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아주고 싶고, 본받고 싶은, 아름다운 사람
그녀는 안아주고 싶고, 본받고 싶은, 아름다운 사람이다.
그녀는 오늘은 운동을 조금 쉬기로 한다.
퍼스널 트레이닝의 여파로 허벅지가 아프다고 한다.
이렇게 부지런하게 갈고 닦은 덕에 그녀는 세상에서 제일 예쁜 허벅지를 가지고 있다.
치마라도 입는 날에는 나는 그녀의 곁에 붙어앉아 내려다 보는 데에 여념이 없어진다.
그녀와 내가 함께 있는 영상을 보면, 내가 아직 풍기문란죄로 잡혀가지 않은 게 신기하다.
오늘도 그녀가 고생해서 편집한 영상을 본다.
정말 프레임 단위로 그녀는 아름답다. 사람이 어떻게 이렇게 예쁜지, 신기할 정도다.
가끔 그녀가 나의 얼굴을 클로즈업으로 잡아주면, 화면이 급격히 어두워진다.
피부 관리도 좀 더 신경쓰고, 외모에 신경을 써서, 그녀에게 좀 더 어울려야겠다 다짐한다.
어찌 보면 특별할 것 없는 일상들인데,
영상 속 나의 모습은 그녀가 곁에 존재하는 것만으로 정말 의미 있고, 신이 나 보인다.
그녀는 내가 잘 몰랐던 것을 깨우쳐주고,
내가 관심이 없던 것에 관심을 갖게 하고,
좋아했던 것을 더 좋아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그녀와 영화관을 갔던 날의 영상을 보니, 그 날 봤던 영화의 장면들이 떠오른다.
"A Complete Unknown". 걸작이었다. 10점 만점에 9점.
티모시 샬라메가 제작하고, 동시에 주연을 맡아 열연한, 밥 딜런의 전기 영화이다.
버락 오바마가 추천한 영화이기도 하고, 많은 시상식에서의 수상으로 최근 재개봉했다.
나는 밥 딜런의 노래도 몇 개 모른다.
하지만 그녀의 손을 141분 동안 잡고, 크레딧이 다 올라갈 때까지 즐겼기 때문인지,
마치 그녀와 둘이 손 잡고 1960년대 미국으로 돌아가, 함께 포크 페스티벌을 찾은 느낌이었다.
음악에는, 그 음악을 처음 들었을 때의 상황과 장소로 나를 데려가는 힘이 있다.
앞으로 내 평생 밥 딜런의 음악이 어디선가 흘러나오면, 그녀를 떠올리게 될 것이다.
영화 속 나온 뉴욕의 아이코닉한 장소들이나, 페스티벌이 열리는 뉴포트에도 그녀와 여행하고 싶다.
포크 페스티벌은 보통 매년 7월에 열리는 것 같다. 야외에서 덥겠구나- 하고 미리 걱정해본다.
이렇게 그녀와 함께 찾아가고 싶은 장소들만 하릴없이 늘어난다.
포크라는 음악에 대해 관심도 없었던 내가, 커피를 픽업하러 나가는 길에 밥 딜런의 음악을 듣는다.
좋은 영화에는 이런 영향력이 있다. 그리고, 그녀와 같은 좋은 사람에겐 더 큰 영향력이 있다.
사람은 살면서 많은 사람들의 영향을 받는다.
부모님. 선생님. 친구들. 역사적인 위인. 좋아하는 연예인.
한 사람의 인생에 있어서, 좋은 사람에게 좋은 영향을 받는 것은 정말 중요한 일이다.
그녀를 알고 지낸 시간은 내 인생의 절반 정도일 뿐이지만,
그녀는 내가 아는 그 누구보다 나에게 큰 영향을 미친 사람이다.
나의 관심사를 바꿨고, 나의 인생의 목표를 바꿨고, 나의 건강을 바꿨고, 나의 루틴조차 바꿨다.
그녀는 고상한 취향을 가지고 있어서, 수더분한 곳에서도 아름다움을 찾아낼 줄 아는 사람이다.
그래서 그런지, 나의 취향도 자연스럽게 그녀를 따라가게 됐다.
그녀가 좋아하는 것이 좋고, 그녀가 싫어하는 것은 싫고, 그녀가 사랑하는 것이 사랑스럽다.
내가 평소 워낙 심드렁한 표정이고, 관심이 부족한 부분에 대해 취향이 도드라지지 않아서,
그녀가 나에게 어울릴 법한 옷을 골라 입혀줄 때, 더 호응해주지 못했다. 아쉽고, 미안했다.
그녀가 '예쁘다~' 고 칭찬해줬을 때, 사실 날아갈 것처럼 기뻤는데.
그녀도 나를 매일 따라와줬다. 그녀가 관심 없던 분야도, 내가 좋다면 함께 참여해줬다.
우리는 취미가 원래 비슷한 편이긴 했지만, 우리의 원은 서로 더욱 겹쳐지고 있다.
교집합이 워낙 컸던 우리 둘이지만, 이러다가 두 원들이 하나가 되어버리기 직전이다.
그녀는 최근에 나에게 물었다.
"우리가 평소 취미가 정말 비슷하고 잘 맞아서 참 좋은데, 많이 달랐다면 어땠을까?"
상상해봤다. 사실 지금이랑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다.
내가 절대 안 할 일들도, 그녀가 부탁하면 나는 무조건 할 자신이 있다.
그녀가 전혀 안 해 본 일도, 그녀는 내가 좋다면 쌍수를 들고 환영할 사람이다.
돌이켜보니, 우리는 애초에 취향이나 취미가 비슷한 것이 아니었다.
서로 다른 부분들에 대해 이해하고, 인정하고, 더 가까워질 수 있도록 노력하는 사람들이었다.
상대방의 행복을 위해서 나의 고집을 조금은 누를 수 있다는 게 공통점이었다.
정말 좋은 교집합이라고 생각된다.
그리고 그녀는 나보다 그런 면에 있어 확실히 뛰어나다.
내가 10번 정도 고집을 부려야, 그녀의 고집이 한 번 정도 튀어나온다.
나도 모르는 새, 그녀가 나에 대해 얼마나 많은 순간들을 참아줬을까. 셀 수도 없을 게다.
갑자기 조성모 씨의 노래 "가시나무" 의 가사가 떠오른다.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당신의 쉴 곳 없네"
오늘도 나를 조금 덜어내고, 그녀를 담아본다.
그녀는 안아주고 싶고, 본받고 싶은, 아름다운 사람이기 때문에.
오늘의 그녀는 눈과 귀가 아프도록 열심히 영상을 편집하는 모습을 안아주고 싶었고,
언제나 나를 먼저 생각해주고, 나에게 양보해주는 모습을 본받고 싶었고,
나와 같이 부족한 사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주는 모습이 아름다웠다.
그녀는 안아주고 싶고, 본받고 싶은, 아름다운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