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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31화] 이어지지 않는 그날의 조각들

by U찬스 Dec 07.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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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 대학병원 응급실로 옮겨진 찬희는 CT와 MRI 검사를 거치며 두개골 골절과 대퇴부 골절을 진단받았다. 연락을 받고 그 길로 바로 허겁지겁 달려온 선희는 응급실로 들어가긴 전 울고 있는 엄마와 서후를 달랬다.

"나도 같이 들어가련다."

엄마가 눈물로 범벅된 얼굴로 응급실에 들어가려고 하자, 선희는 망설임 없이 막아섰다.

"엄마는 그냥 여기서 서후 좀 봐주세요. 내가 얼른 갔다 올 테니."

그렇게 선희는 두 사람을 안심시키고는 응급실로 들어갔다.

누워있는 찬희를 본 선희는 엉망이 되어 버린 찬희의 모습에 고개를 돌리고만 싶었다. 이 상황이 현실이라 생각하니 팔다리에 힘이 다 풀려 버렸다. 하지만, 겨우 마음을 추스르고는 수술동의서에 사인을 하며 의식을 잃은 찬희의 손을 꼭 잡았다.

"찬희야, 괜찮을 거야. 괜찮을 거야."


선희는 고인 눈물을 흘러내리지 않게 꾹 참으며, 자신에게도, 찬희에게도 꼭 들려주고 싶은 말인 '괜찮을 거야'라는 말만 연신 반복했다.

그리고 사고 현장에서부터 병원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던 한 남자에게도 고맙다는 말을 반복했다. 선희의 인사를 듣고만 있던 남자가 입을 열었다.

"찬희의 대학 선배입니다. 마침 제가 사고 현장을 발견해서 그냥 지나칠 수만은 없더라고요. 찬희 깨어나면 이것 좀 전해 주십시오."

그러면서 ​석훈은 명함지갑에서 자신의 명함을 꺼냈다.  

'해뜰 막국수'

명함을 건네며 석훈은 선희에게 말했다.

"찬희 깨어나서 치료 끝나면 가족분들 같이 놀러 오세요. 찬희는 괜찮을 겁니다. 힘내시기 바랄게요."


그러면서 석훈은 선희에게 90도로 인사하며 자리를 떴고, 선희 또한 석훈의 뒷모습에 대고 그가 안 보일 때까지 정중하게 인사를 했다.



수술 이후로도 한참을 잠에서 깨어나지 못했던 찬희는 1주일이 지나서야 겨우 눈을 떴다.

마침 일요일이라 출근하지 않고 자리를 지키고 있던 선희가 찬희를 바라보며 소리쳤다.

"찬희야! 이제 정신이 좀 들어?"

"어..."

"잠깐 있어봐. 간호사 불러올게"

선희는 간호사를 부르러 최대한 빠르게 뛰어갔고, 찬희는 어렴풋이 뜬 눈으로 주변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왠지 익숙한 느낌이 드는 이곳은 겨우 정신을 차려 생각해 보니, 진우를 보냈던 그 병원이었다.  진우가 마지막 순간을 보냈던 이곳. 이 병원에 자신마저 누워 있다고 생각하니, 찬희의 몸은 본능적으로 떨려왔다.

​신호등의 초록불을 보고 천천히 핸들을 꺾었던 순간까지는 기억이 선명했다. 하지만 그다음은 끊어진 필름처럼 모든 장면들이 희미하게만 느껴졌다. 눈부신 불빛과 귀를 울리는 경적 소리, 그리고 차와 함께 뒤집혀 버린 세상까지 모든 것이 조각조각 흩어져 버려 자신을 더욱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무엇이 어떻게 된 것인지, 자신이 왜 이 병원 침대에 누워 있는 건지, 아무리 애를 써봐도 기억의 파편들은 이어지지 않았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던 거야?'

그때를 떠올리려 할수록 머릿속은 타이어 마찰음과 번쩍이는 섬광으로 가득해 자신도 모르게 몸이 움츠러들었다. 찬희는 떨리는 몸을 움직여 보려고 했지만, 꿈쩍하기는 힘들었다.

진통제 덕인지 통증은 덜했지만, 머리와 다리의 고통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어쨌든 자신의 의사와는 달리, 몸을 쓰기 힘든 것만은 분명했다.


그 사이 선희는 간호사를 데리고 뛰어 왔다.
간호사는 간단한 처치를 했고, 뒤 따라온 담당의도 찬희에게 다가와 몇 가지 질문을 했다.

하지만 찬희는 의사의 목소리도, 질문 내용도 하나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머릿속은 새하얀 백지상태인 것 같았다. 뒤에 서서 찬희와 의사를 번갈아보고 있던 선희를 보며 의사가 말했다.


"조금 더 안정을 취할 시간이 필요할 겁니다."

"네, 이제 좀 괜찮아지는 거겠죠?"

선희의 간곡한 물음에 의사도 조금 더 지켜보자는 말을 남기며 간호사와 함께 자리를 떴다.

선희는 찬희의 손을 꽉 잡으면서 말했다.

"시간 지나면 더 괜찮아질 거야. 너무 걱정하지 말고 눈 감고 좀 더 쉬어."

자신을 안심시키는 선희의 말에 찬희는 불현듯 서후의 얼굴이 떠올라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물었다.

"서... 서후는?"

"서후는 걱정하지 마. 엄마랑 집에서 잘 지내고 있으니까. 좀 괜찮아지면 서후 영상통화도 시켜줄게."

찬희는 엄마 없이 할머니와 지내고 있는 서후를 생각하니 너무나도 마음이 아려와 보고 싶어 견딜 수가 없었다. 생각만큼 목소리가 나오지 않자, 찬희는 선희의 옷깃을 잡아당기며 말했다.


"지금... 시켜줘... 영상... 통화..."

"그래, 알았어."

선희는 엄마에게 영상으로 전화를 걸어 찬희의 의식이 돌아온 것을 알렸다. 그리고 찬희의 얼굴을 엄마에게 비추었다.

"찬희야! 좀 어때?"

엄마가 울먹이는 목소리로 물어보자, 찬희는 들릴 듯 말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직은.. 아파... 엄마... 서후는?"

할머니의 옆에서 영상통화를 지켜보던 서후가 해맑게 엄마를 불렀다.

"엄마, 이제 괜찮아?"

찬희는 순간적으로 눈물이 차올랐다.

화면으로만 볼 수 있는 얼굴이었지만, 찬희는 자신을 보며 웃고 있는 서후의 모습을 보니 그래도 걱정이 한시름 놓이는 것 같았다.

찬희는 말조차 잇기 힘들었지만 통증을 겨우 참으며 서후에게 말했다.

"서후야... 엄마... 얼른... 나아서... 빨리... 갈게..."

비록 한마디 한마디 이어 가는 것조차 힘겨웠지만, 서후를 다시 안을 수 있을 거란 희망이 찬희의 가슴속 깊은 곳에서 피어오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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