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시와 준비
"안녕~~!"
정현의 핸드폰 화면 너머로 준희 옆의 동글동글하게 생긴 여자가 높은 톤으로 인사를 해왔다.
"나는 준희 친구 은영이야"
"준희한테 얘기 많이 들었어~~"
"캘리포니아에서 만났다며?"
"안녕"
"나도 준희한테 들어서 궁금했어"
정현은 낮은 톤으로 은영을 반겼다. 준희의 친구구나. 다른 느낌을 가지고 있었지만 준희만큼 밝고 맑아 보였다. 은영의 옆에서 준희는 활짝 웃고 있었다. 친구와 있으면 저런 느낌이구나. 준희의 세계로 들어선 느낌이 들었다. 새삼스레 자신의 모습이 의식 돼 머리를 한번 털어 넘겼다.
"다음에 같이 놀자~!"
"좋아"
은영은 어느덧 셋이 친구였던 마냥 편안한 분위기를 만들어주었고, 은영의 옆에서 정현을 보고만 있던 준희가 편안하고 낮은 톤으로 궁금한 것을 물었다.
"저녁 먹었어? 바로 집으로 갔어?"
"바로 왔고 막 씻고 나왔어."
"저녁은 아직"
"별로 땡기는 게 없네"
"맛있는 거 먹는 거 같던데"
"은영이가 떡볶이랑 이것저것 시켰어"
"다음에 맛있는 거 같이 먹자"
"그럼 좀 쉬어. 연락할게!"
준희는 손을 흔들어 보이며 정현에게 인사했다. 둘만의 시간이었다면 좀 더 길어졌을 통화였겠지만 인사만 나눈 채 전화를 끊었다.
"뭐야~ 공항에서 본 거랑 뭔가 또 달라"
"근데 여전히 잘생겼어~~~!"
전화를 끊은 은영은 준희의 어깨를 잡고 흔들며 한껏 들떠 있었다. 준희는 멋쩍게 웃으면서도 그의 상태가 걱정스러웠다.
"오늘 자고 갈 거야?"
TV 옆 시계를 슬쩍 보며 준희가 은영에게 되물었다. 은영은 소파에 기대어 움직이기 귀찮다는 듯이 고민하다 그럼 자고 가겠다는 말을 이었다. 준희는 방으로 들어가 은영이 입을만한 옷가지를 가져다주고 식탁을 치웠다. 은영이 씻으러 간 동안 준희는 캐리어를 펼쳐 일회용 카메라만 꺼내어 매만졌다. 바로 인화할 계획이었다. 한국으로 돌아오니 캘리포니아에서 있었던 그와의 날들이 멀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공간의 변화가 이토록 크게 영향을 주었다. 흐릿해지기 전에 그 설렘을 이어가고자 인화를 하고 그에게 사진을 전하며 추억을 나누고 싶었다.
"어디서 잘래?"
머리에 수건을 감고 나온 은영에게 준희가 물었다. 준희의 집에는 손님 방이 따로 있었던 터라 본인과 같은 방을 쓸지 은영에게 물은 것이다.
"오랜만에 같이 잘까?"
"마음대로"
준희가 침대에 눕자 은영은 그런 준희를 보며 옆으로 누웠다.
"네 마음이 편해 보여서 다행이야."
"꽤 괜찮았던 선택인 거 같아."
"그렇게 보여?"
"응"
은영은 준희를 보며 그녀가 캘리포니아 가기 전과 후가 많이 달라졌음을 얘기해주었다. 준희는 자신을 가장 많이 알고 가까이에서 보고 있는 은영의 말에 안심이 되었다. 한국에서 시달리던 악몽에서도 벗어나고 온 몸이 땀에 젖어 깨던 날들도 줄어들었다.
커튼을 치고 자지 않았던 터라 아침 햇살에 준희가 이른 기상을 했다. 은영이 깰까 조심스럽게 일어나 커튼을 쳐주었다. 준희는 핸드폰을 들고 부엌으로 가 정수기에서 미온수 한 잔을 내리고 거실 소파에 앉았다. 정현에게 메시지가 와 있었다.
