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가 아팠다. 체를 한 것 같이... 뭐지? 이 기분 나쁜 불편함이란..
배가 불편하다고 얘기를 했고, 무슨 일 있으면 전화하라고 했다.
신랑은 출근을 했고, 배가 불러온 나는 침대에서 배웅을 했다.
왠지 이상한 기분에 혹시 모르니 시간을 쟀다. (지금 생각이지만 시간을 잰 건 현명한 선택이었다.) 30분 간격... 진통이다.
출근한 지 1시간 된 신랑을 불러 산부인과에 갔다. 태동검사를 했는데, 진통이란다. 조기분만을 할 수도 있으니 대학병원으로 가는 소견서를 받아서, 내가 근무하던 병원 읍급실로 향했다. 운전을 하는 데도 간간히 진통이 왔다. 15분... 10분 간격으로 간격은 점점 짧아졌다. 거의 제정신이 아닌 상태로 남편은 버스전용차로로 비상깜빡이를 져 둔 채 마구 달렸다. 응급상황에서는 버스전용차로를 가도 된다고 한다. 응급실에 도착해서 검진을 하는데 이슬이 비친단다. 나는 안다. 신생아실 간호사였으니까.
32주면 무조건 인큐베이터 행이다. 인공호흡기를 달 수도 있고, 산소치료는 반드시 필요하다. 위관 영양을 할 것이고, 수액치료와 항생제도 필요할 것이다. 필요하다면 백만 원이 넘는 계면활성제 치료도 하겠지... 이런 곳에 내 아이를 둘 수도 있다는 생각에 온몸이 떨려왔다. 나는 너무나 많은 것을 알고 있었다. 절망적이던 내게 결혼하기 전까지 근무하던 병원은 위안으로 다가왔다. 같이 일하던 직원들이 잘해 주겠지.
나의 과거의 어떤 경험이 영향을 끼쳤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어릴 때부터 그런 생각을 했다. 나중애 언젠가는 예쁜 할머니가 되어야지. 할머니가 된다는 것은 일단은 엄마가 되어야 하고, 내 아이도 엄마와 아빠가 되어야 비로소 이루어지는 꿈인 것이다. 나와 내 아이가 함께 이루어야 하는 꿈. 물론 내 아이가 원하지 않으면 결혼이나 분만을 강요하고 싶지는 않겠지만, 아이로 인한 행복감은 알려주고 싶다. 너로 인해서 가진 행복이었으니까.
36주가 되어서야 퇴원을 했다. 조기 분만을 방지하기 위한 주사를 한 달 동안을 맞아가며 버텨냈다. 자궁수축을 막아서 조기분만을 방지한 것이다. 심한 두통과 호흡곤란이 부작용으로 오는 약이어서 처음 2~3일 동안은 고생했다. 환자를 간호하는 것은 해봤지만, 산소마스크를 처음 써봤다. 음... 아프지 말아야겠어. 임신부가 호흡곤란이 오면, 아이도 호흡곤란이 올 수 있으니 참지 말고 산소치료를 받아야 한다. 임신 정말 힘들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