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April 1, 2025

안아주고 싶고, 본받고 싶은, 아름다운 사람

by 헤매이는 자

그녀는 안아주고 싶고, 본받고 싶은, 아름다운 사람이다.




4월이 밝았다. 만우절이다.

개인적으로 별로 좋아하는 날은 아니다.

어차피 거짓말 같은 비극들이 매일 있고, 서로 거짓말하기 바쁜 사람들 속에서,

일부러 거짓말을 만들어서 서로 골탕 먹이는 날이 있어야 되나 싶다.

뭐, 반대로 생각해보면 그래서 더 유쾌하고 즐거운 거짓말이 필요한 건가 싶기도 하고.


내 삶에 있어서 좋은 거짓말이 유일하게 하나 있다면,

그녀처럼 비현실적인 사람을 거짓말처럼 사랑하고 있다는 것이다.

꿈인지 모를 행복을 오늘도 되뇌어본다.


사실 요즘은 나도 바빴고, 그녀가 '내란 우울증' 에 걸려, 서로 끈끈한 나날들은 아니었다.

우울하고 바쁜 그녀에게 부담을 주지 않는답시고 나는 그녀에게 연락을 줄이고 방임해뒀고,

주변 환경이나 상황을 떠나서, 서로의 관계를 북돋아줄만한 의사소통은 거의 없었다.

그리고 그 결과는 그녀에게도 나에게도 별로 기분 좋은 모습은 아니다.


나는 'Status Quo' 라는 라틴어를 좋아하는 사람이고, 고인 물이 삶의 목표였던 사람이지만,

그녀와의 관계에 있어서는 소홀하지 않고 계속 앞으로 나아가고 싶은 마음이 든다.

작년에 얻었던 '미움 받을 용기' 를 다시 찾고, 좀 더 적극적으로 행동해야겠다.


오늘 거짓말처럼 탄핵심판 선고일이 잡혔다. 4월 4일.

정치적 갈등에 우리네 모든 삶의 현상을 탓하는 것은 이기적인 일이지만,

요즘 그녀의 마음이 힘들었던 것에 큰 영향이 있었던 것은 부정할 수 없다.


나는 나의 정치색을 절대 드러내지 않는다.

친한 친구들에게도 얘기하지 않고, 공개적으로 표한 적도 없고, SNS 에서도 숨긴다.

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고, 정치색은 아무도 크게 바뀌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의 정치색을 이야기하기에는, 나는 그저 방관자일 뿐이다.

평생 집회에 단 한 번 참석해본 적도 없고, 금전적 후원을 한 적도 없다.

내가 좋아하는 후보에게 투표를 하기보다는, 내가 싫어하는 후보를 피하기 바빴다.


신기하게도 여기에다가는 좀 적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브런치는 오픈된 공간이긴 하지만, 나는 오직 그녀만 보라고 이 곳에 글을 쓰고 있고,

그리고 그녀의 삶에 조금이나마 안 좋은 영향을 미친 이 사태가 정말 꼴보기 싫기 때문이다.

내 본명이 아니라, '헤매이는 자' 라는, 어감이 낫다고 맞춤법조차 틀린 익명으로 쓸 수 있기도 하고.

맞춤법 상 '헤매는 자' 가 맞겠지마는, 일관성 있게 맞춤법을 무시하며 막 정치 얘기를 써보겠다.


나는 탄핵에 찬성한다.

비상계엄은 정치 성향과 상관없이 한국에 있는 모든 사람의 자유를 위협하는 심각한 시도였다.

야간 통행증, 차량운행증이 필요하고 결혼식, 장례식이 통제되는 사회가 왔을 것이다.

엄밀히 따져봤을 때 1% 라도 기각 가능성이 보이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탄핵심판 선고일이 확정됐다는 것이 좋은 신호이길 바란다.


내 살아생전에 '계엄' 을 보는 일이 있다니.

그녀와 이사를 마치고 조금 한가해지면 알베르 카뮈의 "계엄령" 을 읽어야겠다고 생각한다.

카뮈는 말했다. "증오에 복종하지 마십시오, 그 어떤 것도 폭력에 내주지 마십시오."

카뮈가 죽은지 몇십년이 지났지만, 경제대국에 선진국이라는 대한민국에서 이러고 있다.


나는 그렇다고 민주당을 지지하는 사람도 아니다. 이재명도 싫어한다. 깡패 같은 사람이다.

