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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ch 27, 2025

안아주고 싶고, 본받고 싶은, 아름다운 사람

by 헤매이는 자

그녀는 안아주고 싶고, 본받고 싶은, 아름다운 사람이다.




그녀는 최근 수면이 부족했다.

목이 칼칼하고, 몸도 피곤하다.


사실 그녀는 나와 며칠전 여행을 마치고는 대부분 마음이 힘든 하루들을 보냈다.

매일을 부지런하게 보내긴 했지만, 불확실한 세태 속 미래가 뿌옇게 안개처럼 느껴졌을 것이고,

고생하고 있는 전 직장의 동료들이 눈에 밟히는데 함께 돕지 못해서 미안할 것이고,

야망이 넘치는 그녀가 원하는만큼 요즘 알차게 성장하지 못했다고 느꼈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도 오랫만에 만나는 친구와 즐겁게 웃고 대화하고 돌아온다.

컨디션이 좋지 않아도 주변 모두에게 기쁨을 주는 그녀가 사랑스럽다.


우리가 함께 여행할 때마다 그녀가 만들어준 영상들이 점점 늘어간다.

그렇잖아도 유머와 센스가 넘치는 그녀이지만, 점점 경험이 쌓이니 더 퀄리티가 높아져만간다.


편집에 노력을 들이느라 수면을 더 줄이는 그녀에게 정말 미안한 말이지만,

그녀와의 영상을 보는 것은 오늘 내 삶의 가장 큰 낙이다.

그녀를 보지 못하는 날도 그녀를 볼 수 있으니.


오늘도 그녀는 새로운 작품(?) 을 보내줬다.

내 자신의 목소리를 녹음한 것을 처음으로 들으면 뭔가 이상한 기분이 드는 것처럼,

영상 속 나의 모습은 그다지 마음에 들거나 익숙한 모습은 아니다.


'말하는 게 답답하다', '그녀가 정말 많이 참아주는 거구나' 싶게 하는 모습들이 보인다.

사실 같이 있을 때도 그럴 때가 많다. 내가 말과 행동이 좀 더 부드럽고 능숙했으면 하는 순간들.

나라면 나 자신을 사귀고 싶지 않을 것 같다.


'나 같은 사람을 어떻게 참고 사귀어주는 거야?' 하고 못난 질문을 물어봤다.

그 말에 그녀는 "내 남편 욕하지 말아줄래?" 라고 답한다.


나의 남편을 욕하지 말란 말에 괜한 감동이 온다.

몇 번이고 다시 읽어본다.

이런 사람이 나의 부인이란 게 자랑스럽다.


나란 사람에게는 많은 레이블이 있다. 나이가 들수록 본명보다는 레이블로 불리게 마련이다.

'선생'. '아들'. '친구'. '담당자'. '동료'. '상사'. '부하'. '멘토'.


안아주고 싶고, 본받고 싶은, 아름다운 그녀의 '남편' 이라는 타이틀이 가장 마음에 든다.

내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다시 한 번 기억해보게 된다. 나의 위치를 다시 되새겨본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

그리고 나의 자리는 그녀 곁이다.


이번주의 나는 월화수목금토일 7일을 아침 7시 반부터 밤 12시까지 야근으로 채우고 있다.

목요일이 되니 슬슬 코가 부어온다. 간이 안 좋은 걸까.

키보드와 마우스를 잡은 손목이 조금 아리다. 스트레칭을 해본다.


이렇게 내가 힘들 때, 그녀가 나에게 얼마나 힘이 되는지 생각해본다.

그리고 그 절반만이라도, 내가 그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좋겠다고 기도한다.


그녀와 함께 살 집에 준비해놓을 물건들을 떠올린다.

2주 전 새로이 발매된 Balmuda 의 신제품 Moonkettle 색깔을 골라본다.

성능이 좋으면서도 그녀가 좋아할만한 디자인의 가습기를 찾아본다.


야만인처럼 살던 내가 평소 안 쓰던 물건들도 구비해본다.

얼굴을 닦는 클리넥스라든가. 올리브오일이나, 피넛버터라든가. 좋은 퀄리티의 수건이라든가.

별 것도 안 덮고 대충 자던 나이지만, 추위를 잘 타는 그녀를 따뜻하게 해줄 부드러운 침구라든가.


그녀와 어떤 도시로 주말을 보내러 갈지 상상한다. 그녀와 여행하고 싶은 곳만 점점 늘어난다.

그녀가 좋지 않은 컨디션으로 누울 때마다, 어떻게 안아주고, 귓가에 뭐라고 말해줄지 고민해본다.


언젠가 오랜 시간이 지나,

주름이 늘고 몸이 느려지는 날이 오더라도,

아직도 초롱초롱할 그녀의 눈동자를 더 바라보리라고 다짐한다.


그녀는 따뜻한 차를 마시고 잠자리에 누워본다.

오늘밤은 그녀의 머리맡에 있어줄 수가 없다. 아쉽고, 미안하다.


나의 마음만은 그녀의 곁에 누워본다.

그녀는 안아주고 싶고, 본받고 싶은, 아름다운 사람이기 때문에.




오늘의 그녀는 칼칼해진 목을 안아주고 싶었고,

그런 중에도 일상을 소화하는 모습을 본받고 싶었고,

항상 서로의 곁에 있어주는 마음이 아름다웠다.


그녀는 안아주고 싶고, 본받고 싶은, 아름다운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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