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이와 당근은 같이 있는 게 익숙한 채소들이다. 쌈밥집에 가면 스틱 모양의 오이와 당근이 꼭 붙어서 쌈장과 함께 나오고, 김밥의 속 재료로도 두 채소는 빠지지 않는다. 둘 다 몸에 좋은 채소이니 같이 먹는 게 당연해 보인다.
그러나 채소 간의 과학적 궁합을 따져본다면 오이와 당근은 서로 도움이 안 되는 조합이라고 한다. 당근에 함유된 아스코르비나아제 성분이 오이에 함유된 비타민C를 파괴하기 때문이다.
알고 보면 우리가 즐겨 먹는 많은 조합이 서로 상극이라고 밝혀졌다. 밀크티의 홍차와 우유도 좋은 조합이 아니다. 어렸을 때부터 이렇게 먹는 게 당연하다고 여겨진 토마토와 설탕, 팥죽과 설탕도 마찬가지다. 설탕이 토마토와 팥의 좋은 성분이 흡수되는 걸 방해한다. 설탕이 어디 가서 좋은 일 하는 걸 본 적이 없기에 이건 그냥 넘어가겠다.
하지만 시금치와 멸치의 궁합이 좋지 않다는 사실은 좀처럼믿을 수 없었다. 시금치멸치된장국이 얼마나 맛있고 건강한 건데! 이건 시금치멸치된장국에 대한 음해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하지만 어느 곳을 검색해 봐도 '시금치의 수산 성분이 멸치의 칼슘이 흡수되지 못하도록 방해합니다.'라는 냉정한 사실만 재차 확인할 뿐이었다.
멸치는 칼슘의 대명사인데 칼슘이 흡수되는 걸 방해하는 건 너무하긴 했지. 과학적으로 밝혀진 내용이라 반박하진 못하고 내가 좋아하는 조합이 모두 상극이라는 사실에 나는 조금 시무룩해졌다. 아무리 과학이 옳다고 해도 오이나 당근 둘 중에 하나가 빠진 김밥은 싫다. 토마토에 설탕을 뿌려 먹는 건 어릴 적 추억의 간식이라 가끔 그 맛이 그리워질 때가 있다. 또 나는 콩국수에도 설탕을 넣어먹는 설탕파라 팥죽에 설탕이 없다는 건 상상할 수 조차 없다. 그럼 단팥죽은 왜 있는 건데? 조금 억울해지려 한다.
사실 음식 궁합을 몰라도 우리는 건강하고 즐겁게 맛있는 걸 먹을 수 있다. 함께했을 때 배탈이나 알레르기를 유발하는 것이 아니라면 전혀 문제없다. 저런 과학적 사실을 모두 고려하여 음식을 챙겨 먹으면 피곤할 따름이다. 정성을 담아 요리하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먹으면 모든 게 보약이다.
사람과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결혼하기 전 궁합을 따진다. 내가 선택한 사람인데도 그 사람과 내가 과학적으로(사주도 통계학이자 유사 과학이니까) 잘 맞는지 궁금하다. 궁합이 좋다고 만족하며 결혼했는데 아닐 수도 있고, 궁합이 안 좋다고 걱정했는데 의외로 잘 살 수도 있다.
처음부터 잘 맞는 사람이 있어서 끝까지 좋은 관계로 남을 수도 있고, 서로 데면데면하다가 어느 한 가지 계기로 진정한 친구가 될 수도 있다. 또 평생 갈 친구라 생각했지만 어느 순간 멀어지기도 한다. 원래 그런 관계란 없는 것이다.관계도 음식처럼 내가 정성을 들이고 감사히 여기기 나름이다.
모든 것이 내 마음에 달렸다 해도 사람들 간의 관계는 여전히 어렵고, 그럼에도 우리는 관계를 맺을 때 더 빛난다. 토마토에 설탕을 뿌려 먹기도 하고, 어떨 땐 토마토와 궁합이 좋은 아보카도가 들어간 샐러드를 먹는다. 가끔은 그냥 당근과 오이를 쌈장에 찍어먹고, 몸이 으슬한 날에는 멸치육수로 시금치 된장국을 끓여 먹고 싶어 진다.
어느 관계도 다 소중하다. 과학적으로 궁합이 좀 안 맞으면 어떤가. 긴 역사 동안 시금치멸치된장국이나 밀크티처럼 유지해 온 관계도 있지 않은가. 영양소가 서로 도움이 되지 않더라도 맛있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함께하고 싶으니까 그 관계가 더 소중 할 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