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여덟 해 동안의 이야기
오래된 철문이 끼익대며 열렸다.
스산한 마당을 지나 집에 들어온 세희가 트렁크를 내려놓고 한숨 고르자 흰 김이 입안에서 서려 나왔다. 오랫동안 비워졌던 탓에 밖과 집안의 온도는 별 차이가 없었다. 어둠 속에서 벽을 짚어가며 스위치를 올리고 불을 켜고 보일러를 가동했다.
6년 만에 돌아온 집은 익숙한 듯 낯설었다. 가구는 집을 나오면서 다 뺐다. 때문에 생활감이라고는 없는 텅 빈 집이었으나 숨을 들이마시면 익숙한 향기가 폐부에 가득 채워진다. 기억의 향기였다. 세희는 온기가 서서히 돌기 시작한 방에 지친 몸을 뉘었다. 상념들에 의해 주변 공기가 습기를 머금었다. 마치 유독 기억에 남는, 축축하고 어두운 비가 내리던 여름밤들처럼.
엄마는 내 열일곱 번째 생일날에 죽었다. 지독한 난산이라 하셨다. 아빠는 모른다. 태어날 때부터 없었느니. 할머니는 미혼모로 살겠다는 딸을 평생 보지 않겠노라 선언하셨고 때문에 내 기억 속의 엄마는 늘 외롭고 아팠다. 엄마는 그렇게 언제 다가올지 모르는 죽음에 허덕이며 살아오셨으나 떠날 때만큼은 후련해 보였다.
하지만 난 달랐다. 나를 옥죄던 걱정이 사라졌다고 후련할 리는 없었다. 내 기억 속에 엄마와 보낸 시간들은 눈 뜨면 사라질 가, 집에 돌아오면 사라질 가 늘 노심초사하던 시간들이었다. 내가 커갈수록 여위어가는 엄마가 불쌍했다. 내가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하는 가정이 머리를 메우는 날들이 많아졌다.
’ 세희야, 엄마는 사라지는 게 아니야. 엄마는 언제나 널 보고 있을 거야, 네가 안 보이는 곳에서. 그러니 힘들 때면 엄마를 떠올려. 엄마는 언제나 네 평화와 안녕을 기도하고 있을 테니. 네게 내 기도가 닿지 않는대도 언제나. 그때면 신도 내 기도를 들어주지 않을 가?‘
많이 울었다. 사신의 칼날이 엄마의 목 끝에 다가왔음을 느꼈다. 엄마는 17년 전 이 지독한 병이 시작되었던 날에 사신을 맞이했다.
그날을 절대 잊지 못한다. 빗줄기가 투둑투둑 창문을 때리던 그날을 잊지 못한다. 백색 침대보위 칙칙한 회색빛 머리칼을 잊지 못한다. 갈라진 흰 입술과 빛바랜 동공이 감기며 숨을 잃던 순간을 잊지 못한다. 그 순간에 창에 비친 내 모습을 잊지 못한다. 창에 비친 내 윤기 나는 흑색 머리칼과 맑은 남색 동공과 붉은 입술을 잊지 못한다. 마치도 내가 엄마의 색을 다 빼간 듯한 나를 잊지 못한다.
그때부터였을까. 지독한 자기 연민에 빠지기 시작한 것은.
할머니는 근 이십 년 후에 다시 만난 딸을 끌어안고 눈물을 흘리셨다. 미안하다고. 널 버려서 미안하다고. 딸은 검은 틀을 가진 액자 속에서 환하게 웃고 있었다.
장례식이 끝나고 빨간 지붕에 하얀 담장을 가진 집으로 이사 왔다. 크지도 작지도 않은 집. 엄마가 태어나서 자란 집. 그날 밤, 엄마의 흔적이 남은 피아노를 쳤다. 엄마가 배워주신, 엄마가 남기고 가신 걸 들려드렸다.
그날 할머니는 많이 우셨다. 엄마를 빼닮은 얼굴과 손재주. 나는 처음으로 그것에 감사했다. 할머니는 나를 보며 잃은 딸을 생각하셨고 잃어버린 시간들을 나를 키우며 돌려받으려 하셨다. 그것에 감사했다. 돌아올 집이 있다는 것이, 나를 사랑해 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그러나 다시 얻은 안온한 생활은 두 해를 넘기지 못했다.
유독 장마철이 길었던 해였다. 자꾸 먼지가 떠다닌다는 할머니를 모시고 병원에 갔을 때 의사는 믿기 힘든 말을 꺼냈다.
'당뇨병성 망막증입니다. 지금으로선 수술밖에 방법이 없지만 연세가 있으셔서 위험부담이 커요. 일단 입원하고 혈당수치 보면서 치료 진행 할게요. 안타깝지만 실명 가능성도… 염두에 두셔야 합니다.’
마음속에서 다시 한차례 빗물이 흘렀다. 이 빌어먹을 먹구름들은 항상 내 불행을 머금고 있는 듯 행복해질까 하면 덮쳐와 심장을 때렸다. 그래서 일가, 기억 속 여태까지 거쳐온 수많은 계절 중 여름만큼은 그 감각이 완연했다.
