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훈이 119에 신고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구급차 한 대가 사이렌을 울리며 사고 지점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함께 신고한 112에서도 경찰차가 출동했고, 저 멀리서 차량의 불빛이 보이자 석훈은 손을 흔들어 찬희의 차 주변으로 차량들을 안내했다. 신속하게 차에서 내린 구조대원들은 차 안에 갇혀 있는 찬희를 무사히 구조했다. 그리고는 준비되어 있던 들것에 찬희를 싣고는 구급차 안으로 옮겼갔다. 사고 현장을 지키며 찬희를 구조하는 모습을 계속 지켜보고 있던 석훈에게 경찰들이 질문을 했고, 석훈은 지나가다 목격한 사고에 대해 간단하게 진술했다.
찬희를 구급차에 실은 구조 대원들이 석훈에게 물었다.
"같이 타실 겁니까?"
모르는 사람의 사고였다면, 신고만 하고 자리를 떴을 그였지만, 사고 당사자가 본인이 알고 있는 윤찬희일 거라는 생각에 석훈은 자신도 모르게 대답을 해버렸다.
"네. 같이 타겠습니다."
자신의 차를 경찰에게 맡긴 석훈까지 탑승을 마치자, 구조대원들은 사이렌을 울리며 신속하게 출발했다.
사고 현장에는 찌그러진 찬희의 차와 석훈의 차, 그리고 경찰만이 남았다.
구급차 안에서도 정신이 돌아오지 않은 찬희를 깨우기 위해 구조대원들은 찬희를 크게 불러 보았다.
"환자 분, 환자 분"
그러자 이를 지켜보고 있던 석훈이 입을 열었다.
"윤찬희라고 했어요. 이름이..."
구조대원들은 다시 찬희를 향해 크게 외쳤다.
"윤찬희 씨, 윤찬희 씨! 들리시면 눈 떠 보세요."
누군가 자신을 부르는 어렴풋한 소리에 찬희는 살며시 눈을 떴다.
흔들리는 차 안에서 구급 대원이 자신을 부르는 소리였다. 찬희는 잠시 기절해 있을 때 자기도 모르게 이름을 알려준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윤찬희 씨, 발가락 한 번 움직여 보실래요?"
"네에..."
꿈쩍도 할 수 없었던 꿈에서와는 달리, 힘을 주니 발가락은 움직이는 듯했다. 하지만 찬희의 발을 지켜보던 구급 대원은 발이 움직이지 않는다고 얘기했다.
겨우 힘을 내어 대답하던 찬희의 입 안에서는 깨진 유리 파편들이 씹히는 듯했다. 입에 고여 있던 피를 뱉고 싶다고 느꼈지만, 찬희는 밀려오는 극심한 통증에 또다시 정신을 잃고 말았다.
옆에서 찬희의 모습을 안타까운 표정으로 지켜보던 석훈은 오랜만에 만난 찬희가 이런 모습을 하고 있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몇 년 전 괌에서 만날 때만 해도 남편과 함께 행복한 모습을 보여줬던 찬희였는데, 남편은 어디에 있는 건지, 어쩌다 혼자 이런 사고를 당한 것인지 아무것도 알 수 없어 마음이 저려왔다.
모든 것이 느리고 답답하게만 느껴지던 석훈과는 달리, 구조대원들의 손놀림은 빠르고 정확했다. 정신을 잃은 찬희에게 재빨리 응급처치를 하던 구조대원들은 병원 응급실로 전화를 걸어 위중한 환자를 받을 수 있는지 문의하였다. 하지만 몇 군데 전화를 해도 의료진이 없어 환자를 받을 수 없다는 대답에 구조대원들도 지친 기색을 보였다. 석훈은 초조한 마음으로 손에 쥔 핸드폰을 꽉 쥐었다.
'제발, 어디든 빨리 치료 좀 해달라고!'
석훈의 마음속 외침이 통했는지, 몇 번의 시도 끝에 다행히 한 병원에서 환자의 치료가 가능하다는 답이 돌아왔다.
"어디로 가는 겁니까?"
석훈의 질문에 구조대원이 말했다.
"새빛 대학병원 응급실입니다."
새빛 대학 병원. 그곳은 바로 진우가 마지막 순간을 함께 했던 병원이었다.
그러나 그런 사정을 알리 없었던 석훈은, 찬희의 점점 더 가늘어지는 숨소리에 마음이 한없이 내려앉았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찬희가 무사하기를 비는 것 밖에 없다는 생각이 가슴을 더욱 아리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