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XX 11/5 (수)
자연 갈색 머리를 포니테일로 묶고 다니는 갸름한 얼굴형과 동그란 눈망울이 매력적인 설희라는 친구 이야기를 해야겠다. 초등학교 4학년 때 같은 반 친구였는데 또래에 비해 성숙해서 묘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반 여자아이들은 모닝글로리와 아트박스를 오가며 모은 반짝이는 젤펜과 알록달록한 편지지를 그녀에게 선물했다. 그녀는 노력없이도 원하는 것을 가졌다. 늘 단정하지만 또래와는 다른 조금 더 성숙한 패션, 보통보다 큰 키에 마른체격은 6학년 선배를 연상시켰다. 같은 반 아이들은 그녀의 단짝이 되고 싶어 했다. 그녀 주위에 아이들이 몰려들어 마치 수호막 같은 동그란 원이 생겼다. 그녀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반에서 설희는 아이돌이자, 모두의 선망의 대상이었다.
어느 날 급식을 먹던 중, 밥을 먹다 말고 설희가 난데없이 휙 하고 식판을 들고 일어서더니 반 넘게 남은 음식을 모두 갖다 버렸다. 순간 고요한 정적이 일었다. 누군가 눈치 없이 물었다.
“왜 그래 설희야?”
설희는 말했다.
“몰라서 그래? 쟤 더러운 침이 내 국 안으로 들어갔잖아.”
슬아의 침이 웃다가 설희의 국 안으로 들어갔다는 것이다. 그곳에 있던 아이들은 모두 하나가 되어 슬아를 향해 비난의 말을 쏘아댔다.
“야, 웃을 때는 입을 가리고 웃어야지.”
“더러운 침이 설희 국 안으로 들어갔잖아. 더럽게 어떻게 먹어? 네 침이 들어갔는데.”
슬아는 당황한 듯 우물쭈물거리다가 잘 들리지 않는 작은 소리로 말했다.
“안 들어갔는데...”
아이들은 슬아가 뭐라고 말하든 상관없다는 듯 더욱더 쏘아붙였다.
“얼굴도 까만 게, 사과해. 설희한테 당장 사과해.”
슬아의 까만 눈망울에 물방울이 맺혔다. 슬아는 입꼬리를 잔뜩 내리고 턱에 주름을 만든 채로 울음을 삼키며 설희에게 사과했다. 그날 점심 이후에도 아이들의 텃세는 계속되었다. 슬아는 입고 있던 꽃무늬 원피스를 검지손가락으로 베베 꼬면서 아이들 주변을 서성거릴 뿐 다가오지 못했다. 아이들은 설희의 눈치를 보며 슬아를 더욱더 투명인간 취급했다. 그날 이후로 슬아는 없는 사람이거나 함부로 해도 되는 사람이었다.
모두가 운동장에서 정글짐을 타고, 얼음땡을 하는 동안에도 운동장 가운데로는 들어오지 못하고 주변으로만 빙글빙글 도는 슬아를 나는 곁눈으로 훔쳐보았다. 외모순위가 여자애들 중에서 13위인 내가 언제 슬아랑 위치가 바뀌게 될지 모르니까. 외모순위 부동의 1위인 설희의 눈 밖에 나면 안 되니까. 나는 몸을 사렸다.
설희는 알았던 거다. 자신의 예쁨과, 모두의 추종을 사악하게 이용하는 법을. 아이들을 자신의 편으로 만드는 권력의 맛을. 어린아이는 악이 되기도 한다. 그날부터였을까? 내 머릿속에 입력된 예쁨의 정의.
예쁨은 모든 것을 용서한다는 생각.
이후로도 설희같은 아이들은 차례대로 나타난다. 중학교에서도, 고등학교에서도, 대학교에서도, 회사까지도. 설희는 죽지않는 불사신이다. 내가 아무리 도망가려해도 늘 내안에 있다. 거울속에서 언제나 나를 감시한다. 나는 자유로워질 수 없다.
거울 속에 비친 내 피부는 흰 눈 위에 뿌려진 아메리카노 같다. 흰 피부에 여드름 자국과 기미는 유독 더 도드라져 보인다. 나이가 들어 벌어진 모공은 귤껍질 같고 입술에도 간장 같은 색소침착이 나있다. 그나마 컨실러로 가리면 좀 보기 좋아져서 화장을 하지 않고서는 집 앞 편의점이나 분리수거장에도 가지 않는다. 원래 나의 얼굴은 예쁘지 않으니까. 화장하지 않으면, 운동장에 혼자 덩그러니 있던 슬아가 떠오른다. 혼자 남겨질거라는 두려움이 엄습해 온다. 웃을 때 입을 가리라고, 말할 때 침을 튀기지 말라고, 같은 행동을 해도 손가락질 받는 사람이 되어버릴 것만 같다.
코로나 시대에 즐거운 점이 있었다면 마스크를 써도 누구 하나 관심 갖지 않는다는 것이다. 분리수거장과 편의점에 갈 때면 모자와 마스크를 쓴 채 화장을 하지 않아도 된다. 처음으로 맨얼굴로 밖을 나가보았다. 마스크를 써서 숨쉬기 힘들다는 사람들 틈에서 피부가 숨 쉬는 것을 느껴본 나는 화장하지 않는 편안함과 사람들의 시선으로부터 안정감을 느꼈다. 나에겐 나의 본 얼굴을 감추는 것이, 조금 더 예쁘게 보이는 것이 나를 지켜주는 방패막이다. 그러기 위해서 화장품은 내게 총알이자 안전지대다. 나는 죽는 순간까지 내가 어떻게 보일지, 나의 예쁨을 걱정한다.
장례사가 죽은 사람에게 메이크업을 해준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죽은 사람에게 하는 메이크업은 혈색 있게 보이는 정도로만 해주는 걸까. 만약에 깨끗하게 죽을 수 있다면 메이크업을 원하는 스타일로 해달라고 유언하고 싶다. 죽어서 마음에 안 드는 화장을 한 채로 떠돌아다니고 싶지 않다. 내가 가리고 싶어 했던 피부 결점, 어울리지 않는 섀도우 색깔, 눈썹 모양, 립스틱 바르는 스타일을 첨부하여 유서에 붙이고 죽을 수만 있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