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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로는 닿을 수 없는 것들.

시지프 신화 - 알베르카뮈

by NINA

몇 년 전의 일이다.

서른에서 마흔으로 넘어가는 생일 며칠 전이었다.
숫자 하나가 바뀌는 것뿐인데

마음은 유난히 무거웠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지만

그날의 공기는 이상할 만큼 버겁게 느껴졌다.

눈을 뜬 순간부터 가슴 한가운데에 묵직한 돌덩이가 자리 잡은 것 같았고
작은 숨조차도 쉽게 쉬어지지 않았다.

아마도 당시의 이런저런 일들로 마음이 많이 지쳐있었던 거 같다.


그날 새벽,

불도 켜지 않은 방 안에서
나는 천천히 아주 오래 스스로에게 물었다.


"도대체 삶의 의미는 무엇일까.

사람들은 왜 사는 걸까.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
누군가를 지키기 위해?
아니면 그저 흘러가는 대로 살아지는 대로 버티기 위해?"


마음 한 편에서는
'이렇게 버티는 것이 다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조용한 파도처럼 밀려왔다.
애쓰며 살아온 시간들이
갑자기 이유 없는 허무로 휩쓸리는 느낌이었다.


결국 답을 찾지 못한 나는

답답한 마음에 주변사람들에게 물어보았다.


" 사람들은 왜 살아? "

돌아온 대답은 늘 같았다.


"그냥 사는 거지. 다 그래."


그 말은 위로가 아니라
숨을 막아버리는 벽처럼 느껴졌다.


그냥 사는 것이 너무 어렵고
그냥 살아지지 않기 때문에
나는 그 질문을 쉽게 놓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어느 날,

나는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 을 다시 읽었다.


재판장에서 뫼르소를 단죄하는 사람들의 모습앞에서

나는 이상하리만큼 강한 불편함을 느꼈다.


어머니의 장례식에서 울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뫼르소의 삶 전체가 죄로 규정되고
군중의 분노가 그의 존재를 짓눌러버리는 장면.


나는 그들이야말로 부조리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다.

타인의 방식과 감정을 자기 잣대로 재단하는 사람들.
이해되지 않는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누군가를 단정짓는 잔인함.


그리고 어느순간, 나는 스스로에게 말하고있었다.

'나는 그들과 달라.'


그 착각 속에서

나는 같은 작가의 또 다른 책 [시지프 신화]를 펼쳤다.

그리고 그 책은 아주 조용히, 그러나 완전히.

내 생각을 뒤집어 놓았다.


시지프신화는 '부조리'에 대한 책이었다.

작가 알베르 카뮈가 말하고자 했던 부조리는
옳고 그름을 나누기 위한 기준도,

누군가를 비난하기 위한 도구도 아니었다.

그저 '간극'이었다.


가까이 닿고 싶은데 닿을 수 없는 거리,

이해하고 싶은데 끝내 이해되지 않는 타인의 세계,
이유를 알고 싶은데 이유가 존재하지 않는 삶.


그 간극 앞에서
우리는 서로에게 부조리한 존재가 된다.


결국 배심원들에게는 뫼르소가 부조리한 사람이었고,
나에게는 배심원들이 부조리한 사람이었다.
서로의 세계는 끝내 만나지 못했다.
다만 다른 방향에서 살아가는 존재였을 뿐이다.


책을 읽으며 나는 조금씩 알아차렸다.


'나는 그동안 부조리를 나쁜 것, 틀린 것,

비판해야 할 대상으로만 보고 있었구나.
그게 어쩌면 내가 저지른 가장 큰 실수일지도 모르겠다.'


삶은 이해되지 않는 순간들로 가득하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서로에게 끝내 닿을 수 없는 존재다.


그런데도 우리는
모든 것을 이해해야만 견딜 수 있다고 믿으며
필사적으로 의미를 붙잡으려 애쓴다.
그러다 오히려 더 깊게 다쳐버린다.


어쩌면 나에게 필요한 것은

이해하려는 집착이 아니라

그냥 두는 용기였는지도 모른다.


모든 순간을 설명하려 들기보다,
말이 되지 않는 시간을 조용히 지나가는 일.


버티는 방법을 찾기보다
버티는 시간을 온전히 통과해보는 일.


그러다 보면
붙잡으려 애쓰지 않아도
의미는 어느 날 조용히 모습을 드러낸다.


결국 부조리한 삶 앞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정답을 요구하는 일이 아니라
내가 가야 할 길을 한 걸음씩 걸어가는 것이었다.


그래서 여전히 막막한 오늘이지만

조금 더 힘을 내서 돌을 밀어 올리기로 한다.

숨을 고르며,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며,
끝을 알 수 없어도 계속.


신화 속 시지프처럼 말이다.



< 작은 안내 >


이 글은 브런치북 《책한모금의 온기》 시리즈 중 두 번째 글입니다.

여기에는 개인적인 경험과 사유를 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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