차별금지법 제정을 하지 않는 민주당을 보면 사실 세계적인 기준으로 보면 보수당일 뿐이다.

민주당 지지자들의 '니들 때문에 졌다', '니들 때문에 몇석을 못 채웠다' 라는 생떼를 많이 봤고,

뽑아주고도 욕을 먹는 사람들이 많아서, 정이 가진 않는다.

도덕적으로 문제가 많은 의원들도 많고, 내가 민주당원이 되는 일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사실 민주당은 진보적 정치를 할 생각은 없어 보인다.

"한국의 보수는 '진짜 보수' 도 아니다' 라고 말하면서도, 고작 그 '가짜 보수' 를 반대하는 것을,

진보성의 유일한 증거로 여길 뿐, 사회 구조를 문제삼고 고칠 계획은 별로 없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민주당의 윗사람들도 그 구조의 수혜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지금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행보를 보이고 있는 국민의힘도 더 싫어진다.

어차피 이재명이 대통령이 될 것을 알기 때문에 이러고 있는 건 알겠는데,

정말 근시안적인 생각이다. 이러다가는 국민의힘 자체가 무너져내리는 상황이 올 수도 있는데.

독일은 극좌파들이 아나키스트를 자처하는데, 한국은 기득권 수구 우파들이 아나키스트들이다.

그리고 우리 사회는 '내란' 을 넘어, '내전' 상태로 가고 있다.


당연히 윤석열은 파면되고, 김건희는 특검 수사를 받고, 국민의힘은 해체되다시피 해야 한다.

대통령을 잘못 뽑으면, 우리와 같은 나라의 평범한 시민 한 명 한 명이 이렇게 힘들다.

4월 4일에 제발 탄핵이 되었으면 좋겠다. 윤석열은 내려와야 한다.

그래야 서울대 법학과를 나와, 문재인 대통령이 검찰총장으로 임명해 지금까지 잘 부려온 법기술로,

민주시민들에게 민주적 절차에 대한 환멸을 갖게 한 것을 조금이나마 되돌릴 수 있을 것이다.


윤석열 지지자들이 너무 난리를 쳐서 믿기지 않겠지만, 탄핵은 시작일 뿐이다.

시작점에 서기까지 너무 오래 걸렸고, 진이 빠졌다. 하지만 그건 그들이 원하는 일이다.

12.3 내란 혐의자들과 동조자들에 대한 처벌, 법의 허점 보완, 그리고 사회 대개혁을 해야한다.


한덕수, 최상목, 검찰, 경찰, 경호처, 군부, 판사들, 헌법 재판관들은 멀쩡한 나라에서 야당이 되느니,

망한 나라의 여당이 되는 게 백배 낫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헌정 질서를 무너뜨리고 있다.

현재의 대한민국은 '유사' 민주공화국이며, 차라리 사법 귀족정에 가깝다.

헌법과, 당연한 상식과 그동안의 관습마저 '그렇게 딱 안 쓰여있다' 는 이유로 공격당한다.

'위헌인데, 중대하진 않다' 고 슬그머니 넘어가곤 한다.


그들의 언어로는 계엄령은 '평화적 계엄' 이었다.

모순 대잔치다. '술 안 마시는 윤석열' 혹은 '웰빙 사형' 같은 말이랄까.


윤석열이 폭로한 것은 스스로의 무능과 비겁함과 탐욕만이 아니라,

거의 대부분의 비선출직 엘리트들도 그와 전혀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백골단' 따위에 용기를 주고 사회 표면으로 불러냈다.

국회를 부수고, 법원을 부순다. 법치주의에 대한 테러 범죄다.


전두환 사면이 이 나라에 가져온 결과를 보면, 어찌 보면 당연한 수순이라 생각된다.

내란수괴이거나 말거나, '형님' 께 끝까지 충성하니까 부귀영화가 보장된다.

그 사실을 학습한 사람들은 같은 짓을 할 수밖에 없다.

자기 기분이 상했다고 집안 살림을 다 때려 부수는 가부장의 모습이 겹쳐 보인다.


전두환은 본인이 헬기 사격을 지시한 적이 없다고 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윤석열과 박안수 계엄사령관도 병력을 국회로 진입하라고 지시한 적이 없다고 했다.

하지만 실제로는 최신 야간투시경을 쓰고 실탄을 장착한 군인들이 들이닥쳤다.


