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개츠비
아주 어렸을 때 나는
설렘만 있으면 사람을 향할 수 있었고
그 설렘 하나로 무엇이든 맞출 수 있다고 믿으며
사랑 앞에서는 이해하지 못할 상황 같은 건 없다고 믿었다.
좀 더 커서는 이별을 통보받는 일이 잦아졌고
그때마다 나는 오기처럼, 혹은 자존심처럼
나를 더 있어 보이게 만들어 줄 사람을 찾고 있었던 것 같다.
나를 차버린 그 사람에게 굳이 말하지 않아도
보란 듯이 보여줄 수 있을 것 같은 그런 사람을 말이다.
그런 선택들은 이상하게도 늘 오래가지 않았다.
돌아보면 그건 사랑이 서툴러서라기보다,
사랑을 대하는 내가 아직 너무 미숙했기 때문이었고,
어쩌면 사랑에 다른 것들을
너무 많이 섞어두었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관계가 끝날 때마다 나는 습관처럼 사랑을 못하는 사람이라고 스스로를 몰아붙이곤 했다.
위대한 개츠비를 떠올릴 때면 그 시절의 내가 겹쳐 보여 조금 씁쓸해진다.
한 사람만 바라보다 많은 것을 놓친 개츠비는
설렘 하나로 모든 것을 감당할 수 있다고 믿었던
어린 시절의 나를 떠올리게 했고,
눈부신 세계와 안전한 위치를 택했던 데이지와 톰은
사람이 아니라 상황을 통해 나를 증명하려 했던
조금 더 커진 나의 얼굴과 겹쳐 보였다.
그 모습들을 알아차리고 나서야
내 사랑이 자주 어긋났던 이유는
사랑의 진심이나 크기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어떤 방향을 보고 살아왔는지에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실 사람은 누구나 삶을 살아가는 방식을 선택하며 살아간다.
무엇을 붙잡을 것인지,
무엇을 내려놓을지,
어디까지를 감당할 수 있을 것인지에 따라
각자의 방향이 달라질 뿐이다.
어떤 사람은 하나를 위해 모든 것을 걸고,
어떤 사람은 모든 것을 지키기 위해 아무것도 걸지 않는다.
그 선택의 결과가 언젠가는 사랑의 모습으로 드러나기도 하고,
관계의 실패로 남기도 한다.
한때의 나는 맞추는 삶을 선택했고,
또 한때의 나는 증명하는 삶을 선택했다.
그 선택들은 모두 서툴렀지만,
그 시절의 나에게는 그게 최선의 방식이었을 것이다.
이제는 누군가를 통해 나를 증명하는 삶이 아니라,
나를 잃지 않은 채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방향을 조심스럽게 생각해보고 있다.
사랑을 잘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조금 더 나답게 살아가기 위해서.
어쩌면 나는 사랑이 아니라
사랑이라는 장면을 지나며
삶의 방향을 가늠하는 법을 배우는 중이었는지도 모른다.
이 글은 브런치북 《책한모금의 온기》 시리즈 중 다섯번째 글입니다.
유튜브〈니나의 책 한모금〉에서 제 목소리로 들려드리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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