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차로
이팀장은 8년 만에 안경을 바꾸기로 했다. 마지막으로 안경을 맞춘 것이 언제인지 까마득했다. 렌즈 가장자리의 코팅이 벗겨져, 시야 끝에서는 보랏빛 무지개가 어른거렸다. 고개를 돌릴 때마다 세상이 일렁였다. 그는 세상이 원래 이렇게 뿌옇고 번져 보인다고, 스스로를 속여왔다.
점심시간, 그는 회사 근처에서 가장 유동인구가 많은 사거리의 횡단보도 앞에 섰다. 그리고 멈칫했다.
사거리의 네 귀퉁이. 1층의 가장 비싼, 소위 '목 좋은' 자리. 약국이나 대형 프랜차이즈 커피숍이 마땅히 있어야 할 그곳에, 네 개의 안경점이 포진해 있었다.
'A 안경', 'B 아이즈', 'C 글라스', 'D 옵틱'.
그들은 마치 거울에 비친 듯, 서로를 마주 보고 있었다. 상호만 다를 뿐, 약속이라도 한 듯 똑같은 붉은색의 '가을 정기 세일: 50%~' 현수막을 내걸고 있었다.
이팀장은 이 사거리의 임대료를 어림짐작해 보았다. 그의 한 달 월급으로는 저곳의 이주일 치 월세도 감당하지 못할 것이다. 그런데 네 곳 모두, 일 년 중 가장 활기 넘쳐야 할 금요일 점심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손님이 단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이런 식의 출혈 경쟁은 그가 아는 비즈니스 상식과 맞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은 망하지 않고 몇 년째 저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는 홀린 듯 횡단보도를 건너 'C 글라스'의 자동문을 통과했다. 문은 소리 없이 부드럽게 열렸다. 매장 안은 공기청정기 특유의 약간은 인공적인 냄새가 났다.
"어서 오세요, 고객님!"
하얀 셔츠에 검은 바지를 입은 직원 세 명이 카운터 뒤에서 동시에 튀어나오듯 그를 맞았다. 텅 빈 매장에 상주하는 직원 세 명. 이팀장은 본능적으로 '비효율적이군'이라고 생각했다.
"안경 새로 맞추시게요? 혹시 이전 시력 검사가 언제실까요? 시력이 변하셨을 수도 있으니 검안부터 '무료로' 도와드리겠습니다."
'무료'라는 단어는 언제나 미끼다. 그는 순순히 검안실이라 불리는 안쪽의 작은 방으로 안내됐다. 의자는 치과 진료 의자처럼 푹신했고, 그가 앉자 미세하게 '히익-' 하는 소리를 내며 높낮이가 조절됐다.
"여기 턱 대시고요, 안에 빨간 집 보이시죠? 흐려져도 괜찮으니 편하게 바라보세요."
익숙한 기계. 자동 굴절 검사기. 위이잉- 치직. 이팀장은 이 기계가 전국 어느 안경점을 가도 똑같은 독일제(혹은 일본제) 모델이라는 것을 문득 떠올렸다. 하긴, 데이터의 '표준화'는 중요하니까. 그는 속으로 직업병 같은 생각을 했다.
"네, 다 됐습니다."
직원은 그를 또 다른 의자에 앉혔다. 이번에는 거대하고 육중한, 곤충의 겹눈처럼 생긴 검안용 쇠테 안경(포롭터)이 그의 얼굴을 덮었다.
"자, 1번이 편하세요, 2번이 편하세요?"
딸깍.
"지금은요? 지금이 글씨가 선명하세요, 조금 전이 더 선명하세요?"
질문은 기계적이었고, 직원의 태도는 사무적이었다. 이팀장은 데이터를 입력하는 단말기 앞의 사용자가 된 기분이었다. 이 테스트가 사실은 '정답'을 요구하는 시험처럼 느껴졌다. 그는 최선을 다해 가장 선명하게 보이는 것을 골랐다.
직원은 이팀장의 대답을 컴퓨터에 빠르게 입력했다. SPH -3.25, CYL -0.50, AXIS 180. 모니터에는 이팀장이 알아볼 수 없는 숫자와 기호들이 나열됐다.
