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고기 99만 원어치!
2년 전부터 기다려온 아파트 단지의 입주 박람회가 열렸다. 입주가 1년 정도 남았을 때, 입주민 카페에 박람회 공고가 올라왔다. 비록 박람회 일정은 정해지지 않았지만, 관심 있는 업체들은 선착순으로 입금하면 1년 동안 광고 기회를 얻고 박람회 입점 우선권을 받을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광고비는 20만 원. 나는 이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망설임 없이 입금하고 메일을 보냈다.
그 후 6개월 동안 아무도 메일을 보내지 않았고, 다른 업체도 입점을 하지 않았다. 덕분에 나는 단독으로 광고를 진행할 수 있었다. 입대위에서는 줄눈 시공을 나에게 맡겼고, 그 이유가 공고가 올라오자마자 가장 먼저 메일을 보낸 내가 인상적이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나는 1년 동안 줄눈에 대한 정보를 정성껏 전했다. 줄눈의 필요성, 시공 전후 모습, 추천 색상, 그리고 회사 소개까지 체계적으로 구성해 광고를 올렸다. 나의 목표는 글을 읽은 사람이라면 상담 없이도 계약을 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었다. 꾸준한 광고로 신뢰를 쌓아갔다. 명절과 크리스마스에는 인사를 전하고, 장마철에는 비로 인한 걱정을 덜어주는 글을 올리며, 입주민과 소통했다. 댓글과 쪽지로 받은 질문들을 Q&A 형식으로 정리해 광고 게시글에 추가하는 등 고객이 원하는 게 무엇인지 생각하고 그것을 반영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박람회를 앞두고 기대감이 너무 커서 전날 밤 잠을 설쳤다. 이날을 위해 정장까지 차려입고 갔다. 금요일 오전에 부스를 세팅하고 있었는데, 아직 준비가 끝나기도 전에 고객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1년간의 광고 덕분에 많은 사람들이 다른 줄눈 업체는 쳐다보지도 않고 내 부스에 와 앉았다. 몇몇 고객들은 상담 없이 시공 범위만 선택하고 계약서를 썼다. 내 글을 끝까지 읽었고, 내 전략이 맞아떨어진 것이다.
줄눈 시공은 타일이 있는 모든 곳에 적용할 수 있다. 바닥과 벽으로 구분되며, 구간별, 면적별로 금액이 책정된다. 보통 욕실 바닥, 베란다, 세탁실, 현관, 그리고 거실 바닥이 타일로 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벽면 시공은 샤워 부스 안쪽, 욕조 벽면, 주방 벽, 아트월 등이 있다. 특히 물을 많이 사용하는 욕실 바닥은 곰팡이 문제가 심해져, 대부분의 고객이 욕실 바닥 시공을 먼저 고려한다.
이번 박람회에서 행사를 진행한 아파트 단지는 거실 바닥을 강마루 또는 포세린 타일로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이 있었다. 주방만 타일로 시공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거실까지 타일로 마감한 경우는 줄눈 시공 범위가 많아져, 단가가 높아지는 만큼 줄눈쟁이들에게 선호도가 높다. 이번 아파트는 줄눈업체만 10개가 넘게 들어왔다. 경쟁률이 치열했다.
동생들과 총 4명이 계약서를 작성하며 분주하게 움직였다. 당시 예약금은 1만 원이었는데, 우리는 농담으로 “토요일 예약금만으로 소고기 실컷 먹자”라고 했고, 실제로 토요일 예약금만 99만 원이 모였다. 그렇게 우리는 소고기 파티를 열며 성공을 자축했다.
그렇게 우리는 그 아파트를 독점했다. 통상적으로 메인 줄눈 업체가 독점하기 마련인데, 우리는 그 경쟁 속에서도 승리를 거머쥐었다. 함께했던 동생들과 청소팀까지 대략 18명이 움직였다. 나는 아침부터 하루 종일 색상 선택을 돕고, 일정을 잡으며 하루에 200통이 넘는 전화를 받았다. 흔히 말하는 ‘대박’이 난 것이다.
이번 아파트가 나에게 단순한 노동을 넘어 중요한 터닝포인트가 되었던 이유는, 고객을 진심으로 이해하고 공략하는 법을 알게 되면서 내 일에 대한 자부심과 가치가 더 커졌기 때문이다. 나의 기술은 그들의 집을 더 편안하고 아름답게 만들어주었고, 그 가치를 알아주는 고객들이 점점 많아졌다. 때로는 까다롭고 힘든 상황에 직면하기도 했지만, 이를 통해 더 단단한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
줄눈 시공은 이제 내 삶의 중요한 일부분이 되었고, 이 길을 계속 걷겠다는 확신이 생겼다. 고객을 대하는 태도와 일을 대하는 나의 마음가짐이 바뀌면서, 나는 ‘줄눈쟁이’로서의 진정한 출발선에 서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