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낯선 여자

임신 중입니다만

by Yuni

축복을 뱃속에 품은 비슷한 나이의 두 여자가 나란히 앉아있었다. 그곳은 산모교실. 대부분 서로가 모르는 사람인 데다가 소중한 존재를 품고 있기에 극도의 긴장감은 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입을 굳게 다물고 눈알만 이리저리 굴리고 있을 때 옆에 앉아있던 여자가 말을 걸어왔다. "저기... 몇 주 됐어요?"


얼핏 봐도 'I'의 성향 같은 비슷한 느낌의 두 여자는 불필요한 눈치를 살피며 질문을 이어갔다. "나이가....?" "일은....?" "어디 사시는지....?"...... 아니 원래 질문이란 건 이렇게 끝을 흐리는 건가? 지금에서야 하는 말이지만 이럴 필요가 없었던 게 질문하는 족족 우리는 나이도, 주부라는 것도, 사는 곳도 비슷했다. 가장 비슷한 건 내성적인 성격이었지. 그때 속으로 생각했던 한 가지 질문이 그녀의 입에서 나오는 순간 새어 나오는 웃음을 참느라 힘들었다. "저기... 다음 산모교실 같이 가실래요?" 그렇게 우리는 함께 할 명분이 생겼다.


그 이후 매일같이 연락을 하고 서로를 위로하며 시간을 보내던 중, 아주 우연히도 정말 우연히도..... 우리는 뜬금없이 닭강정이 너무 먹고 싶었다. 그것도 서울 근처 어딘가에서 파는 유명한 닭강정. 누가 먼저라 할 것도 없이 주문을 하고 며칠 뒤 택배로 받았을 때 우리는 동네 카페에서 만났다. 아무도 없는 평일 오전 시간을 노린 오픈런으로. 최소한 카페에서 닭강정의 냄새를 폴폴 풍기는 진상은 되기 싫었으니까. 그곳엔 우리 둘 뿐이었는데도 택배(닭강정) 전달을 위해 예쁘장한 동네 카페에서 그것도 사람 없는 시간을 골라 만났다는 것에 웃음을 멈출 수가 없었다. 임산부니까 라는 이유와 함께 말이다.


임신 중이었기에 먹는 것에서 오는 행복이 아주 컸었다(물론 지금도 다를 건 없음). 그렇게 두 축복이가 세상 빛을 보게 되고 출산도, 새벽수유도, 그리고 산후 우울증까지 그 무엇이든 함께했다. 물론 카톡으로. 갑자기 스쳐 지나간 생각에 나는 물었다. "우리 임신했을 때 맛있게 먹었던 음식 중에 골라서 다시 먹으러 가볼까?"

대답을 듣기도 전 우리의 발걸음은 이미 한 곳을 향하고 있었다. 그곳은 바로 냉면집.


여자로서 가장 힘들고도 쉬이 지칠 수 있는 시기에 마치 누군가 알려준 것처럼 이렇게 비슷한 두 여자가 우연히 만날 수 있는 걸까? 비슷한 개월 수의 아가들이 잠들면 나란히 유모차를 세워놓고 커피 한잔 기울이던 때, 밥 좀 먹으려 하면 귀신같이 일어나 엄마의 둥가둥가를 부르던 아가가 격하게 귀여웠던 때, 소장이라도 해볼 거라고 아가들과 함께 사진 한 번 찍었다가 현타 제대로 왔던 때, 마치 백화점 지도의 인간화 같았던 때 등.

모든 걸 나열할 수는 없지만 힘들었던 시기를 버티게 해 준 너무도 행복한 기억들이지 않나 싶다.


지금도 우리는 말한다. 어떻게 이렇게 비슷한 성향과 취향을 가진 두 여자가 그리도 가까워질 수 있는지 말이다. 임신과 출산이라는 아주 낯선 시기에 생긴 희망의 기다란 끈 같았달까. 비가 오든 눈이 오든 유모차만 있으면 못 갈 곳이 없던 시기가 가장 행복했다고 지금의 우리는 말한다. 몸과 마음이 지쳤던 시기를 행복한 기억이라 바꿔 부를 수 있는 인연, 그것이야말로 내가 가진 엄청난 복이지 않을까.


keyword
이전 15화하나의 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