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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uni Oct 28. 2024

자유부인과 맥주의 궁합

남편의 배려에 누릴 수 있었던 행복의 순간

육아맘에게 가장 설렘을 주는 단어는? 아마 아이들을 키우고 있는 엄마들은 1초 만에 대답할 수 있을 것이다. 바로 "자유부인". 그 어떠한 설렘과도 비교할 수 없는 막강한 힘을 지닌 단어이다. 불과 몇 달 전, 정말 진심으로 자유를 만끽한 적이 있었다. 아직도 두근거리는 그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결혼한 지 1년이 지나 2016년도 첫 임신을 하게 되었다. 그때부터 8년이 지난 시간 동안 저녁에 자유시간을 가진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물론 신랑을 탓하는 건 아니다. 나가라고 해도 아이들이 신경 쓰여 못나간 건 내 선택이었으니까. 항상 저녁약속을 잡아도 막상 나가기 전에 여러 문제들이 걱정돼서 취소하곤 했다. 두 아이를 키우는 주부 입장에서 저녁에 약속을 잡는 건 신랑의 아주 큰 배려가 아니고서는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불가능은 가능으로 언제든 바뀔 수 있는 법이지.


비가 많이 내리던 어느 날, 그 빗속을 뚫고 날아갈 듯이 가벼운 발걸음으로 집을 나섰다. 결혼 후 거의 처음으로 저녁에 친구와 시간을 보내기로 한 날이었다. 여기서 중점은 그 친구가 아직 미혼이라는 사실(다른 이유는 없음). 우리가 만난 목적에는 맥주가 포함되어 있었다. 사실 그녀는 나에게 가장 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 미리 묻기도 했다. 해가 지고 난 후 가지는 첫 자유 시간에 그녀도 나만큼 설렜던 것일까? 나는 그녀의 물음에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야외에서 맥주 딱 한 잔 하고 싶다고 이야기했다. 그때는 여름이었으니까. 상상만 해도 구름 위를 두둥실 떠다니는 기분이었다.


사실상 특별한 무언가를 한 건 아니었다. 남들은 다 하지만 나는 아직 못했던 지극히 소소한 것들을 하기 시작했다. 인생네컷 찍겠다고 'I'성향인 두 명이서 들어갔다가 완전 망하고 나와서는 배꼽 빠지듯 웃었다. 그리고 아이들 옷이 아닌 내 옷을 사러 여유롭게 돌아가니기도 했다. 내가 가장 재밌었던 건 친구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었다. 결혼을 앞두고 있지만 아직 미혼인 친구의 평범한 일상을 듣는데 마치 내가 나였던 시절로 돌아간 듯한 기분이었다. 엄마로서 아내로서의 내가 후회스럽다는 건 절대 아니다. 그저 내가 나였었던 때가 떠올라서 흐뭇한 미소가 지어지는 정도? 보다는 조금 더 신났었던 건 인정.


충분히 해가 지고 난 후 드디어 맥주집으로 향했다. '8년 정도 밖에서 마셔본 적 없으면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는 게 당연하겠지? 나이 먹어서 그런 게 아닐 거야.'라고 속으로 합리화하면서 친구에게 씁쓸히 물었다. "어디로 가야 해?" 친구 따라 간 곳은 익히 알고 있던 곳이지만 단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곳이었다. 할머니 맥주로 유명한 그곳. 주말 저녁이라 사람들은 가득 차 있었다. 각자 자유로이 마시고 대화하는 모습이 내 시야에 들어오는 순간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자리를 잡고 우리는 하던 대화를 이어나갔다. 살얼음이 동동 띄워진 맥주와 함께 말이다. 친구에게 말한다. "이게 뭐라고 왜 이렇게 행복한 거야?" 내 입은 귀에 걸려있었고 핸드폰에 울리는 사랑스러운 우리 아이들의 문자는 쿨하게 못 본 척하는 중이었다. 얼마나 신났으면.


밤이 다되어서야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내 눈에 보인건 지하철 밖 풍경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바깥이 보이는 지하철 구간에 유독 밝게 빛나고 있는 달. 풍경이라고는 그것뿐이었지 어두컴컴한 밤에 무엇이 보였겠는가? 순간적으로 또 다른 행복이 밀려와 나도 모르게 미소 지었다. 그 시간에 지하철을 혼자 타는 게 임신 후 처음이었기에. 집으로 돌아왔을 땐 아이들은 이미 자고 있었고 신랑은 웃는 얼굴로 나를 반겨주었다. 오늘 보낸 시간이 얼마나 즐거웠는지 궁금하다는 듯 질문 폭격은 시작되었다. "오늘 어땠어? 맥주 한 잔 했어?" 그의 얼굴이 말했다. 내가 보낸 시간에 함께 설레어하며 기다렸다고 말이다.


언제든지 다녀오라고 말하는 신랑의 배려에 누린 행복의 순간이었다. 내가 없는 시간 동안 단 한 번의 연락도 없이 오로지 나만의 시간을 즐길 수 있도록 도와준 그가 있었기에 그날의 두근거림은 배가 되지 않았나 싶다. 지금이라고 달라진 건 없다. 나는 언제든지 자유로운 시간을 선택할 수 있고 그는 여전히 이유가 무엇이든 내 선택을 지지해 준다. 그래서 더욱이 엄마로서, 그리고 아내로서의 시간들에도 만족하며 사는 게 아닐까. 곧 연말이 다가오면 그날의 두근거림을 다시 한번 느껴볼 예정이다. 아직 말은 안 했지만. 사랑한다 나의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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