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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32화] 머리맡을 비추던 햇살

by U찬스


오랜 수면 상태에서 깨어난 이후, 찬희의 몸 상태는 천천히 회복세를 보이고 있었다. 중환자실에서 6인용 일반실로 옮겨진 찬희는, 너무 아플 때에는 제발 통증만은 없었으면 하는 바람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시간이 지나면서 몸의 고통이야 점점 줄어들고 있었지만 마음의 고통만큼은 벗어날 길이 없었다.

병실 내에 병문안이 자유롭지는 못했지만, 같이 입원해 있는 다른 환자들 주변에는 항상 가족들이 함께 했다.

특히 바로 옆 침상 환자는 남편이 회사도 다니지 않는 건지, 입원해 있는 2주 동안 병실에 상주해서 부인의 병간호를 해주고 있었다. 잠깐 밖에 볼 일을 보러 갔다 올 때면 남편의 두 손에는 환자가 먹을 음식들로 가득했다. 가져온 음식들을 병실의 환자들에게 나눠 주기도 하고, 거동이 힘든 부인의 입에도 손수 넣어주는 그런 모습들을 보니, 찬희는 자신이 철저히 혼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서러워진 마음에 찬희는 항상 개인 커튼을 치고 다른 환자들과는 접촉하지 않고 혼자만의 시간을 가졌다.


물론 찬희에게도 찾아오는 가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엄마는 서후의 어린이집 등원과 하원을 봐줘야 했기 때문에 자주 들릴 수는 없었다. 그리고 몸도 성하지 않는 엄마가 자신 때문에 병원을 자주 들락거리는 것 또한 찬희는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래서 엄마에게 전화로는 항상 이렇게 얘기했다.

"이제 많이 괜찮아 졌으니까 자주 안 와도 되요. 집에서 엄마 몸이나 잘 챙기고 계셔."

라고 말이다.

주말마다 들린 선희에게는 자신의 잃어버린 기억에 대해 듣고 싶었지만, 사고에 대한 트라우마가 걱정이 되었던 선희는 찬희에게 그 날에 대한 이야기는 일절 말해주지 않았다. 무엇보다 자신의 차가 궁금했던 찬희는 선희에게 물었다.

"차는 어떻게 됐어? 수리 맡겼어?"

​그러자, 선희는 잠시 머뭇거리다 입을 열었다.

"수리하려고 했는데, 안되겠대. 그냥 폐차해야 겠더라."

폐차라는 말을 듣는 순간, 찬희는 다시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그 차가 어떤 차인데... 오빠의 암진단금으로 산 그 귀한 차를...'

찬희는 남편의 생명과 맞바꿨다고 생각할만큼 소중하게 여기던 자신의 애마가 산산히 부서졌다는 생각에 절망감이 밀려왔다. 남편이 남기고 간 흔적이 모두 다 사라져 버렸고, 부서진 차와 함께 자신의 인생까지도 모조리 산산조각 났다는 생각이 들어 견딜 수가 없었다.


진우는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도 '그냥 웃자'라는 말을 가슴에 새기고 그 말을 잊지 않기 위해 노력했는데, 자신은 도대체 이게 뭔가 싶었다. 진우의 '그냥 웃자'라는 말을 떠올리며, 찬희는 허공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공허한 침실의 천장이 그녀의 마음을 더 무겁게 내리누를 뿐이었다. 진우가 떠난 뒤로는 하루 하루가 모두 우울하고 힘든 날의 연속이었다. 매일 이렇게 아무런 의미도 없는 하루를 보내고 있다는 생각에, 순간 모든 것을 놓아버리고 싶었던 찬희는 자신도 그냥 진우를 따라갔으면 하는 극단적인 생각마저도 들었다.

진우에게 서후를 데리고 열심히 잘 살아보겠다 다짐했었던 자신이었건만, 지금껏 뭐 하나 제대로 된 것이 없었다. 현실은 자신의 다짐과는 달리, 원치 않는 방향으로만 흘러가고 있었다. 불행은 왜 한꺼번에 찾아오는 건지, 회사도 실직하고, 사고로 건강도 잃고, 거기에다 차까지 망가져 버렸다. 먼저 간 진우만큼이나 자신의 인생 또한 쉽게 풀리지 않는다고 생각하니 세상이 원망스럽기 그지 없었다. 가도 가도 끝이 없는 절망의 연속이었다.


'​​찬란하기를 바랐던 내 인생은 여기서 끝인건가...'

그러자 고등학생 때 항상 머릿속으로 되뇌던 글귀가 갑자기 떠올랐다.


'내가 그냥 보낸 오늘은 어제 죽어가던 사람이 그렇게 살고 싶어하던 내일이다.'


​항상 그 말을 항상 마음에 품고 빛나는 날들을 살기 위해 노력했던 자신이었다. 하지만 어차피 이렇게 남편, 직장, 건강까지 모든 걸 다 잃게 될 줄 알았더라면 하루를 살더라도 마음 조리지 말고 재미있게나 살 걸, 하지만 막상 그 때로 돌아간다고 해도 그렇게 살지는 못할거면서 찬희는 끝도 모를 후회만 되뇌고 있었다.


그 때 창밖에서 한 줄기 햇빛이 병실로 스며들었다. 커튼 사이로 들어온 빛줄기가 찬희의 침대 머리맡을 비추었다. 침대에 누워있던 찬희는 빛줄기가 눈이 부셔 잠시 손으로 가렸지만, 손에 닿는 따스함이 좋아 자신도 모르게 저절로 입꼬리가 올라갔다.


'누군가의 내일이 되고 싶었던 내 삶이 이렇게 끝나버려서는 안 돼.'


허탈감에 사로잡혀 있던 찬희는 한줄기 햇살을 맞으며 다시 힘을 내기로 했다. 한 때는 '오늘을 소중하게 살아야지'라고 생각했던 그 열심히 허망하게 느껴지지 않도록 다시 한번 그 말을 붙잡아야겠다고 마음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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