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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소설]12화 갈 수 없는 길

갈 수 없다면 전하지 않을 것

by 문화

정현은 길었던 비행 탓인지 형명할 수 없는 신체의 통증으로 밤새 뒤척이다 이른 아침 눈을 떴다. 잠시 그대로 누워 멍하니 있다 이내 몸을 일으켜 부엌으로 갔다. 진통제와 생수를 들이키고 창을 열어 시원한 공기를 깊게 들이쉰 뒤 이불속으로 몸을 감추었다. 눈을 감은 후 한 시간 여정도 지났을까 메시지 알림 소리에 다시 정신이 들었다. 준희의 메시지였다. 진통제가 그의 몸을 안정시켰다면 준희의 메시지는 그의 심장이 살아있음을 느끼게 했다.


"딩-동"


입가에 미소가 지어지던 찰나 현관 벨소리가 울렸다.


"어?"

"뭐야?"


도영의 얼굴을 보고 문을 열자 그 뒤에서 혜선이 얼굴을 내비치었다.


"먹을 거 좀 사왔어"


도영이 양손 가득 비닐을 들어 보이며 집으로 들어섰다.


"미리 말을 하지"


"왜"

"무슨 일 있어?"


혜선은 테이블에 음식을 펼치고는 바닥에 앉아 정현을 바라보았다. 그런 광경을 보며 정현이 머리를 긁적이다 테이블 앞에 앉았다.


"좀 있다 약속이 있어서"


"이거 먹고 나가면 되지~"

"혜선이가 아침부터 웨이팅해서 사가자고 해서 사 온 거야"

"너 비행때문에 피곤할 거 같다고 직접 사 온 거라고~"


"..."

"고마워"


"그럼 맛이라도 봐"


"야, 먹어보자."

"나도 배고프다"


도영이 혜선의 말에 숟가락을 들며 정현을 재촉했다.


"크"

"국물 죽이네"


도영이 먼저 한입 먹으며 정현에게 눈짓했다. 정현은 미안한 마음에 국물 한입 떠먹었다.


"맛있어"


그제야 혜선이 미소를 지으며 숟가락을 들었다.


"어디 가는데?"


혜선이 한입 떠먹으며 정현에게 물었다.


"준희 만나기로 했어"


"준희?"


"준희?? 혹시 그 공항?"


도영이 말을 뒤이으며 궁금한 듯 되물었다.


"응"


"우리는 정현이 네가 피곤할 줄 알고...."


혜선이 낮게 읊조렸다.


"너 걔 많이 좋아하나보구나?"


도영은 연신 국물을 떠먹고 있는 정현에게 놀라운 듯 물었다.


"응"


혜선의 눈망울이 원래 그렇게 초롱초롱했던가. 물이 가득 찬 컵의 수면이 찰랑이듯 혜선의 눈망울이 찰랑이고 있었다.


"그렇구나.."


"잘 먹었어. 남은 건 나중에 먹을게"


"야, 그래 그래"

"냉장고에 넣어두고 내일이나 데워먹어"


도영은 혜선이 서운할까 정현을 대신해 닭다리를 뜯어 입에 넣으며 맛있다는 듯 행동을 취했다.


"먹고 있을래?"

"나는 좀 씻을게"


일어나는 정현의 모습에 혜선은 아무 말도 못 하고 숟가락으로 국물만 휘저었다.


"그래, 씻고 와"


도영이 정현에게 손짓하며 정현이 먹다 남은 음식과 일회용기를 주섬주섬 정리했다. 정현이 자리를 비우자 도영은 혜선의 눈치를 살폈다.


"괜찮아?"


"응"


"더 먹을 거야?"


"치우자"


도영과 혜선은 자리를 정리하고 정현이 먹기 좋게 음식을 냄비에 옮겨두었다. 혜선은 거실 창 밖을 바라보고 도영은 거실에 앉아 핸드폰을 만지며 정현을 기다렸다. 정현은 예상치 못한 도영과 혜선의 방문에 조금 서둘러 씻고 가운을 입은 채 나왔다.


"여기까지 왔는데 미안"


"아냐. 우리가 미리 연락했었어야 했는데"


한층 마음이 정리되어 보이는 혜선이 정현에게 답했다.


"언제 나가?"


도영의 물음에 정현이 시계를 한번 보았다.


