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늘도 학생을 만납니다.
오늘날 학생들은 학원의 핵심 존재이자,
학원이 궁극적으로 목표해야 할 방향을 제시해 주는 존재입니다.
학생들 각자가 지닌 성향, 성장 속도, 그리고 학습 방식이 다양하며, 학원에서 기대하는 바 또한 각기 다릅니다. 어떤 학생은 목표가 뚜렷하여 자발적으로 공부하는 반면, 또 다른 학생은 성적에 대한 부담으로 인해 학습에 대한 흥미를 잃은 경우도 있고, 아예 공부에 관심이 없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처럼 학생들은 개별적인 학습 성향과 목표를 지니고 학원에 오기 때문에, 학원에서는 이들의 개성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접근이 필요하죠.
어쩌면 학생들마다 가지고 있는 개성을 존중해야 한다는 다소 뻔한 이야기에 앞서, 학생에 대한 보편성을 이야기할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특히 요즘처럼 청소년들이 빠르게 성숙해지는 사회에서 학생이 바로 미성숙의 존재라는 것이 많이 흐려졌기 때문인데요. 전체적인 학생에 대한 이해를 위해 그 속의 보편성과 사회적 변화에 따라 생긴 특수성을 함께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이 챕터를 통해 지금까지 학생을 바라보고 있던 관점을 한 번쯤 점검해 보는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연약한 존재
학생을 어떤 존재로 바라보고 계십니까?
생각해 본 적이 없을 수도 있습니다. 지금 한번 돌이켜 생각해 보세요.
나는 학생을 어떤 존재로 바라보고 대하고 있나요?
저는 늘 선생님들에게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학생들 공부 못한다고 무시하지 말아 주세요. 선생님은 어느 대학 나오셨는데요? 이 아이가 어떤 대학에 갈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선생님보다 더 뛰어난 대학에 갈 수도 있어요."
학생들은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존재입니다. 그들은 아직 고정된 틀이나 완성된 정체성을 가지지 않았기에, 다양한 방식으로 성장할 가능성을 가지고 있죠. 매일 새로운 경험을 통해 자아를 발견하고, 자신이 하고자 하는 목표나 꿈을 찾아가는 ‘과정’에 있습니다. 그렇기에 학생들의 내면에는 그 가능성이 끝없이 피어날 수 있는 잠재력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학생들은 아직 미성숙한 존재이기도 합니다. 학생들은 아직 사회적 경험과 개인적 성찰이 부족하기 때문에, 스스로를 깊이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기 이해가 낮은 상태인 것이죠. 일부 학생들은 자신이 무엇을 잘하고 좋아하는지, 무엇을 해야 할지에 대해 명확한 방향을 가지지 못한 채 혼란스러워하기도 합니다. 자기 자신에 대한 깊은 이해가 부족하다 보니 때때로 목표 없이 무작정 따라가는 경우도 많죠. 그런 특징이 있기 때문에 또래 친구들의 영향력이 커지는 청소년에는 좋은 친구를 만나는 것이 중요해지기도 하죠.
다들 한 번쯤 장래희망에 부모님이 바라는 것을 적어서 낸 적 있으시죠?
학생들은 세상에 대한 이해도 낮기 때문에, 주변에서 들려오는 말이나 사회적 기대에 쉽게 영향을 받곤 합니다. 이로 인해 본인의 꿈보다는 부모나 주변의 기대에 맞추어 선택하게 되는 경우도 흔하죠. 왜 공부해야 하는지 모르겠지만, 엄마가 공부하라고 하니 그냥 하는 겁니다. 이게 나쁘거나 학생들이 멍청하다는 것이 아니에요. 그저 어리기 때문에, 나와 세상을 다뤄본 경험이 적기 때문에 아직 논리적 판단력이 충분히 발달되지 않아 가지게 된 특징이라는 것을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경험이 적은 상태에서 발생하는 이러한 특성들로 인해 학생들은 스스로의 삶을 주도적으로 살아가기보다는 누군가의 지시를 기다리거나, 외부의 판단에 의존하기 쉽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학생들에게는 좋은 스승이 필요합니다. 아직 모든 외적 환경 변화와 자극에 연약한 존재이기에 학생들은 스스로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그 가능성을 현실로 이루기 위해서는 많은 지지와 가르침이 필요합니다. 학생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특성을 이해하고, 이해를 바탕으로 하여 그들이 가진 잠재력을 이끌어내 줄 수 있는 선생님이 반드시 필요하죠.