무능하고 부패한 엘리트들이 망쳐놓은 사회는,

출근길에 시위에 참여하고 일터에서 자기 일을 묵묵히 수행하는 사람들 덕분에 굴러간다.

바로 내가 사랑하는 그녀와 같은 사람들 덕분에 그냥저냥 굴러간다. 울화통이 터진다.

그리고 이 난리통에도 청소노동자들은 쓰레기를 치우신다.

대한민국은 윤석열 같은 사람들이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저런 분들이 움직인다.


정치는 국회에서만 이뤄지는 게 아니다.

계엄 해제를 가결시킨 것은 국회이지만,

그 국회에 군인들이 들어가지 못하도록 막은 것은 바로 내가 사랑하는 그녀 같은 사람들이다.

하지만 그 폭도와 같은 군인들이 사회 지도층의 수족이라는 것이 무서운 현실이다.


현재 한국의 지도층은 엘리트 만능주의로 가득차 있다.

최근 부모가 좌파인데 자기를 엘리트로 만드려는 이중성에 염증이 났다는,

MBC 사장 아들분의 이야기를 읽었다.

그 이중성 자체는 이야기해볼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게 염증이 나는데 거기서 왜 우파가 되는지는 잘 이해되지 않는다.


의료 엘리트에게 지위와 권한을 줬더니 시민 목숨줄을 걸고 이득을 타진하고,

법조 엘리트에게 지위와 권한을 줬더니 삼권분립을 무너뜨리고 특권층으로 자리잡아 독재한다.

대형교회의 종교 엘리트는 공화국과 민주주의의 주적이라는 사실만 확인되고 있다.

시험 문제 몇 개 더 맞췄다는 이유로 누군가에게 특혜를 더 주어선 안 됐다는 사실만 명백해진다.


그 와중에 최상목은 미국채 2억원을 매수한다. 이해관계 충돌 정도가 아니라, 적극적인 배임이다.

헌법을 어겨가면서 마은혁 헌법 재판관 임명을 막고 있고, 김건희 특검 또한 거부권을 행사했다.

이런 자들이 자유, 저항권, 정의, 법치 같은 단어들을 쓰니, 매일이 모멸감과 분노로 가득찬다.

국토의 1/4 이 불타고 있어도, 고작 분필 그림 지우겠다고 광화문에 살수차를 보내는 정부다.


산불 피해가 더 커진 것도 지금 정부의 문제였다.

문재인 정부도 완벽한 정부는 아니었지만, 국민안전은 국가의 책임이라며,

국가재난관리 컨트롤센터는 청와대임을 공개적으로 천명하고 국가위리관리체계를 재정비했는데,

2022년 8월 매뉴얼에서 대통령실의 '컨트롤타워' 기능을 윤석열 정부가 삭제했다.


윤석열은 반드시 들통날 거짓말을 하는 사람이다. 다시 대통령이 되면 안 된다.

이명박과 박근혜는 그나마 양반이었다. 그럴싸한 말로 번지르르하게 포장하는 타입들이었다.

이명박이 "대운하가 한반도에 꼭 필요하다" 는 거짓말을 했지만,

윤석열은 "대운하 절대 없다" 고 해놓고 바로 다음 주에 착공식을 했을 사람이다.


민주당이 인준한 한덕수는 위헌 행보를 거듭하며 헌재 결정을 무시하고 있고,

심우정 검찰총장은 권력자의 하수인을 자처하고 있으며,

한동훈 같은 사람은 똑똑한 머리를 가진 사람 치곤 자살골만 넣는, '술 안 먹는 윤석열' 이다.

어떻게 쌓았는지 모를 재산만 몇억, 아니 몇십억씩 신고하는 사람들이다.

바보가 아닌 이상 다들 안다. 재산이 그게 다가 아니라는걸.


이런 쓸데없는 엘리트들에 대항하는 사람들은 아이러니하게도 평범한 시민들이다.

광장에 모인 사람들은 흩어지겠지만, 결국 남는 건 장애인, 성소수자, 외국인 노동자들이겠지만,

서로 사랑하는 사람들끼리, 서로가 서로의 광장이 되어주었으면 좋겠다.


K-Pop, K-Food, K-Culture 가 자랑스럽게 세계적으로 나부끼는 세상에서,

K-법집행과 K-정치는 부끄럽기 짝이 없다. 서울에 봄이 오질 않는다.


하아, 생각할수록 기분만 나빠지는 주제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나는 위의 말들을 지껄일 자격도 없다.