"고객님은 동공 간 거리(PD)가 64mm로 딱 표준이시네요. 난시 축도 거의 없으시고... 아주 '관리하기 좋은' 눈이십니다."
'관리하기 좋은 눈.'
표현이 이상했다. 마치 차량 정비사가 잘 관리된 엔진을 다루듯 말했다. 이팀장은 그 미묘한 위화감을 애써 무시했다.
그는 11만 9천 원짜리 '특가' 티타늄테와 '초발수 코팅' 렌즈를 골랐다. 이제 결제만 하면 끝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직원은 포스기(POS)에 한참 동안 무언가를 더 입력했다.
생각보다 길었다. 30초. 1분. 단순한 결제 정보 입력이라기엔, 기입하는 항목이 너무 많아 보였다. 직원은 검안실에서 가져온 차트를 참조하며, 이팀장의 PD값, 난시 축, 굴절률 같은 '의료 정보'를 '매출 관리' 프로그램에 꼼꼼히 기입하고 있었다.
"언제쯤 찾아갈 수 있죠?"
"당일 완성되세요. 20분 정도만 기다려 주시겠어요?"
이팀장은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밖으로 나왔다. 담배를 한 대 피우기 위해서였다. 그는 사거리 모퉁이의 흡연 구역에 서서, 자신이 방금 나온 'C 글라스'를 바라봤다. 그리고 그 옆의 'A 안경'과 'B 아이즈'를, 대각선의 'D 옵틱'을 차례로 훑어봤다.
그 20분 동안, 네 곳의 매장 어디에도 들어가는 손님은 없었다. 나가는 손님도 없었다. 하지만 네 곳의 안경점은 약속이라도 한 듯, 밝은 백색 LED 조명을 켜둔 채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들은 경쟁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그 사거리를 지나는 모든 보행자의 '시각 데이터'를 누락 없이 수집하기 위해 그물망을 쳐 둔 것처럼 보였다. A, B, C, D. 마치 1 사분면, 2 사분면, 3 사분면, 4 사분면.
그들은 경쟁자가 아니라, 각각의 구역을 나눠 맡은 거대한 '데이터 수집소'가 아닐까.
이팀장은 자신이 너무 나갔다고 생각하며 담배를 비벼 껐다. 그때, 'B 아이즈' 매장으로 배달 라이더가 헬멧을 벗으며 들어가는 것이 보였다. 곧이어 'D 옵틱' 매장에도 다른 배달 기사가 들어갔다.
그들은 저 텅 빈 매장 안에서, 교대로 점심을 시켜 먹고 있었다. 하나의 데이터라도 놓치지 않겠다는 뜻일까.
"고객님, 안경 나왔습니다."
'C 글라스'로 다시 들어갔을 때, 아까 그 직원이 따뜻하게 데워진(?) 안경을 건넸다.
"저희 매장 전산에 등록해 드렸으니까, 다음부터는 전국 'C 글라스' 어디를 가셔도 고객님 데이터 바로 확인 가능하세요."
이팀장은 새 안경을 받아썼다.
세상이 비정상적으로, 폭력적일 만큼 선명했다. 눈을 새로 바꿔 끼운 느낌이 들었다. 그는 방금 자신의 홍채 정보와 각막 곡률, 수정체 데이터를 '전국구 네트워크'에 스스로 넘긴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감사합니다."
그는 어색하게 웃으며 매장을 나섰다. 사거리 한복판에 서자, 방금 전까지 무심코 지나쳤던 네 개의 안경점 로고가 선명하게 눈에 박혔다. 글꼴만 조금 다를 뿐, 모두 신뢰감을 상징하는 푸른색 계열의 깔끔한 디자인이었다.
신호등이 바뀌었다. 사람들이 횡단보도를 건넜다. 그들 중 절반은 안경을 쓰고 있었다.
이팀장은 가벼운 현기증을 느끼며 사무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새 안경 렌즈가 오후의 햇빛에 날카로운 푸른빛을 반사했다. 그는 세상을 더 선명하게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세상도 이제 그를 더 선명하게 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