비가 주룩주룩 흘러내렸다. 정류장 지붕에서 흘러내린 줄기들이 신발 앞코를 적셨다.
실명하실 수도 있다고…
후드득 떨어진 눈물이 회색치마를 검게 물들였다.
산소 없는 수면아래서 허덕거리던 지난밤들이 떠올랐다. 막연한 불안감에 번쩍 뜨인 눈이 어둠 속에 적응할 새도 없이 흐려졌다, 가빠진 호흡에 겨우겨우 몸을 일으켜 손으로 방바닥을 매만지며 엄마를 찾은 그 밤들이.
한참을 아가미 없이 헤매다 손바닥에 느껴지는 따뜻한 온기에 숨을 크게 내쉬었던 그 밤들이.
호흡이 제자리를 찾아가고 시야가 트였을 때 보인 엄마의 얼굴이 너무도 말라서, 자신을 쓰다듬는 엄마의 힘이 너무도 미약해서, 다시 차오른 눈물이 앞을 흐린 그 밤들이.
보이는 삶과 보이지 않는 삶.
보인 대도 바뀌는 것은 없다. 햇빛이 들어올락 말락 하는 저 먹구름 짙게 낀 저 하늘처럼 조금 살까 하면 더 큰 파도가 와서 자신을 덮쳤다. 물기에 흐려진 눈이 다시 제 기능을 한대도 바뀌는 것은 없었다. 엄마가 돌아가신 그 후에도 늘 그랬다.
아가미 없이 넓은 바다에서 허우적 대는 꼴이었다. 자신의 삶은 이렇듯 둘 다 큰 차이가 없었으나 할머니는 달랐다. 할머니는 살아야 했다. 할머니는 봐야 했다. 딸이 남긴 것을 봐야 했다. 증오 대신 사랑을 택한 말로가 이래서는 안 됐다.
근데 실명하실 수도 있다고…
꼬리에 꼬리를 문 불결한 가정들이 머리를 헤치고 다녔다. 할머니 마저 허무하게 잃을 수는 없었다. 자신이 뭘 할 수 있는 지부터 생각하기로 했다.
죽음은 인간의 힘으로 피해 갈 수 없다는 걸 잘 알아.
그것이 오기 전에 내가 할 수 있는 것부터 한다.
내가 줄 수 있는 것부터. 내게 남은 유일한 것.
달 세뇨. 악보에서 세뇨가 있는 곳으로 돌아가서 연주를 반복하라. 세뇨가 찍힌 빨간 지붕 집, 그곳에서의 처음으로 되돌아간다. 처음 들려드렸던 연주를 다시 반복한다. 그리고 알레그로(allegro). 빠르고 화려하게.
더욱더 열심히 살았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건 피아노 실력이 꽤 쓸만했다는 것이었다. 할머니가 서서히 시력을 잃어가는 동안 재단의 후원을 받아 무사히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좋은 대학에 들어갔다. 그 노력의 결실로 첫 독주회라는 좋은 기회를 얻게 되었다.
달 세뇨 후 이어지는 알레그로 파트에 진입해야 할 순간이었다.
그러나 할머니의 삶의 심지는 내가 가장 화려할, 그토록 원했던 것을 이루어야 할 날에 다 타버렸다. 당신이 그토록 얻고자 했던 것, 보고자 했던 것은 보지도 못하고.
삼 년, 할머니의 삶의 심지가 서서히 타가는 영겁의 시간이었다. 이렇듯 두 번의 상실은 내 마음에서 희망의 자리를 쓸어가 버렸다.
장례식장의 매캐한 향내가 코끝을 간지럽혔다. 8월, 또 지긋지긋한 장마철이었다. 젖은 신발 밑창들이 끽끽 대며 장례식장 복도를 걸어 다녔다. 그것들 중 할머니의 장례식장에 향하는 발길은 없었다.
이젠 아무도 없다. 또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이번에도 신은 내 기도를 들어주지 않았구나. 수년간 생채기에 절여진 마음은 감각에 무던했다.
그 순간, 머리 우에 드리워진 그림자에 고개를 들었다. 잊고 있었던 얼굴이 시선에 들어왔다.
윤강현이 왔다.
텅텅 빈 장례식장에 그가 찾아왔다.
왜. 네가.
검은 양복 어깨에서 물방울이 흘러내렸다.
마음이 덜컹거렸다.
감고 있던 눈을 뜬 세희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급격히 가파오르는 숨을 진정시켰다. 아, 또 과거에 짓무르었다. 이렇게는 안되잖아. 이젠. 한번 떠오른 상념에 파묻히면 안 됐다. 이렇게 흥건히 젖은 채라도, 시간이 지나면 언젠가는 마르게 된다. 자의든 타의든 간에. 계속해서 물을 쏟아붓지 않는 한은.
지금은 겨울이니까. 여름이 오기 전까지는 시간이 많이 남았으니까.
오랜 한기를 머금은 집이 온기를 되찾았다. 그래도 보일러는 쓸만하네. 케케묵은 먼지들을 털어내야 할 차례였다. 그리고는 텅빈 공간을 채워넣어야겠지. 집도, 자신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