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회 대신
2020년 방영 드라마 <런 온>을 봤다. 인물 설정상의 클리셰는 물론 있으나 그 설정을 개연성의 전지전능한 도구로 사용하지 않는 점이 좋았다. 새삼 알게 된 사실은 주인공으로 나온 임시완 배우가 살 떨리게 멋있다는 것과 말맛이 살아 있는 드라마라는 것.
12화에 이런 대사가 나온다. "엎지른 말 주워 담을 수 없어. 잘 닦아서 치우면 돼."
엎지른 물은 주워 담을 수 없다. 말도 그렇다. 엎지르거나 엎지르지 않거나 두 가지 결과만 있는 물과 말을 엎질렀을 때 수습하는 방법은 잘 닦아서 치우는 방법뿐일 터다. 그것들은 집히지도 담아지지도 않으니까.
말이든 물이든 행위든 감정이든 우리는 흘리고 산다. 그저 흘리고 사는 것을 대하는 삶의 태도가 저마다 다를 뿐이다. 혹자는 최대한 흘리지 않으려 할 것이고, 혹자는 어차피 흘릴 거로 생각해 흘리지 않기 위한 노력보다 ‘흘리고 나서’ 부분에 더 노력을 들일 것이다. 나는 전자에 속한다. 그래서 늘 괴롭다. 인간은 안 흘리고는 살 수 없는 종족이라 필사의 노력에도 기필코 흘리고야 만다. 주워 담을 수 없다는 것도 알고, 그렇기 때문에 잘 닦아서 치워야 한다는 것도 이미 알고 있다. 그렇지만 알고 있다고 해서 자연스러워지는 건 아니다.
<런 온>의 대사가 위로처럼 다가왔다. 거기 나오는 사람들은 뭘 많이 흘렸다. 그들은 그들이 흘린 많은 것들을 기 써서 주워 담는 대신, 열심히 닦았고 열심히 치웠다. 그 모습이 꽤 괜찮아 보여서 위로가 됐다.
그게 무엇이든 끊임없이 잊으려고 하는 내가 잊지 못하는 일의 대부분이 잘 닦아 내지 못한 일들이다. 건강한 수습이란 걸 해본 적이 별로 없는 것 같다. 실은 별로 없었다고 믿는 쪽에 더 가까울 것이다. 닦아서 치우는 일은 아무리 해도 자연스러운 느낌이 들지 않고, 부자연스러움이 동반한 이질감이 싫어 자꾸만 덜 한다. 끝까지 치워 보지만 덜 치운 기분이 들고, 또 이질감에 거북하고, 치운 걸 또 치우고. 흘린 것을 잘 처리하는 야무진 손을 갖고 싶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로 시간이 흐르면 물은 증발하고 말은 휘발한다. 내가 미처 치우지 못한 것들/못했다고 느낀 것들이 지금쯤은 휘발되었을까. 그때 조금 더 애써볼걸. 최선을 다해 치워 볼걸. 사라질 수 있는 것들이 사라지고 미련이 남았다.
야무진 손을 가진 <런 온> 속 미주(신세경)는 선겸(임시완)에게 “빛나는 순간들에 대한 미련을” 땔감으로 “값지게 쓰라”(6화)라고 말한다. 내가 값지게 써야 할 땔감도 아마 미련일 것이다. 엎지른 무엇들을 재량껏 처리하지 못한 것에 대한 미련들. 그것들이 땔감이 되기 위해 내 가슴께 어딘가에서 나를 가만두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