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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존재 증명이라니 애매하잖아

by 라리아라

※이 글은 글쓴이의 학교에서 개인 전시에 발표된 글입니다.※


너는 맛있는 음식을 좋아한다면서 공복을 즐겨.

가족들을 사랑한다면서 그들에게 다가가지 않아.

안전을 추구한다면서 위험 사이를 가로질러가지.

그래서 내가 불안한 거야.

넌 나를 좋아한다고 했잖아.


가끔씩 너는 작은 돛단배 같아.

폭풍우가 몰아치는 날,

육지와 멀리 떨어진 바다 한가운데에서 표류하는 그런 배 말이야.

그만큼 네가 언제 파도에 부딪혀 부서질지 알 수 없어서,

지금 당장이라도 물 밑으로 가라앉아 사라질 것 같아서,

그래서 위태롭고 안쓰러워.


가끔씩 너는 작은 파랑새 같아.

지금 당장은 내 손 위에 앉아있어도,

언제든지 날아가버릴 준비가 되어 있는 그런 파랑새 말이야.

그만큼 나는 네가 언제 날아가 나를 떠날지 알 수 없어서,

아주 먼 곳으로 떠나 다신 나를 보지 않으려고 할 것 같아서,

그래서 불안하고 두려워.


네가 없는 나의 세상은

너와 함께 사라진 색채들 탓에 의미 없는 흑백일 뿐일 텐데,

네가 없는 나의 세상은

성립하지 않는 문장처럼 의미가 없는데,

난 그렇게 네가 없는 이 세상에서 살아갈 용기가 없는데,

넌 예고도 없이 내 세상에서 슬그머니 빠져나가려고 하지.

언제라도 넌 세상을 떠날 결심을 하고 있잖아.


난 이제 더 이상 네게 소중한 사람이 아닌 거야?

네가 사라짐으로 인해 상처받을 나는 생각나지 않을 정도로 내가 소중하지 않은 거야?

그래서 내가 아무리 말해도 포기하지 않는 거야?


제발 내 세상에서도,

너의 세상에서도,

이 세상 모두의 세상에서도

빠져나가지 말아 줘.

네가 손에 쥔 모래알처럼 스르르 빠져나가서,

다시는 찾을 수 없는 상태에 다다르고 마는 것이,

난 너무나도 두려우니까.


도망가지 말아 줘.

너를 보면 언제든지 모든 것을 버리고

홀연히 떠날 준비가 된 것 같은 느낌이 들어.

모든 것이 이제 더 이상

네겐 의미가 없어졌다는 느낌이 들어.

그리고 가끔은, 그 '모든 것'에

나도 포함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

그럴 때마다 난 가슴이 찢겨 죽을 것 같아.

그 고통을 느끼지 않기 위해서라도,

난 널 꼭 이 세상에 잡아둬야겠어.


넌 우리가 처음 봤을 때부터 날 좋아했다고 했지.

나도 당시 너와 같은 종류의 마음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널 좋아했던 건 맞아.


늘 머뭇거리고 뒤처지고 느려도

네 올곧은 생각이

참 마음에 들었어.


희미하고 은은해도

밝게 빛나는 네 웃음이

참 마음에 들었어.


언제나 수줍더라도

나에게 호감을 표시하는 네가

고맙고 참 마음에 들었어.


비록 키가 크고 잘생기지는 않아도

작고 귀여운 네가

참 마음에 들었어.


너는 어땠어?

모든 면이 완벽하진 않아도 아름다운 너인데,

그에 반해 나의 추레하기만 한 모습과

추악하기 그지없는 생각들을 어떻게 바라보았길래

나를 그렇게 사랑해 주는 걸까.

그건 아직도 의문이야.

넌 내가 물어봐도 항상 뭉뚱그린 대답을 했지.

그냥 끌렸다는 대답만 내놓고 말이야.


내가 이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Y,

이 글을 들은 날에는

꼭 정확히 대답해 줘.

내가 왜 좋은지.


그리고 약속해.

다시는 나를 이 세상에

혼자 내버려 두고 떠나려고 하지 않겠다고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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