어쩌겠습니까? 그것이 성장의 과정인 것을요. 일반적으로 성장은 효율적이고 인풋과 아웃풋이 비례한다 생각하지만, 아니요. 그것은 여러분의 상상입니다. 성장은 그렇게 이루어지지 않죠. 아무도 예측할 수 없는 어느 순간 폭발적으로 일어납니다. 선생님과 학부모를 위해 학생들의 성장이 매일 그래프로 보이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런 그래프는 없지만, 학생들은 오늘도 배우고 있습니다.
그러니 어른이 이해해 주세요. 오늘도 배우고 있다는 사실을 믿고, 학생들을 믿어주세요. 어른이 안아주고 보듬어주세요. 그런 어른의 따듯함을 받아본 학생은 따듯함을 전하는 어른으로 자라날 것입니다.
자기를 드러내는 것이 서툰 존재
오늘날의 학생들은 디지털과 초개인화된 사회 속에서 자라난 세대입니다. 이들은 친구나 가족보다는 스마트폰과 더 오랜 시간을 보내며, 혼자서도 다양한 정보를 접하고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환경 속에서 자랐습니다.
그 말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혼자 보낸 시간만큼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는 법, 존재 대 존재로 소통하는 법에 서툴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디지털 세상에서의 관계는 물리적인 관계와는 달리 서로에 대한 깊은 이해가 없이도 관계를 맺을 수 있고 그 관계는 매우 얕게 형성되죠. 과거 오프라인 커뮤니티와 다르게 온라인 커뮤니티는 빠르게, 얕게, 넓게 사귀는 것이 가능합니다. 어릴 때부터 진정한 소통과 진정한 만남을 경험해 본 적이 없는 학생은 장차 크면서 누군가에게 자신의 생각이나 감정을 털어놓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나 불편함을 느끼게 됩니다. 그리고 점점 더 많은 학생들에게 이런 특징이 나타난다는 것이죠.
학생들이 자신을 솔직하게 드러내고 감정을 공유하는 데 어려움을 겪으며, 점차 자신의 내면을 타인에게 노출하는 것을 꺼리는 것은 결국 학생들이 진정한 스승을 만나지 못하게 되는 장벽이 됩니다. 학원을 단순히 ‘공부하는 곳’으로만 여기고, 학습의 이유나 목표 등에 대해 나누는 것에도 쉽게 자신을 열지 않죠. 하지만 진정한 스승과 제자 관계가 형성되어 진정한 교육이 일어나기 위해서는 서로에 대한 깊은 이해와 전이해가 필요합니다.
사실 학생이 스스로를 열어야 하기도 하지만, 교사 역시 학생의 내면에 관심을 두고 이해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시간이 필요한 문제일 수도 있지만, 학생에게 신뢰를 전달하는 것은 선생님의 몫이니까요. 다시 말해, 학생들에게 스스로를 드러내는 법을 알려주는 데 있어, 교사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교사는 학생의 내면에 관심을 가지고 먼저 다가가야 하며, 학생들이 자기 이야기를 나눌 수 있도록 이해와 존중의 자세로 소통해야 합니다. 학생에게 공부로 다가가기 이전에 이해와 존중을 기반으로 조심스레 노크해 보세요. 학생들에게 진정한 관계 맺는 법, 자신의 감정을 솔직히 표현하고 소통하는 법을 간접적으로 경험시켜 준다면, 교과 지식뿐만 아니라 인생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교사의 노하우가 학생들에게 전해지고, 학생들은 비로소 진정한 관계 형성의 가치를 배우고 그 과정을 통해 자신을 이해하고 성장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학생들은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존재입니다. 아직 경험이 적고 세상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여 연약한 모습을 보일 수 있지만, 그 안에는 무한한 잠재력이 숨어 있습니다. 학원이 그들의 개성과 특성을 존중하며, 그들 각자가 지닌 잠재력을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할 때, 비로소 그 가능성은 꽃을 피울 수 있습니다. 학원은 공부만을 가르치는 공간이 아니라, 학생들이 자신을 발견하고 삶을 준비하는 중요한 걸음을 내디뎌보는 곳이 되어야 합니다.
이 시대의 학생들은 각기 다른 개성과 꿈을 지니고 있지만, 공통적으로 바라는 것은 자신의 인생 여정에 있어 진정한 안내자와 지지자가 되어줄 존재이죠. 학생들이 진정한 배움의 기회를 통해 성장할 때, 학원은 단순한 학습의 공간을 넘어, 그들의 꿈과 미래를 함께 그려가는 가치의 장으로 바뀔 것입니다. 진짜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장이 되는 것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