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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단편 - 아리스토텔레스의 악몽

아리스토텔레스의 악몽

by ToB

"우주가 A=A라는 명제 위에 세워져 있다는 건, 신의 변덕일 뿐입니다."


아리스 손 박사는 동료인 엘라라 킨 박사 앞에서 홀로그램 회의 테이블을 두드렸다. 테이블 위에는 '공리 전이 엔진(Axiom-Transit Engine)'의 복잡한 텐서 네트워크가 희미하게 빛나고 있었다.


"아리스, 그건 변덕이 아니라 논리예요."


엘라라가 지친 듯 대답했다.


"그건 존재의 기본 문법이라구요. 사물이 그 자체와 동일하다는 것. 사물이 그것의 반대와 동시에 존재할 수 없다는 것. 이것 없이는 물리 법칙도, 인과율도, 심지어 '당신'이라는 개념도 성립하지 않아요."


"맞아요. 정확합니다!"


아리스가 눈을 빛냈다.


"우리 우주, L-1(Logic-1)에서는 그렇죠. 하지만 만약, A ∧ ~A (A이면서 동시에 A가 아님)가 참인 우주가 있다면? 인과율이 선형이 아니라 방사형인 곳이 있다면? 우리가 '불가능'이라고 부르는 것은, 사실 이 우주의 편협한 '규칙'에 불과할지도 모릅니다."


아리스는 단순한 물리학자가 아니었다. 그는 '존재론적 수학자'였다. 그는 끈 이론의 가장자리를 넘어, 현실을 지탱하는 근본적인 논리적 구조 자체를 탐구했다. 그의 엔진은 공간을 이동하는 것에 머무르지 않았다. 그것은 '명제'를 가로지르는 장치였다.


엘라라는 불안한 듯 도식을 바라보았다.


"엔진은 안정적이에요. 양자 중력장을 조작해 두 개의 평행 우주가 아니라, 두 개의 '논리 체계' 사이에 웜홀을 여는 데 성공했죠. 하지만 아리스, 그 너머에 뭐가 있는지 우린 몰라요. 당신의 뇌는 '비-모순율'을 전제로 작동하도록 진화했어요. 그게 무너진 곳에서... 당신의 정신이 버틸 수 있을까요?"


"지성이란 미지의 명제를 받아들이는 능력입니다."


아리스는 조종석으로 향하며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


"전 L-2의 문법을 배우러 갑니다."




전이 과정에 예상과 달리 물리적인 통증은 발생하지 않았다. 그보다 수준 높은, 개념의 고통. 그것은 '이해의 종말'이었다.


공간을 찢는 것이 아니라, '의미'가 찢어지는 감각이었다. 아리스의 의식은 무한히 뜨거우면서 지독히 차가운 물에 잠기는 듯했다. '나'라는 개념이 수천 개의 조각으로 나뉘었다가 억지로 다시 붙는 듯한 감각.


그리고 정지.


그가 도착한 곳은 L-1의 실험실과 거의 동일한 공간이었다. 하얀 벽, 제어 콘솔, 무균 처리된 바닥. 그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어쩌면 L-2의 논리도 L-1과 크게 다르지 않을지도 몰랐다.


그는 첫 번째 실험을 위해 펜을 꺼내 들었다. L-1의 물리학을 확인하는 간단한 절차. 그는 펜을 놓았다.


펜은 바닥으로 떨어졌다.


동시에, 펜은 허공에 떠 있었다.


아리스는 눈을 깜박였다. 혼란스러웠다. 두 개의 이미지가 겹쳐 보였다. 하나는 바닥에 떨어진 현실의 펜. 다른 하나는 그의 손을 떠난 그 자리에 그대로 멈춰 있는, 반투명한 잔상의 펜.


그의 뇌가 비명을 질렀다.


"선택해! 둘 중 하나만 진짜야!"


하지만 L-2의 우주가 속삭였다.


"왜? 둘 다 참인데."


그는 콘솔로 다가갔다. 전원 버튼이 있었다. 버튼은 '꺼짐' 상태였다. 빨간불이 들어와 있지 않았다.


동시에, 버튼은 '켜짐' 상태였다. 선명한 빨간불이 켜져 있었다.


그는 손을 뻗었다. 그의 손가락이 빨간불이 켜진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그의 손가락은 빨간불이 없는 버튼을 동시에 눌렀다.


딸깍.

...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동시에, 콘솔이 폭발적인 빛을 내며 켜졌다.


"이건..."


아리스가 중얼거렸다.


"이건 불가능해."


그의 말이 공중에 울렸다.


"불가능하다고."


동시에, 그의 입은 굳게 닫혀 있었고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목소리를 들었는가? 들었다. 그리고 듣지 못했다.


공포가 밀려왔다. 이것은 단순한 물리적 이상 현상이 아니었다. 이 우주는 '관측자'의 뇌가 하나의 현실을 선택하도록 강요하지 않았다. L-2는 모든 가능성을 '참'으로 유지했다. 모순율(~(A ∧ ~A))이 존재하지 않았다.


그는 거울을 바라보았다. L-1과의 유일한 통신 채널이자, 자신의 상태를 확인할 수 있는 장치였다.


거울 속에는 우주복을 입은 아리스 손 박사가 서 있었다. 겁에 질린, 그러나 여전히 지적인 눈빛으로 자신을 응시하고 있었다.


동시에, 거울 속에는 아무도 없었다. 텅 빈 우주복이 바닥에 구겨져 있었고, 헬멧 안은 텅 비어 있었다.


"나는... 여기에 있다."


아리스가 말했다.


"나는... 여기에 없다."


