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산 단단 작가님의 '매일매일 채소롭게'라는 책의 첫 꼭지는 냉이이고 부제는 '이토록 따뜻한 초록이라니'이다. 냉이를 이토록 잘 표현한 문장이라니, 나와 작가님은 냉이를 먹으며 느낀 게 같았나 보다.
나라도 채소에 관한 책을 쓴다고 하면 첫 꼭지는 냉이에게 내어줄 것 같다. 추운 겨울을 지나 봄의 시작을 사부작사부작 알리는 봄나물들, 그중에서도 특히 냉이는 그 향긋함이 겨우내 언 몸과 언 마음을 모두 녹여주는 것 같다. 냉이를 입 안에 머금으면 따뜻한 초록이 느껴져 마음이 된장국처럼 뭉근해진다.
어느 봄날, 남편이 "봄이 안 끝났으면 좋겠어."라고 말했다. 그 말을 들은 나는 '나도 마찬가지야. 이 온화한 날씨, 예쁜 봄꽃들, 봄이 싫은 사람이 어딨겠어.'라고 생각하며"왜?"라고 물었는데 남편의 대답은 뜻밖이었다. "봄이 끝나면 냉이를 못 먹잖아." 우리는 봄보다 냉이가 끝나는 걸 아쉬워할 정도로 냉이를 먹는 것을 좋아했다.
이번 봄은 유난히도 냉이를 맛있게 먹은 기억이 오래 남는다. 매년 봄이면 한 번쯤은 냉이 된장국을 끓여 먹곤 했는데 올해는 특히 더 자주 먹었다. 주말에 농부시장에서 냉이를 사 와서는 그 주 내내 냉이 된장국도 끓여 먹고 나물로 무쳐 먹고 들기름에 구워 먹기도 했다. 냉이를 넣은 독특한 계절 특선 김밥을 파는 김밥집도 참새가 방앗간 가듯 드나들었다. 냉이를 발견하면 무지 반가워서 다음 주까지 먹어도 될 만큼 넉넉하게 사고 어머님댁에 갖다 드릴 냉이까지 챙겼다. 냉이를 어디서 사야 할지도 모르는 초보 살림꾼들 치고야무지게 냉이를 찾아 먹은 셈이다.
제철 음식을 먹는 것은 내가 요즘 새롭게 발견한 기쁨이다. '행복의 기원'이라는 책을 쓴 서은국 교수님은 얼마 전 유퀴즈온더블록에 나와 행복은 압정을 깔아놓는 것이라고 했다. 의도적으로 내가 행복할 수 있는 요소들을 삶의 곳곳에 만들어 놓아야 한다는 것이다. 제철음식은 자연이 깔아 놓은 압정이다. 사계절이 있는 우리나라는 제철음식의 축복이 내린 곳이다. 그걸 다 챙겨 먹기만 해도 한 계절이 후딱 간다. 그러므로 냉이는 내가 봄에 밟고 행복의 비명을 지른 압정 중 하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