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장과 관련하여 의미 있는 깨달음을 얻었다. 장도 콩으로 만든 발효식품이니 채소 목록에 넣기로 하자.
오늘 나는 나만의 견고한 단지를 깨고 한 단계 나아가는 결정을 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난 안돼, 못해.'라고 생각했었는데 '그냥 해보지 뭐'라는 마음으로 고민의 깊이에 비해 너무나 간단하게 결정을 마쳤다.
사실 이걸 시작하는 데 있어서 돈, 시간은 물론이거니와 과거의 좌절했던 경험과 나태함까지 큰 방해물이 많았다. 그걸 하나하나 걷어내고 나니 마지막에 남은 건 '또 잘 안되면 어떡하지?'라는 걱정이었다. 나는 원래 걱정을 사서 하는 미련한 인간이다. 그래서 남들은 대수롭지 않게 넘어가는 일도 점점 키워서 거대한 스노볼로 굴린다. 역시나 이 오래된 습관은 언제나 그랬듯이 결정적인 순간에 나타나 나의 성장을 방해하고 고난에 빠지게 한다.
이번에는 그 눈덩이를 던져버릴 수 있게 주변에서 많은 도움을 받았다. 친구들은 내가 우물 밖으로 나올 수 있게 격려를 해주고 평소 걱정하는 습관이 또 나온다며 허를 찌르는 날카로운 지적을 하기도 했다.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글까'라는 속담이 딱 내 상황이라는 것이다. 그 친구는 친히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글까'의 사전 뜻까지 읊어주었다. 그 내용은 이렇다.
[장을 장독에 담아 잘 발효시키려면 여름철에 장독 뚜껑을 열어두는데, 이때 파리가 장에 알을 낳게 되면 구더기가 생기게 된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장은 없어서는 안 될 기초 양념이므로 이런 반갑지 않은 일이 생길지라도 장을 담는 것이 마땅하다. 이 속담은 바로 이런 일을 빗대어서 반드시 해야 할 것은 어떤 어려움과 방해가 있어도 해야 한다는 말이다.
특히 장이 싱거우면 구더기가 더 잘 생긴다. 그런데 구더기가 생겼더라도 햇빛이 쨍쨍할 때 구더기를 잡고 구더기가 생긴 부분만 깨끗하게 걷어 내면 장을 먹을 수 있다. 따라서 구더기가 생길까 봐 무서워서 장을 안 담근다는 것은 너무나 소심한 태도이다.]
이 글을 읽으니 어지러운 마음이 명확해지고 내 문제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일단 나는 구더기가 생길지 안 생길지도 모르는데 걱정부터 하는 습관을 버려야 하고, 구더기가 생기면 걷어내고 다시 먹으면 되는데 쉽게 좌절해 버리는 태도도 고쳐야 한다. 어쨌거나 된장, 고추장, 간장은 꼭 먹고살아야 하니 이 구더기 다루는 법도 배워나가야 한다.
그동안의 경험을 되돌아보면 용기 내 무언가에 도전했을 때 후회했던 적 보다 좋은 경험이었다고 여기고 한 발 더 나아간 적이 훨씬 많았던 것 같다. 그 어떤 경험도 버릴 것이 없다. 아직 안 해본 것도 많지만 뭐라도 해보는 것이 두려워서 망설이는 것보다 몇 배는 값지다.
장도 그렇고 사람도 그렇고 숙성의 과정이 필요하다. 우리는 모두 풋콩인 상태로 세상에 나온다. 살면서 뜨거운 물에 삶아지기도 하고, 짜디짠 소금도 만나고, 시간이라는 길고 지루한 공부도 하고, 때로는 구더기나 곰팡이를 마주해야 할 때도 있다. 풋콩인 상태로는 오래 지속할 수 없다. 발효라는 과정을 거쳐 깊이와 맛이 드는 것이다.
어떨 땐 용기를 내 결정을 한 것만으로도삶의 전환점을 맞이하고 반 이상의 성공을 이룬 것이라 볼 수 있다. 내가 이번에 어려운 결정을 내린 것도, 무섭지만 조금 더 힘을 내 도전해 보는 모든 과정이 나에게 상하지 않고 오래 버틸 수 있는 힘을 줄 것이다. 기나긴 발효의 시간을 지나는 모든 장들을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