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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열매 Oct 25. 2024

차를 마신다는 것은

갑자기 날씨가 쌀쌀해져서인지 요즘은 따뜻한 차를 마시는 게 좋다. 예전부터 나는 맹물보다는 보리차, 옥수수차처럼 맛이 나는 물을 좋아했다. 요 근래엔 몸에 좋다는 검은 숭늉물을 마시고 그전엔 몇 년간 꾸준히 보리차를 마셨다. 그러려면 사람이 부지런해야 한다. 한 번 물을 끓이면 보통 2L씩 끓이니 2~3일이면 끓인 물이 금방 동난다. 때문에 이틀에 한 번은 물을 끓이고 보리차든 뭐든 우려내고 식혀서 물통에 담는 과정을 반복해야 한다. 보리차를 너무 자주 열심히 끓이다 보니 매일 씻는 것처럼 당연한 루틴이 되어버렸다. 갓 우려낸 따뜻하고 구수한 보리차를 마시는 게 좋아서 물 끓이는 날을 기다리기도 한다.

아침저녁으로 일교차가 심해 코가 훌쩍일 때쯤 감잎차를 샀다. 감잎차에는 레몬의 10배가 넘는 비타민c가 있어서 감기 예방에 좋다. 날이 급격히 추워지는 지금이 딱 감잎차를 마시기 좋은 시기이다. 가을임에도 더운 날씨가 이어지다 조금 쌀쌀해져 트렌치코트를 입고 간 날 친구에게 작두콩차를 선물 받았다. 작두콩차는 비염에 좋은 걸로 유명한데 맛도 구수해서 꼭 약용 효과를 바라지 않더라도 찾아서 마시고 싶은 차이다.  

나도 한때는 매일 아침 원두를 갈아 핸드드립 커피를 내려 마시곤 했다. 커피 클래스도 몇 번 들었고, 괜찮은 카페에 가면 커피 원두를 사 오는 취미가 있었다. 태생적으로 커피가 잘 안 받아 마시면 잠이 잘 안 오고 역류성 식도염이 생겨버렸지만 아직도 커피를 사랑한다. 요즘은 일주일에 한 번 정도 맛있는 커피를 마신다. 매일 마시던 커피의 자리를 대신한건 구수한 물과 차이다. 로스팅된 커피의 강렬한 향과 원두 별로 특색 있는 맛을 따라오지는 못하지만 차도 그만의 매력이 있다.


잎차는 깔끔하고 개운한 맛이 좋다. 이전에 무엇을 먹었다 할지라도 잎차로 마무리하면 몸이 정화되는 느낌이 든다. 곡물차는 우려낸 물만 마셔도 구수하고 든든하다. 허기질 때 따뜻한 곡물차를 마시면 배가 뜨뜻하고 속이 편안해진다. 허브차는 정말 약용 효과가 느껴진다. 캐모마일 차을 마시면 한 잔을 다 마시기도 전에 마음이 차분해지고 페퍼민트차를 마시면 실제로 소화가 잘 되는 것 같다. 차는 정말로 무해한 존재다.


얼마 전 처음 가본 동네의 한 카페에서 호박차를 마셨다. 카페에 갔을 때 주로 선택할 수 있는 차는 녹차, 홍차, 캐모마일티, 페퍼민트티로 한정되어 있다. 여기서 카페인이 들어있는 것을 제외하면 내가 고를 수 있는 건 허브티가 유일하다. 때문에 나는 직장에서 여럿이 차를 주문할 때 내가 주문한 것을 확인하지 않아도 내 것을 찾아낼 수 있을 정도로 고집스럽게 캐모마일티를 마셨다. 그러다 카페에서 새로운 차 종류를 발견할 때면 숲 속에서 보물 찾기의 쪽지를 찾아낸 것만큼 기쁘다. 그날의 호박차는 보물찾기 선물과 같았다.


어쩔 수 없이 남들보다 말을 많이 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고단한 내 목과 편도에게 매일 따뜻한 차 한 잔을 선물해 준다. 이번 겨울은 편도염이나 감기를 심하게 앓지 않고 지나갔으면 좋겠다. 좋은 차 한 잔은 위로이자 소확행이다.


작두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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