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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병 밖을 나온 루기 Dec 01. 2024

나도 내가 이렇게 겁이 많은 줄 몰랐지

제주의 숙소 편 2

두 번째 숙소는 너무 만족했던 곳이라 소개하고 싶다.

특히 미취학 아동과 엄마가 함께 하는 한달살이라면 더욱 추천한다.

애월읍 소길리에 위치한 제주소소펜션이다.

이곳은 일단 내 마음을 편하게 하는 화이트 침구였다.


한달살이는 제주에 한 달을 살러 간 것이지만, 여행의 형태를 띠게 된다.

그렇기에 동네 집 앞에 나가 놀듯, 어린아이들끼리 숙소 밖을 나갈 수가 없다. 외출 시 항상 보호자가 함께 해야 한다는 말이다.


일어나서 씻고, 옷을 입고, 아침을 먹는다. 하루의 여행 일정을 짜고, 필요한 짐을 챙겨서 여행길에 나서게 된다. 매일이 당일치기 여행인 것이다.

여행을 준비하는 엄마들의 아침을 생각해 보라. 하아, 챙길 것이 제법 많다.


그 시간 동안 아이들은 방한칸짜리 숙소에서 '대기'를 하게 된다. 나는 이 시간이 참 아까웠다.

달팽이 같은 나의 준비 시간은 종종 길어졌다. 그것이 부담으로 다가왔다.


반면,  숙소에는 넓은 마당이 있어, 아이들이 언제든 나가 놀 수 있었다.

숙소에서 마당을 찍은 사진

아침에 눈을 뜨면 내가 밥을 짓는 사이 이들은  잠옷바람으로  나가서 킥보드도 타며  뛰어논다.


그리고 이곳이 아이들의 천국인 이유가 있었으니  사장님이  토끼, 말, 염소, 개 등 다양한 동물들을 기르고 계셨다.


사장님이 기르신다고 하지만, 사실 그들에게 먹이를 주는 일은 아이들 몫이다.


동물 먹이주기 체험  무제한 가능
태어난지 얼마안된  아기토끼도 있었다


매일 아침 9시면  무료 승마체험이 있었다.   첫째는  빠짐없이 승마체험에 참여했다.

반면, 둘째는 머무는 기간 동안 한 번도 말을 타지 않았다. 말에 대한 두려움 때문인지, 아니면 그저 흥미가 없어서인지, 항상 승마체험을 거절했다. 마지막날까지 끝내 한 번도 말에 오르지 않아서 속상하기도 했지만, 다음을 기약했다.

아이들이 잡아놓은 장수풍뎅이, 승마체험

대체로 만족한 이곳의 가장 큰 단점은  위치이다. 살짝 외진 곳에  있었고, 산속으로 조금 들어가야만 했다. 혹시나 귀가가 늦어져 해가 진 뒤에 숙소로 돌아오게 되면, 운전하는 길에 내린 짙은 어둠이 많이 무서웠다.


하지만 막상 숙소로 들어오면 많은 아이들이  뛰어노는 풍경에 안심이 되었다.

안전하고  따뜻하며 편안한 숙소였다.


세 번째 숙소는 제주의 동쪽에 해당하는 세화해변 근처였다.  걸어서 5분이면 바다를 만날 수 있어서 산책하기 좋았다. 세화해변을 따라 작은 소품가게를 포함한 상가가 있고, 끝에는 시장이 위치해 있어, 세 곳의  숙소 중에서 인프라가 가장 잘  갖춰진 동네였다


초중고 학교가 모두 근처에 있어,  도서관이 있는 점이 특히 좋았다. 이 동네에 머무는 동안 한낮의 더위를 피해 책을 읽거나 도서를 대출하기도 했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현무암 돌담이  나를 맞아준다. 창문을 열면, 푸른 하늘과 시원한 바람이 '여기 제주'라고 말해주는 듯했다.

제주다운 풍경을 가진 숙소를 찾았기에 그런 면에서 만족스러웠다.


하지만 해가 있는 시간과는  달리, 이곳 역시 밤이 되면   다른 분위기가 된다. 산속이 아니라 해변 근처 마을인데도 거리에 불빛이 거의 없었다. 주변도 고요했다.

1층인 방에는 큰 창이 있다. 밤에 아이와 셋이 숙소에 있노라면 막연한 무서움이 들기도 했다.

(귀신도 사람도 무서운 40대다)

 

한 번은 동네 근처 하나로 마트에  들어갔다 나왔더니 그사이 해 진 거다. 걸어서 집으로 가는 길이 칠흑처럼 어두워서 깜짝 놀랐다.

휴대폰 플래시에 의지해  걸었다. 무서워하는 아이들 앞에서 안 무서운 척했지만, 사실 나도 진짜 무서웠다. 


남편 없이 아이들과 제주에서 지내다 보면  이유 모를 무서움과 불안이 생기기도 한다. 그래서 숙소 내에 공용 공간이 있거나 주인이 함께 있는 곳이면 조금 안심이 됨으로 그런 곳을 추천한다.




바닷가 바로 앞, 동물들과 함께 하는 키즈 펜션, 제주스러운 , 이렇게 세 가지의 특징을 가진 곳에서 묵었다. 

세화해변 근처의 숙소에서

많은 짐을 풀고, 다시 싸고, 옮기는 것이 힘들었다. 하지만 집을 옮길 때마다 매번 설레기도 했다.


다시 제주살이를 한다면 레지던스형 숙소를 선택한다고 했다. 그런데 추억을 떠올리다 보니  이렇게 옮겨 다니는 것도 괜찮은 것 같다.

제주살이를 한번 더 하게 된다면 숙소에 대해서는 또 고민하게 될 것 같다.


고생했든, 편하게 지냈, 지나고 나면 모두 추억이 된다. 그러니 용기 내어 떠나는 것 자체로도 소중한 경험이  말할 수 있겠다.

커피, 책등이 있는 공용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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