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눈의 병명을 들었을 때, 며칠 동안은 출퇴근길 내내 노래만 들었다. 아무 생각도 하고 싶지 않아서, 음악에 몸을 맡기며 모든 걸 잊고 싶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이유는 가사를 보지 않고도 노래 한 곡 정도는 완창 할 수 있도록 연습하고 싶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앞이 보이지 않게 된다면, 가사가 눈앞에 있어도 읽으면서 따라 부를 수는 없을 테니까...
그때 제일 많이 들었던 노래는 윤종신 님이 곡을 쓰고, 정인 님이 피처링한 "오르막길"이었다. 가사 한 줄 한 줄이 가슴 깊이 와닿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마음에 남았던 부분이 있다.
기억해 혹시 우리 손 놓쳐도
절대 당황하고 헤매지 마요
더 이상 오를 곳 없는
그곳은 넓지 않아서
우린 결국엔 만나 오른다면
특히 "우리 손 놓쳐도 당황하고 헤매지 마요" 이 가사를 따라 부를 때마다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 같았다.
만약 어느 날 앞이 보이지 않게 된다면, 나는 누군가의 손에 의지해서 앞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그런데 그 손을 실수로 놓치게 된다면? 그 막막함과 두려움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먹먹했다. 운전 중에 쏟아지는 눈물을 가까스로 참으며 애써 마음을 다잡았던 기억이 난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가서처럼 "그곳은 넓지 않아서 결국엔 만날 테니" 너무 당황하거나 헤매지 말라는 위로였다. 그 따뜻한 노랫말이 너무 좋아서, 가사를 완전히 외울 때까지 무한반복하며 들었다.
요즘도 쉬는 날이면 산책로를 걸으며 가끔 그 노래를 듣곤 한다. 다행히 아직까지는 눈에 큰 이상이 없어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 길을 걷는다.
이어폰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를 들으며 길을 걸을 때에, 세상에는 오직 '음악과 길'만 남는다. 걸으면서 떠오르는 생각들도 노래 속에 스며들고, 나는 앞만 보며 한 걸음 한 걸음 걸어갈 뿐이다.
생텍쥐페리의《인간의 대지》에는 이런 글이 나온다.
"나를 살린 건 앞으로 나아간 그 한 걸음이야. 한 걸음, 또 한 걸음…… 언제나 그 한 걸음으로 우리는 다시 시작하는 거야.”
인생은 때로는 우리가 예상치 못한 오르막길의 연속이다. 때로는 이 길이 끝날 것 같지 않고, 앞이 보이지 않는 어둠만이 느껴질 때도 있다. 하지만 그 순간에도 한 걸음 내딛는 용기가 나를 앞으로 나아가게 한다.
언제, 어느 순간 눈앞에 오르막길이 닥칠지라도, 나는 절대 당황하거나 헤매지 않는다. 한 걸음씩 내딛으며 앞으로 나아간다. 그리고 걷고 또 걷다 보면, 더 이상 오를 곳 없는 그곳에 도착했을 때, 결국엔 빛이 내게 손 내밀 것이다. 나를 살리고, 내가 걸어온 모든 길의 의미를 밝혀줄 그 빛을 향해 나는 오늘도 걷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