집회를 한 번 나가봤나. 누굴 후원해보길 했나. 제대로 투표해보길 했나.

'광장과 일반 대중의 괴리' 랄까. 나는 일반 대중 중에서도 일반일 뿐이다.


나는 집에 앉아서 편하게 말이나 지껄이는 사람이다.

사회가 이 지경으로 망가져도 거리로 나서지 않은 사람이다.

잘 먹고 잘 살고, 특권을 누리는 사람이다.

'나의 이야기가 아니니까' 하고 미뤄뒀으니, 이 사태를 일으킨 주범과 다를 바 없다.

삼성이 아무리 노조를 파괴하고 산업 재해를 은폐해도, 최신 삼성폰을 1번으로 사는 사람이다.


나는 아이돌 팬들이 들고 있던 응원봉을 손에 쥐어본 적이 없는 사람이다.

그리고 나의 능력이나 품행이나 사람 됨됨이나 도덕성은 남을 뭐라할 수준이 못 된다.

그러니 오늘 여기에 적은 것을 마지막으로 다시 나의 정치색은 숨기기로 한다.

그리고 그녀의 이상형은 좌도 우도 모르는 사람이다. 싹 잊어버리기로 한다.

나는 '소비자주의' 라는 정치적 태도를 가진 사람이다. 이제 입을 닥치고 조용하자.


전국금속노동조합이 3월 27일에 총파업에 들어갔다.

그 성명문은, 그녀의 나를 향한 러브레터를 빼면, 이번해 내가 읽은 글 중에서 최고로 빛나는 글이다.


--


멈춤으로 움직일 것이다 -- 3.27 금속노조 총파업에 돌입하며


우리는 철을 때리고, 배를 띄운다. 우리가 조립을 하고, 만물을 만든다. 금속 노동자의 손에서 시작되는 나라, 금속노조가 일군 민주주의, 이 전부를 윤석열이 그날 밤에 파괴했다.


역사는 폐허로 남기를 거부했다. 광장은 우리를 불렀고, 빛을 수놓았다. 잘려져 나간 민주주의 숲에 다시 싹을 틔웠다. 싹이 자라날 시간은 헌법재판소의 몫이었다. 그러나 헌법재판소는 억겁을 버리며 민주주의에 질식을 불렀다. 어둠 속 계엄군의 총칼이 이제는 보이지 않는 교수의 밧줄이 되어 오천만의 목을 조르고 있다.


우리는 숨을 쉬어야 한다. 민주주의라는 공기를 마시고, 살아있는 노동을 해야 한다. 그렇기에 죽은 노동을 거부하고, 민주주의를 구하는 길에 나선다. 오늘 금속노조의 총파업은 민주주의에 숨을 불어넣는다.


금속노조는 기다리지 않는다. 판단을 구하지도 않겠다. 금속 노동자의 손으로 직접 윤석열을 끌어내리고, 민주주의를 지켜내겠다. 금속노조 총파업으로 새로운 세상을 건설할 것이다.


--


이 글을 쓰신 분들에게 밥 한 끼라도 사드리고 싶다.

지난 12월부터 그녀와 여행할 때마다 항상 한국의 정치 상황이 신경이 쓰였다.

그녀와 둘이 오붓하게 밥을 먹을 때, 그녀 외엔 아무 것도 신경쓰이지 않는 날들이 오면 좋겠다.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하는 평범한 날들이, 그저 당연할 수 있는 삶이 오면 좋겠다.


그녀가 우울한 중에 술을 마신 것을 보면 기분이 좋지 않았다.

술은 기분 좋을 때 적당히 마시면 참 좋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우울할 때 몸에 해로운 술을 마시면, 나를 깎아 나를 지탱하는 모양이 되는 것 같다.


정말 정치 따위 신경쓰고 싶지 않은데,

내가 사랑하는 그녀에게 직접적으로 악영향이 가니 짜증이 난다.


희망을 만들고 지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거듭 배우는 최근 몇 달이다.

다 필요없고,

그냥 제발 그녀를 우울하게 하는 일이 좀 줄어들면 좋겠다.

그녀가 더 행복하도록.

그녀는 안아주고 싶고, 본받고 싶은, 아름다운 사람이기 때문에.




그녀는 안아주고 싶고, 본받고 싶은, 아름다운 사람이다.

그리고 그녀가 행복했으면 좋겠다.

keyword
이전 14화March 31, 2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