마치 조개 속 진주를 캐러다니는 기분이 들었다. 그것이 진주일지 진흙일지조차 분간하지 못한 채 말이다.


어느 날, 기획사 대표가 우리를 사무실로 불렀다. 뭔가 중요한 일인가 싶어서 하던 일을 멈추고 사무실로 달려갔다. 솔직히 무조건 갔어야만 했다. 오래된 창고 같은 건물 2층에 있는, 담배연기로 가득한 작은 사무실이었다. 80년대부터 아버지가 인테리어 쪽  일을 하면서 사용해왔다고 한다. 속으로 나는 생각했다. ‘뒷배가 있어서 저리도 뻣뻣했나 보네.’ 부럽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눈꼴사나웠다. 10명 정도 앉을 수 있는 테이블 끝에 앉아 담배를 문 대표는 능글맞게 말을 꺼냈다. 10년 전만 해도 이렇게 매너 없이 담배를 피우는 건 갑질의 상징처럼 보였다.     


“저는 술 먹고 꼬장 부리는 사람을 싫어합니다. 그런데 현장을 잡아오려면 돈이 필요해요. AA, BB, CC 아파트를 무조건 들어오시고. 대신 영업비를 지불하셔야 해요. 신규입점 업체들은 다 그렇게 합니다.”     


대놓고 돈을 달라고 하다니, 예상치 못한 일에 당황했다. 그냥 영업비를 업체들이 나눠서 부담한다고 생각했다. 엄밀히 따지면, 기획사는 영업비를 써서 아파트 단지 행사권을 따오고, 우리는 입점비(행사비)를 내는 고객임에도 불구하고 기획사 횡포가 암암리에 이루어지고 있었다. 어디서 못된 것만 배운 대표는 송금받으면서도 계속 담배를 피워댔다.


기획사들은 늘 입점업체들을 비공개로 모아 행사정보와 공지사항을 전달했다. 그러던 어느 날 밴드게시판에 ‘기획사의 만행’이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그 글은 신규 업체들의 무지를 악용해, 같은 업종의 기존 업체들과 달리 더 높은 입점비와 유흥 접대비를 요구했다는 폭로였다. 처음에는 나도 다른 업체들처럼 이런 비용을 영업비라 생각하며 넘겼지만, 다음 현장이 보장되지 않는 상황이 이어지면서 의문이 커졌다. 잠을 잘 때도 알람 소리에 예민하게 반응하던 나는 글이 올라오자마자 몇 분 안에 내용을 확인할 수 있었고, 삭제되기 전에 빠르게 읽어볼 수 있었다.      


계산해 보니 나도 모르게 상납한 돈이 상당했다. 몰랐으면 모를까, 어떻게 이럴 수가 있을까? 상생의 관계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나니 배신감이 들었다. ‘어떻게 우리를 위하는척하며 저렇게 위선을 떨지?’ 소름이 돋았다. ‘내가 어떻게 번 돈인데, 힘들게 땅 파서 번 돈을 자기들 배부르겠다고 삥을 뜯다니!’ 생각할수록 괘씸했다. 항의하던 업체들은 단톡방을 만들어 고소를 논의하고 있었다.  

     

그런데, 다 알고 있는 큰 형님이 전화를 해주셨다. “원래 이 바닥이 그렇습니다. 오늘의 적이 내일의 동지가 되는 곳이 이 바닥입니다. 나서서 적을 만들지 마세요. 그냥 떡 사서 먹었다 생각하고 그 사실증거를 무기로 가지고 계세요.”      


형님 말씀 듣고 잠시 지켜보자는 생각을 했다. 기획사에게 밑 보이는 일은 피하는 것이 좋을 것 같기도 했다. 얼마 뒤, 항의한 업체들은 보이지 않았고, 그 일로 기획사 내부에서는 파벌싸움이 일어나는 것 같았다. 나는 다행히 큰 형님의 그룹으로 분류되면서 더 이상 기획사의 횡포로 인한 손해는 보지 않았다. 그 못 배운 대표는 신뢰가 깨져 퇴출되었다. 나중에 들은 소식이지만, 그는 삥땅 친 돈인지는 모르겠으나 건물을 세워 떵떵거리며 살고 있었다. 하지만 죗값은 결국 치르게 될 테니 더 이상 마음에 두지 않기로 했다.    

 

이 바닥 더럽다 생각이 들 때도 있지만, 집에 있는 토끼 같은 아이들을 생각하면 참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마음 이용하는 사람들 때문에 화병이 날 것 같기도 했다. 내가 여기까지 오기 위해 어떤 각오로 버텨왔는지, 힘들었던 시간들을 떠올리며 마음을 다잡았다. 어디 힘들지 않은 일이 있겠나? 대기업을 다니는 직원들도 상사의 비위를 맞추지 않는가. 하물며 내 사업을 하기 위해 비위도 맞추고 영업도 하는 거지. 순간의 감정을 앞세우지 않기를 잘했다며 앞으로의 길을 생각하며 스스로 위로했다. 비싼 떡 잘 사 먹었다!   

   

갈대 같은 내 마음이 시간과 함께 흐르고 흐르면서, 나 역시도 이 바닥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     

그리고 나는 결심했다. 나는 돈으로 장난질하지 않겠다. 그리고 나에게 돈으로 장난질하는 사람과도 일하지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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