그의 목소리가 아닌 목소리가, 그의 입을 통해 동시에 울렸다.


그의 정신이 분열되기 시작했다. L-1의 논리에 묶인 그의 의식은 이 이중성을 처리할 수 없었다. '존재한다'와 '존재하지 않는다'가 동시에 참인 이 현실 앞에서, 그의 정체성이 붕괴하고 있었다.


"엘라라... 엘라라가 날 기다린다."


그는 이 생각을 필사적으로 붙잡았다. 그것이 L-1로 돌아갈 이유였다.


엘라라는 널 기다리지 않는다.


새로운 생각이, 그의 생각이 아닌 생각이, 그의 뇌에서 자연스럽게 자라났다.


엘라라는 존재한다.

엘라라는 존재하지 않는다.


"안 돼!"


그가 비명을 질렀다.


"그녀는 존재해! 내 기억 속에!"


기억은 참이다.

기억은 거짓이다.


그의 눈앞에서 실험실이 일렁이기 시작했다. 하얀 벽은 하얀색인 동시에 검은색이었다. 바닥은 단단한 동시에 액체였다. 이 우주는 그의 인식을 '재조정'하고 있었다. 그의 뇌를 L-2의 문법에 맞게 '포맷'하고 있었다.


그는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나는 생각한다'와 '나는 생각하지 않는다'가 동시에 참이었다.


그렇다면 나는 존재하는가? 존재하지 않는가?

답은 그냥 '그렇다'였다.


그는 자신이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아리스 손'이라는 단일한 정체성이, '아리스이면서 아리스가 아닌' 무한한 가능성의 중첩으로 해체되고 있었다. 그는 더 이상 '하나'의 관찰자가 아니었다. 그는 이 우주의 일부가 되고 있었다.


그는 돌아가야 했다. '나'라는 개념이 완전히 소멸하기 전에.


그는 귀환 레버를 향해 손을 뻗었다. 레버는 그의 오른쪽에 있었다.

동시에, 레버는 그의 왼쪽에 있었다.


그의 오른손이 허공을 휘저었다. 그의 왼손이 허공을 휘저었다.

그의 몸이 오른쪽으로 움직였다. 그의 몸이 왼쪽으로 움직였다.


그는 제자리에서 미친 듯이 버둥거렸지만,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했다.


모순. 모든 행동이 그것의 정반대 행동과 동시에 일어나 상쇄되었다. 움직이려는 '의지'와 움직이지 않으려는 '무의지'가 동시에 발현되었다.


'존재'하기 위해서는 '선택'해야 했다. L-1의 논리는 선택의 논리였다. A(A)이거나 ~A(NOT A)이거나. 둘 중 하나를 골라야만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었다. 하지만 L-2는 선택을 허용하지 않았다.


"생각... 생각할 수 없어."


그의 마지막 이성이 속삭였다. 논리가 통하지 않는다면, 논리 이전의 것을 사용해야 했다.


모든 논리, 모든 명제 이전에 존재하는 단 하나의 공리(Axiom).


'나'.


그는 눈을 감았다. 모든 모순된 시각 정보를 차단했다.

그는 '아리스이면서 아리스가 아닌' 존재를 무시했다.

그는 '존재하면서 존재하지 않는' 엘라라를 지웠다.

그는 자신의 가장 깊은 곳, 의식의 핵을 향해 파고들었다. 그리고 L-1의 우주에서 가져온 단 하나의 명제를 붙잡았다. 이 우주가 감히 부정할 수 없는, 그의 존재 자체인 명제.


그는 이 명제를 단순한 생각이 아니라, 존재의 힘으로 외쳤다.


"나는!"


그의 몸이 떨렸다.


"나다!"


그것은 L-2의 우주에 대한 선전포고였다. '나'는 '내가 아닌 것'과 동시에 존재할 수 없다는, 지극히 오만하고 편협한 L-1의 독트린이었다.


그의 주변에서 우주가 비명을 질렀다. A와 ~A로 평화롭게 공존하던 현실이, 이 단일한 '정체성'의 침입에 의해 격렬하게 요동쳤다. '존재/비존재'의 중첩이 깨지기 시작했다.


아리스는 눈을 떴다.


귀환 레버는 그의 오른쪽에 '만' 있었다.

그의 손은 '단 하나'였다.

그는 레버를 잡았다. 그리고 당겼다.

'당겼다'라는 행위는 '당기지 않았다'라는 행위의 방해 없이, 오직 그 자체로만 존재했다.


인과율이 발생했다.


의미가 다시 꿰매어졌다. 아리스는 L-1 실험실의 차가운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헬멧을 벗어던지자 익숙한, 모순 없는 공기가 폐를 채웠다.


엘라라가 달려와 그의 몸을 흔들었다. 그녀의 얼굴은 눈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그녀는 존재했다. 오직 존재할 뿐이었다.


"아리스! 세상에, 아리스! 괜찮아요? 날 봐요!"


아리스는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그는 엘라라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존재가 너무나 선명하고, 너무나... 단일해서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그는 살았다. 그는 돌아왔다.


엘라라가 그를 부축해 일으켰다.


"무슨 일이 있었어요? 거기엔... 뭐가 있었죠?"


아리스는 입을 열었다. 그는 자신이 겪은 공포, 존재론적 붕괴, 그리고 '나=나'라는 명제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말하려 했다. 그는 자신이 이 우주의 편협하지만 안전한 문법 안에서 얼마나 행복했는지를 전하고 싶었다.


그는 엘라라를 바라보며, 안도의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말했다.


"모르겠어."


동시에, 그의 입은 이렇게 말했다.


"모든 것을 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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