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아주고 싶고, 본받고 싶은, 아름다운 사람
그녀는 안아주고 싶고, 본받고 싶은, 아름다운 사람이다.
3월 31일이다.
1분기가 끝났다. 오늘 마지막으로 야근을 하고, 내일부터 집 청소와 이사 준비를 할 것이다.
그녀 덕에 너무나 행복한 3달이었다. 그녀에 대한 감사의 마음이 오늘도 끓어오른다.
그녀는 아침부터 운동을 열심히 하고, 맛있는 빵을 오픈런해서 사들고 사촌언니 댁을 찾았다.
가족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며, 크게 자랑할 것도 없는 나에 대해서 좋은 이야기만 한다.
누구를 만나도 나를 자랑해주는 그녀가 사랑스럽다.
그리고 내가 그 누구를 만나도, 흠잡을 거리 하나 없이 자랑할 부분 밖에 없는 그녀가 자랑스럽다.
아침부터 운동하고 바쁘게 돌아다녔는데도, 저녁엔 퍼스널 트레이닝도 열심히 받는다.
뻐근한 근육이 분명 집에 사둔 빵을 먹고 싶다 부르짖고 있을텐데, 꾹 참고 집에 들어가지 않고,
밖에서 일을 먼저 마무리한다. 나라를 구할 사람이다.
나의 매일은 '내가 어떻게 이렇게 완벽한 여자를 만났지?' 하는 질문으로 시작하고 끝난다.
그녀는 배울 것이 정말 많은 사람이다. 존중하다 못해, 존경할만한 사람이다.
그녀와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 그녀를 본받고, 닮고 싶다.
그녀와 보름간 여행하고 온 요즈음 자주 드는 생각이 있다.
남이 좋아하는 것을 초 치는 사람이 되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한다.
혼자라면 관심도 안 가졌을 굿즈 컨벤션을 가서, 열심히 창작하는 사람들의 에너지를 봤다.
평소라면 눈길도 안 줬을 핸드폰 케이스 같은 것도 직접 제작해서 커플로 맞춰봤다.
평생 입어보지 않은 스타일의 옷도 입어봤다. 평생 처음으로 가구 디자인에 신경을 써봤다.
새로운 일들이었다. 그리고 그녀와 함께라면 모두 즐거운 일이었다.
예전의 나라면 '왜 저런 데에 시간을 낭비하지' 하고 고까운 마음으로 봤을 것이다.
하지만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과 돈과 시간을 '낭비' 하는 것은, 가장 알찬 소비였다.
특히 내가 그렇게 돈과 시간을 쓰는 것을 항상 고마워해주는 사람과는 말이다.
5월 10일 KBS 아레나에서 레슬네이션이 열린다고 한다.
상대적으로 프로레슬링의 불모지라 할 수 있는 한국에서, 굉장히 마이너한 취미의 대회가 열리니,
신기하기도 하고, 열정이 대단하기도 하고, 사람들이 그에 대해 얼마나 왈가왈부할까 싶기도 하다.
내가 어렸을 때의 또래 남자아이들의 우상은 얼티밋 워리어, 헐크 호건, 마초맨, 언더테이커였다.
그들은 하늘을 날아다니는 영웅이었다. 몸이 부서질 듯이 싸워도 몸이 부서지지 않는 사람들이었다.
프로레슬링을 싫어하는 사람들은, 아이들이 폭력적으로 변하고, 서로 레슬링 기술로 괴롭히고,
학교폭력으로 발전하며, 이런 것을 보고 자란 아이들이 나중에 무엇이 될까 걱정한다.
이런 사람들은 학교폭력의 원천적인 문제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관심이 없으며, 도움 주는 일도 없고,
평소에 뭘 봤는지 모르겠지만, 모든 문화와 미디어를 액면가 그대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이다.
오히려 그런 아이들은 프로레슬링이 '역할 놀이' 임을 인지한 것이고,
아이들이 바보인 것이 아니라, 사회지능이 높은 것이고,
스포츠로서의 문화와의 건강한 상호 작용인 것이다.
축구나 야구를 보다가 싸움이 나서 인명 피해가 있는 경우,
축구와 야구가 문제인 것이 아니라, 인명 피해를 낸 인간이 문제인 것이다.
스포츠는 경쟁하길 좋아하는 인간의 본성이며, 그것을 오히려 협력과 성취로 승화시킨 예술이다.
하지만 편협한 사람들은 모든 것을 1차원적으로만 보고, 원론적으로만 다룬다.
미국 학교에서 총기 사고가 날 때마다 마릴린 맨슨과 에미넴의 음악을 욕하던 부모들은,
가정 교육이 더 중요함을 설파하지 않았고, 정작 관련 법을 바꾸는 데에는 실패했다.
미국 학교에서는 아직도 초등학생들이 총기 사고 관련 훈련을 받는다. 총은 없어지지 않고.
나는 어렸을 때부터 Call of Duty 게임을 했다.
총을 쏘는 게임이, 아이러니하게도, 코로나 기간 내내 내가 사람을 만나는 유일한 창구였다.
가상의 전장에서 함께 손잡고 뛰던 남자들은 매일 대화하는 동지가 되었고,
코로나 격리가 끝난 후에 같이 만나서 밥을 먹기도 했다.
이번주에는 Call of Duty 의 Warzone 모드에, 사라졌던 베르단스크 맵이 컴백한다고 한다.
