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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ril 2, 2025

안아주고 싶고, 본받고 싶은, 아름다운 사람

by 헤매이는 자

그녀는 안아주고 싶고, 본받고 싶은, 아름다운 사람이다.




오늘은 아침부터 내가 복잡하게 생각했던 것에 대해 그녀가 오해를 풀어줬다.

그녀는 어려울 것 같은 문제도 쉽게 만들어주는 재주가 있다.

뭐, 목소리가 너무 예뻐서 그냥 그런 것 같기도 하고.


매일 러브레터를 쓴다든가, 브런치를 쓰는 것을 잠시 쉴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내 마음이 깎여나가지 않도록 억지스럽고 습관적인 사랑표현은 줄여나가려 했는데,

오히려 그녀의 모닝콜을 해주는 새로운 루틴에 합의했다. 그리고 루틴이 더 생긴 게 너무 즐겁다.

나는 역시나 내 마음의 정답의 반대쪽으로 생각하고 있었구나- 하고 깨닫는다.


적어도 그녀와의 관계에 있어서만은 자기 방어기제를 갖고 싶지 않다.

그런 방어기제는 서로를 이해할 수도, 서로에게 쉽사리 마음을 열 수도 없는 슬픈 존재로 만든다.


내가 좋아하는 애니메이션 "신세기 에반게리온" 에서는 "AT 필드" 라는 개념이 있다.

겉으로 보기에는 거대 로봇들과 괴물들이 전개하는 물리적 방벽인데, 사실 '마음의 벽' 그 자체다.

본질적으로 서로를 거부하면서도 서로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는 모순적인 존재인 인간의 형체.

그런 AT 필드를 없애고, 분쟁과 갈등이 사라진 이상적인 세계의 도래가 "인류보완계획" 이다.


하지만 이 애니메이션의 결론은, 해석하는 바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AT 필드를 잃고 자아를 없애 결국 인간관계의 고통을 느끼지 않으려고 도피하는 것보다는,

적극적으로 타인과 관계를 맺으면서 고통에 맞서고 해결하는 것이 더 낫다- 라는 것이다.

우리네 사회에서 타인과의 관계에서 해방된 순수한 자아란 환상에 불구하며,

단순히 고통을 느끼는 주체인 자아를 없애고 고통을 못 느끼는 것은 진정한 해결책이 될 수 없다.


나는 그녀의 글을 좋아한다.

내가 브런치에 매일 글을 쓰는 것을 보고, 그녀는 종종 나에게 답글을 보내주곤 했다.


한 글자 한 글자가 와닿는 그녀의 글들이지만,

가장 와닿는 표현 중에 하나는 다음과 같았다:


나는 계획과 루틴에 집착하는 사람이다. 그렇지만, '그' 와의 관계에 있어서는 지금처럼, 마음 가는대로 사랑하는 것이 목표였다.


그녀는 2024년 12월 31일에, 한 해를 마무리하고 새해를 맞으며 위와 같은 말을 해줬다.

나는 그녀의 위 말을 본 후로, 나도 그녀를 마음 가는대로 사랑하기로 다짐했고,

또 동시에 오히려 반대로 그녀를 사랑해주는 계획과 루틴에 더 집착하기로 했다.


그런 초심을 잃을 정도로 요즘 내가 몸과 마음이 약해졌구나- 하는 걸 느낀다.

이번주는 매일 칼퇴근하기로 하고, 몸도 더 단단해질 수 있도록, 다시 운동에 박차를 가해본다.

그리고 그녀에게만은 AT 필드를 세우고 싶지 않다고 생각해본다.


그녀가 며칠간 나에게 이야기해주고 싶었던 일상들을 털어놓는다.

그녀를 그리워하고 어려운 마음을 털어놓는 전 회사 동료, 잠시 잃은 몸 건강을 회복하는 중인 친척,

그녀가 나와 갔던 장소에 다시 어머님의 손을 잡고 찾아가보기로 한 일 등을 나눈다.


나도 그녀를 그리워하고, 그녀에게 어려운 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어서 미안하면서도 감사하고,

나와 그녀가 서로를 전력으로 사랑해주고 어디든 함께 다닐 수 있을 정도로 건강한 것이 감사하고,

나의 존재로 인해 그녀가 커리어에 변화를 줄 수 있게 되어 어머님이 기뻐하시는 것에 감사하며,

그녀가 사랑하는 어머님과 다시 가보고 싶을 정도로 나와 좋은 추억을 만들고 다녀서 감사하다.


그녀의 목소리를 들은지 15분만에 다시 나는 다정하게 예쁜 말을 남겨주는 사람으로 돌아온다.

그녀는 안아주고 싶고, 본받고 싶은, 아름다운 사람이기 때문에.




오늘의 그녀는 나를 포근하게 안아주는 모습을 안아주고 싶었고,

우리만의 루틴을 더 만들어주는 모습을 본받고 싶었고,

사랑과 애교가 넘치는 모습이 아름다웠다.


그녀는 안아주고 싶고, 본받고 싶은, 아름다운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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