"머리 말리고 나가면 딱 맞을 거 같아"


"그럼 같이 나가자"


도영의 말에 정현이 끄덕이며 방으로 들어가 나갈 채비를 하기 시작했다. 흰 셔츠에 검은색 니트를 입고 아래도 검정 바지를 입어 색을 맞추었다. 거울을 다시 한번 보며 항상 뿌리던 향수로 마무리했다. 일어나자마자 먹었던 진통제가 듣지 않는 건지 미세하게 식은땀이 느껴지며 미간이 찌푸려졌지만 참을 만했다.


"가자"


방에서 나온 정현이 도영과 혜선을 보며 가볍게 얘기했다. 혜선은 정현의 들뜬 모습에 다시 마음이 가라앉았다.


"진짜 미안"


"됐어. 잘 놀고 와"


도영은 어깨를 양손으로 잡고 미안하다고 하는 정현에게 안심시키듯 웃어 보였다.


"근데 너 괜찮은 거 맞아?"

"땀은 뭐야"


가까이서 본 정현의 얼굴에 땀이 맺힌 것을 본 도영이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아, 이거"

"괜찮아"


정현은 관자놀이를 살짝 닦아내었다. 주차장으로 내려가기 위해 셋은 엘리베이터를 탔다. 혜선은 도영의 옆에 서 생각에 잠긴 듯했다.


"같이 타고 왔어?"


"응, 혜선이는 내가 데려다줄게"


"어디 세웠어?"


"네 차 옆에 자리 있더라"


엘리베이터를 나선 셋은 차를 세워둔 곳으로 다가갔다.


"먼저 빼"


"오케이"


도영이 차 문을 열며 먼저 출발하라는 말을 건넸고, 정현은 손을 들어 보이며 답한 후 차에 타 핸들을 양손으로 잡고 숨을 골랐다. 도영과 혜선은 정현의 차가 출발하기를 기다린 지 잠시, 미동도 않는 정현의 차에 도영이 창문을 내리고 정현의 차를 바라보았다.


"뭐해-"


정현의 반응이 없자 낌새가 이상해진 도영은 차에서 내려 정현에게 다가갔다.


"박정현!"


도영은 운전대에 얼굴을 묻고 있는 모습에 문을 열고 정현의 어깨를 당겼다. 혜선은 도영의 외침에 서둘러 차에서 내렸고 찰랑이던 눈물이 넘쳐흘렀다. 도영은 의식을 잃은 정현을 차에 옮겨 병원으로 향했다.




도영은 정현이 치료 중이던 병원으로 향했다. 정현의 기록이 있어 추가 검사 없이 처치를 받을 수 있었다. 혜선은 부은 눈으로 병실 침대 옆에 앉아 정현만 바라보았다. 정현의 짐 속에서 작게 벨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지만 혜선은 지친 기색이 역력해 손을 뻗을 힘도 없었다. 한참을 울리던 벨소리가 끊기고 도영이 병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정현이 부모님께 연락드렸어"


"응.. 걱정하시겠다.."


혜선의 말이 끝나자마자 다시 벨소리가 낮게 울리기 시작했다. 도영은 두리번거리다 서랍에 넣어둔 정현의 짐 속에서 울리는 핸드폰이라는 것을 깨닫고 서랍을 열었다. 핸드폰 화면에 보이는 이름은 '준희'였다. 도영은 정현에게 들었던 약속이 떠올라 기다리고 있을 준희를 위해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누구세요?"


정현은 정신이 돌아오던 차에 복도 끝 멀리서 들리는 듯한 음악소리와 도영의 목소리에 힘겹게 눈꺼풀을 올렸다.


"정현아!"


정현만 보고 있던 혜선이 울음을 삼킨 목소리로 일어나 그의 팔에 손을 조심스레 올렸다. 전화를 받던 도영 역시 놀라 멈추었고 핸드폰 너머 상대 역시 가만히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정현은 눈 앞에 보이는 것을 따라 시선을 옮기며 병실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마지막 기억은 주차장. 그렇다면 준희가 기다리고 있다. 도영이 들고 있는 핸드폰은 내 것이고 그렇다면 준희일 것이라는 느낌이 스쳐지났다. 도영에게 손을 뻗었다.


"이거?"

"준희씨인 거 같더라"


정현은 이제 막 잠이 깬 듯한 목소리를 가다듬고 전화를 받았다.


"준희야, 미안"

"기다렸지.."


"어디야?"


보채지도 화내지도 놀라지도 않은 차분한 준희의 목소리가 들렸다. 정현이 처음 겪는 준희의 온도였다.


"일이 좀 생겨서 오늘은 못 가"

"연락 못해서 미안"

"다음에 보자"

"내가 전화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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