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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ril 4, 2025

안아주고 싶고, 본받고 싶은, 아름다운 사람

by 헤매이는 자

그녀는 안아주고 싶고, 본받고 싶은, 아름다운 사람이다.




오늘은 역사적으로 중요한 날이긴 하지만,

뭐 나에게는 그녀의 스트레스가 줄고 기분이 좀 더 좋아진 게 참 좋은 날이었다.

이렇게 내가 원했던 결정이 난 것은, 과장 하나 안 보태고, 그녀와 같은 사람들 덕분이다.

대한민국은 그녀에게 감사해야 한다.


아무리 즐겁고 신나는 일이 있어도 뇌 한 구석에는 뭔가 걱정이 도사리는 듯한 불쾌한 감정과,

박근혜 때보다도 더 확실히 법적 요건을 만족시켜서 만장일치로 당연히 진행될 사안에,

그녀를 포함한 수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긴 시간을 마음 고생을 뭐하러 해야했나- 하는 억울함을,

그래도 상식의 반대로 되지 않아서 다행이다- 하는 안도감으로 눌러본다.


종종 워낙 염세적이고 비관적인 성격의 나로서는,

앞으로 정국이 얼마나 더 혼란스러워질 것이며, 지금의 기쁨을 압도할 비극이 생길까 걱정이 된다.

지금 이게 끝난 게 끝난 게 아닌 것 같다는 기시감이 든다.


박근혜가 탄핵되고 윤상현은 말했다.

"국민들은 1년이면 잊는다. 박근혜 때 끝날 줄 알았던 내가 또 당선되더라."

갈기갈기 찢어진 대한민국이 어떻게 회복할지 기대 및 걱정이 된다.

뭐, 나는 도움이 못 되는 사람이니 그냥 먼 발치서 지켜볼 뿐이지만.


아침에 짧게 그녀 목소리를 듣고,

템퍼피딕에 전화해서 '수면 전문가' 라는 멋진 타이틀을 단 상담사님을 통해 매트리스를 주문했다.

그녀는 내가 '수억' 의 돈을 쓴다고 고마워하고 미안해한다.


수억을 쓰지도 않았고, 그녀에게라면 나는 수십억을 쓰고 싶지마는,

그녀는 나의 '추억' 이니 수억보다 더 써야한다고,

함께 추억을 만들어 나가자고 말장난으로 답해본다.


그녀는 신기한 사람이다.

그녀와 있으면 작고 평범한 순간순간이 소중한 추억이 된다.

'추억' 이란 단어에 어울리는 노래를 들으며 점심을 픽업하기로 한다.

Day6 의 노래 "한 페이지가 될 수 있게: Time of Our Life" 를 듣는다. 드럼 비트가 흥겹다.

그 가사가 오늘따라 와닿는다.


아름다운 청춘의 한 장 함께 써내려 가자

너와의 추억들로 가득 채울래

아무 걱정도 하지는 마, 나에게 다 맡겨 봐

지금 이 순간이 다시 넘겨볼 수 있는

한 페이지가 될 수 있게


2019년에 발매된 이 곡의 후반부 가사는 우연히도,

왠지 탄핵이 되길 기다리느라 몸도 마음도 고생한, 그녀와 같은 사람들의 이야기로 다가온다.


솔직히, 말할게 지금이 오기까지

마냥 순탄하진 않았지

오늘이 오길 나도 목 빠져라 기다렸어

솔직히, 나보다도 네가 몇 배는 더

힘들었을 거라고 믿어

오늘을 위해 그저 견뎌줘서 고마워


나는 그냥 방관하고 있었는데.

그녀를 포함해, 많은 사람들이 정말 너무들 고생이 많았다.


그녀는 그 누구보다 신나지만 평범한 하루를 보낸다.

오늘도 열심히 운동한다. 오늘도 열심히 일하고, 내일은 아침부터 일터에 오픈런할 계획을 세운다.

가스라이팅 발언이지만, 나는 그녀에게 토요일 아침 백화점 오픈런을 하는 삶을 주고 싶었다.

하지만 그녀는 그 누구보다 알차게 하루를 보내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을 사랑하게 돼서 다행이다.


그녀는 "너무 신나는데 표현할 길이 없다" 고 하소연한다.

글쎄, 그녀가 평소처럼 일하고, 운동하고, 나와 소통하고, 미래를 계획해나가는 모습이야말로,

그녀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그 누구보다 신나는 칼춤을 추고 있는 것 아닐까.


내 마음도 그녀와 함께 춤을 춘다.

그녀는 안아주고 싶고, 본받고 싶은, 아름다운 사람이기 때문에.




오늘의 그녀는 몇 달간 고생한 마음을 안아주고 싶었고,

평소와 같은 루틴의 삶을 살아가는 모습을 본받고 싶었고,

홀로 신나게 춤을 추는 모습이 아름다웠다.


그녀는 안아주고 싶고, 본받고 싶은, 아름다운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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