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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트려야 했던 것은 세상이 아니라 '나'였다.

데미안 이야기

by NINA

나는 한동안 이유를 알 수 없는 답답함 속에 살았다.
겉으로는 괜찮아 보였지만,
나만 알고 있는 감정의 쓸쓸한 금이 하루하루 조금씩 깊어지고 있었다.


그때 우연처럼 다시 펼친 책이 있었다.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


스무 살의 나는 이 책이 어딘가 위험하다고 느꼈

삼십의 나는 이 책이 나를 성장으로 이끄는 책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마흔을 훌쩍 넘긴 지금, 나는 깨닫는다.

이 책은 나를 다시 발견하게 하는 질문이었다는 것을 말이다.




[데미안] 이 세상에 나올 무렵,
헤세의 삶은 조용히, 그러나 완전히 무너지고 있었다고 한다.
그는 일기에 이렇게 적었다.


“나는 내 안의 혼돈을 견딜 수 없다.”


그가 글을 쓴 이유는 소설을 완성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흩어져버린 자신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였다.

그는 잃어저린 자신을 찾기위해

이야기보다 먼저 자신이 꾼 꿈을 글로 그림으로 기록했다.

나는 그 사실을 알고 나서야 이 책을 더 깊이 이해하게 되었다.

소설 [데미안] 은 누군가의 성장담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한 인간이 무너지지 않기 위해 남긴 기록이었기 때문이다.




이 책을 덮고 나는 조심스럽게 돌아보았다.


언제부터였을까.
내가 나에게서 멀어지기 시작한 순간이.


사람들 속에서 웃고 있었지만,

어느 날 그 웃음이 진짜 내 얼굴이 아니라는 걸 알아버린 날들이 있었다.


좋은 사람, 성실한 사람, 다정한 사람으로 보이기 위해
수없이 고르고 삼키고 줄여온 마음들.

그 마음의 틈을 따라

보이지 않는 금이 아주 조금씩, 그러나 분명하게 자라나고 있었는데..


그리고 나는 펼쳐진 책, 데미안의 한 문장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처음엔 그 알이 바깥의 세계, 세상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주 천천히 나는 깨닫게 되었다.


깨뜨려야 했던 것은 세상이 아니라,
세상에 맞추기 위해 내가 만든 ‘나’였다.

그동안 나는 어쩌면 누구보다 단단한 껍질 속에서

스스로를 가두어 살고 있었는지 모른다.


분명 그런 순간이 있었다.

설명되지 않는 감정이 찾아오는 날들.

아무 이유 없이 멀게만 느껴지는 저녁,
누군가의 말이 오래 머물러 마음을 흔드는 순간,
조용히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새벽.


그럴 때면 나는 이불을 깊이 뒤집어쓴 채
감정 속으로 천천히 가라앉곤 했다.
그리고 그 시간이 지나면 이내 잊어버렸다.


“피곤했나 봐.”


그렇게 나는 나에게 아무 질문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헤세는 달랐다.

그는 묻고 또 물었다.


“나는 나에게 무슨 말을 들려주고 있는걸까.” 라고.


인간은 완성되는 존재가 아니라,

조금씩 자기 자신의 중심에 도착해 가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내 안의 어떤 목소리를 향해 걸어가는 중인 것이다.
멀어졌다가, 다시 가까워졌다가, 그런 리듬으로.


어쩌면 많은 이들이 나처럼 아직 알 속에 머물러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분명한 것이 있다.
금이 가는 순간은 생각보다 조용히 그러나 정확하게 찾아온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 금을 통해 들어오는 빛은 놀라울만큼 부드럽고 따뜻하다는 거.

그러니 지금의 그 두드림을 멈추지 말고 귀 기울여보기를.




어쩌면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에게도 그런 알이 있겠죠

말하지 못한 마음,
끝내 미뤄둔 꿈,
가만히 두면 사라질까 두려운 어떤 진실.

지금 아주 미세하게라도
'탁' 하고 금이 가는 소리가 들린다면
그것은 두려워할 일이 아니라
새로운 세계가 시작되는 작은 증거일지도 모릅니다.


태어나려는 자는

결국 자기 자신을 깨뜨릴 수밖에 없으니까요.



< 작은 안내 >


이 글은 브런치북 《책한모금의 온기》 시리즈 중 첫 번째 글입니다.
같은 이야기를 목소리로 듣고 싶다면 영상으로도 만나실 수 있습니다.


유튜브 〈니나의 책 한모금〉

https://youtu.be/aMpVEg7w2dQ?si=oyR2uBd0rhXC1B-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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