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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타마리에 Nov 27. 2024

두 명의 아빠

슬픔 속에 피어난 유대

갑작스레 아빠를 차가운 영안실에서 만난 다음 날부터, 장례를 위해 한국에서 가족들이 하나둘 도착했다. 가장 먼저 오신 건 아빠의 부고 소식을 듣자마자 급히 표를 끊고 오신 시아버지였다. 장례식은 돌아가신 지 6일 뒤에 장례 미사로 치르게 되었고, 한국에서 온 가족들은 매일 밤낮으로 함께하며 상을 치렀다. 셋째 딸은 그때 7개월이었고, 나는 반쯤 미쳐 넋이 나간 사람처럼 지냈다.


시아버지는 늘 무뚝뚝하셨던 분이셨다. 결혼 후에도 부드러운 시어머니에 비해 시아버지가 나에게는 꽤나 어려운 존재였다. 시아버지는 상 중에 아빠의 책상이 있던 작은방에서 주무셨다. 장례가 끝나고 한국으로 돌아가시기 전 시아버지는 말씀하셨다. “내가 이제는 네 아빠야. 아버지 몫까지 내가 아빠 노릇 잘해줄 테니, 절대 아빠 없다고 생각하지 말거라.” 그 말은 마치 모든 것을 잃은 듯한 내 마음에 작은 촛불 같은 희망이었다.


한동안 제정신이 아니었던 나는 술에 취해 밤늦게 시아버지께 전화를 걸어 울곤 했다. 홀로 남은 엄마를 챙기고, 어린아이들을 돌보며 아빠를 보낸 슬픔을 삼키기엔 너무 힘들었고, 나도 기댈 어른이 필요했다. 그때마다 시아버지께서는 “전화 잘했다. 언제라도 아빠가 보고 싶고 너무 울고 싶은 날이 있으면 전화하라”라고 말씀하시며 묵묵히 나를 위로해 주셨다.


세월이 흐르며, 나는 아버님과 어머님과 진정한 가족이 되었다. 슬픔 속에서 피어난 이 새로운 유대는 내 마음에 또 다른 아빠, 또 다른 가족을 심어주었다.


이제 내겐 아빠가 두 명 있다. 이것은 아빠가 가시는 길에 나에게 주고 간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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