'나는 먼저 잘게.'
'잘자, 내일 봐'
준희는 그에게 잘 잤냐는 답장을 보냈다. 한마디를 더 적으려던 찰나 메시지 읽음 표시가 떴다. 정현도 깨어있었다. 왜 이렇게 일찍 일어났냐는 물음과 오늘 뭘 할 것인지 묻는 메시지가 왔다. 준희는 바로 정현에게 컨디션이 괜찮은지 물었고 인화하러 갈 것이라는 얘기를 해주었다. 그들이 주고받는 메시지에는 서로에 대한 설렘으로 가득했다. 여행지라는 낯선 설렘이 사라지고 나면 무엇이 남을지 불안했던 것이 무색할 만큼 오히려 마음이 따뜻함으로 가득차서 벅차고 있었다. 이게 사랑이 아니면 뭘까.
정현은 준희가 인화하러 가는 곳이 어딘지 물었고 시간 맞춰 데리러 가겠다는 제안을 했다. 준희는 위치와 시간을 알려주며 은영이 같이 갈 수도 있으니 인화하는 곳에서 만나자고 전했다. 정현은 준희의 친구를 만나는 것에 긍정적이었고 출발할 때 연락하겠다는 메시지를 남겼다. 준희는 정현의 마지막 메시지를 확인 후, 욕실로 향했다.
준희가 씻고 나와 캐리어를 옮기며 세탁기에 빨랫감을 넣는 동안 은영이 눈을 부비며 거실로 나왔다.
"뭐해?"
"캐리어 정리하고 있어."
"좀 있다가 인화하러 갈 건데 갈 거지?"
"거기서 정현이 만나기로 했어."
"오!"
"가야지~"
운전대를 잡은 은영이 시동을 걸며 날씨가 좋아 기분이 더 좋다는 말을 했다. 준희는 끄덕이며 집 앞에서 사 온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그리고 정현에게서 온 메시지를 확인했다. 출발한다는 메시지와 30분이면 도착할 것 같다는 내용이었다.
"정현이도 출발했대"
"오~~"
"인화하고 어디로 가지?"
"근처에 갈 만한데 찾아볼게"
"거기 호텔에 크리스마스 장식 엄청 예쁘게 해놨더라!"
"거기 갈래?"
"분위기도 좋고 맛도 있고!"
"그러자 그럼"
은영과 준희는 인화하는 곳 근처에 도착해 차를 세웠다.
"정현이는?"
"우리가 먼저 도착했나봐."
"연락이 없네"
"그럼 들어가 있자"
준희는 정현에게 메시지를 남긴 후, 은영과 인화하는 곳에 들어가 필름을 맡겼다. 준희는 생각보다 많은 손님에 아직도 인화를 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느꼈다. 다시 돌아온 복고풍 유행이었다.
"카메라 잘 가져갔지?"
"응. 네 덕분에 이런 것도 남겨보네"
"것봐~다 도움이 된다구"
"근데 정현이는 아직이야?"
"음.."
"전화해볼까?"
은영과 준희가 대기를 하고 필름을 맡기는 동안 소식이 없는 정현에 의아했지만 길이 막혔거나 다른 사정이 있겠거니 별다른 의심을 하지 않았다.
"전화해보자!"
은영과 밖으로 나온 준희는 정현에게 전화를 걸었다. 녹음을 하라는 안내멘트가 나오도록 정현이 전화를 받지 않자 문득 불안이 감쌌지만 다시 한번 더 전화를 걸었다.
"왜?"
"안 받아?"
미간이 살짝 일그러진 준희의 표정을 보며 은영이 그녀를 안심시키듯 이런저런 말을 꺼냈다.
"오고 있나?"
"핸드폰, 주머니에 있어서 벨소리 안 들리는 거 아냐?"
은영의 말이 끝나자마자 핸드폰 너머로 정현의 목소리가 아닌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구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