내가 2020년부터 2021년까지 2년 동안 매일 뛰었던 전장이 돌아온다는 소식이,
옛 친구들이 다시 연락해오는 것 같아서 참 반갑다.
치아 건강에 대해 물어볼 수 있는 치과의사 친구를 만나게 해준 게임.
자동차를 잘 모르는 내가 무슨 차를 살지에 대해 조언할 수 있는 모터매니아를 만나게 해준 게임.
왜 사람들이 게임을 하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코로나로 세상이 바뀌자 게임에 손을 댔고,
게임 업계는, 영화, 음악 등 다른 미디어 업계를 모두 합친 금액보다 많은 매출을 올리게 됐다.
어렸을 때 오락실에 가면 불량청소년 취급을 받았던 때에 비하면 참 격세지감을 느낀다.
돌이켜보면 어렸을 때는 참 이해할 수 없는 사회현상이 많았다.
서태지의 '교실 이데아' 를 거꾸로 틀면 '피가 모자라' 라는 소리가 들린다는 도시전설을 이유로,
한낱 몬더그린 현상 때문에 교회 아줌마들에게 악마숭배자 취급을 받았던 적도 있다.
15년이 지난 2007년, 서태지는 '07 교실이데아 리믹스' 에서 "피가 모자라" 를 직접 삽입했다.
십자가에 매달 대상이 필요했던 교계와 언론에게, 엿이나 먹으라는듯.
노래 부르고 춤추는 것을 '딴따라' 라고 욕했던 사람들은,
월드스타가 되는 한국 연예인들이 지배하는 경제의 세상에서 살게 됐다.
남이 좋아하는 것을 초 치는 사람들을 만나보면, 타인을 이해하고 인정해주는 사람은 없었다.
그런 사람 치고 정작 누구나 본받을만한 취미를 가지고 건강하게 사는 사람은 없었다.
내가 게임을 한다고 한심하게 보던 친구들은 모두 입에서 가까이 가기 싫은 담배냄새가 났고,
내가 열심히 돈을 아끼고 모아서 산 시계 같은 물건 따위 이해 못하는 친구들은,
다시는 안 볼 여자를 옆구리에 끼고 조물락거리며 술에 몇백만원을 쓰다가 밤새 토하느라 바빴다.
나는 그 토사물을 보며, 저 돈의 가치는 얼마이며, 그것을 투자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었다.
하지만 그들을 욕하거나, 돈을 어떻게 투자해야할지 조언하지는 않았다.
다만 다시는 연락하거나 볼 일은 없었다.
내가 싫어하는 것을 티내고 싶은 욕구는 위험한 것이고,
모종의 우월감을 느끼는 것 역시 추저분한 것이다.
당연한 것이지만 세상은 내 중심으로 돌지 않는다.
사실 나 자신도, 나를 마음대로 평가한 친구들과 다를 바가 없었다.
나는 굉장히 편협한 사람이라, 내가 싫어하는 것들은 상종하지 않았고,
나와 다른 사람들을 조금도 이해하려 하지 않았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범죄가 아닌 이상, 내가 좋아하는 걸 할테니, 다른 사람들도 좋아하는 것을 하라고 인정하는 것이다.
나는 그녀와 같이 아량이 넓은 사람을 만나서 다행이란 걸 매일 느낀다.
그녀는 나란 사람과 취미와 특기를 있는 그대로 받아주고 인정해줬다. 그녀는 나보다 어른이다.
나는 그녀만큼 타인을 이해해주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그녀는 본인의 주관이 확실하고 줏대 있으면서도, 다른 사람들을 잘 받아들이는 신기한 사람이다.
그리고 그녀만큼, 사랑하는 사람을 닮아가려는 노력을 기울이는 사람도 본 적이 없다.
그래서 나는 자연스레 그녀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내가 평생 처음 접해보는 것도 무조건 즐거운 액티비티로 만들어주는 그녀라는 존재 덕분에,
나는 더 많은 경험을 해볼 수 있었고, 더 넓은 사람이 될 수 있었다.
앞으로는 그녀와 세상 구석구석을 경험하는 데에 나의 돈과 시간을 쓰고 싶다.
그녀에게 어울리는 물건을 사고 싶고, 나와 그녀의 사랑의 약속을 의미하는 물건을 사고 싶다.
몸에 좋은 음식을 먹고, 공기 좋은 곳에 가서, 따뜻한 분위기에서, 아름다운 작품을 보고 싶다.
똑같은 음식을 먹어도 더 맛있게 만들어주고,
미세먼지가 날리는 날에도 봄바람이 부는 것처럼 느끼게 하고,
꽃샘추위가 와도 나의 몸과 마음을 뜨겁게 해주고,
그 어떤 미술 작품보다 아름다운 그녀와 말이다.
그녀는 나의 세계를 바꿔주는 사람이다.
그녀의 또다른 이름은 신세계다.
그녀는 안아주고 싶고, 본받고 싶은, 아름다운 사람이기 때문에.
오늘의 그녀는 운동하고도 빵을 먹지 않는 모습을 안아주고 싶었고,
그 누구보다 나를 자랑스러워해주는 모습을 본받고 싶었고,
나보다도 더 어른스럽고 자랑스러운 모습이 아름다웠다.
그녀는 안아주고 싶고, 본받고 싶은, 아름다운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