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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위에 글 Dec 12. 2024

망상(妄想)

어느 날, 바람에 실려 한 알의 씨앗이 날아왔다

눈치 없는 씨앗이라 외면하려 했지만

그것이 심연(深淵)에 억눌린 욕망의 흔적임을, 

끈적하게 들러붙는 비열한 본능임을 안다


삶의 고단함에 부딪히고

일상의 무료함에 지치고

세월의 무게에 짓눌린다는,

진부한 이유를 나름의 변명으로 포장해 

스스로를 로한다


알량한 양심은 

자기 용서를 위한 밑그림을 그리듯

자책의 굴레 속에서 

잠시 소용돌이를 일으키다 

이내 가라앉는다


어느새, 씨앗은 옹졸한 고집으로

바짝 메마른 심연에 내려앉아

거짓된 치장으로 발아한다

비열한 본능의 뿌리는 깊이 내리고

고상한 변명으로 감싸여

탐욕의 싹을 틔운다

그 싹은 비겁한 몸부림 속에서

혼탁한 이성의 꽃대를 세운다


비열한 본능은 달콤한 입술에 입을 맞추고

탐욕의 욕망은 눈을 감은 채 

쾌락의 수렁을 향해 질주한다

혼탁한 이성은 본능과 욕망에 잠식되어 

타락한 감정 속에 완전히 매몰되고

스스로를 변호하듯 

깊은 침묵으로 암묵적 동의만을 남긴다


암묵적 동의의 그림자 뒤에 숨어

무의미 속에서 의미를 찾으려는 듯 

봉오리는 비굴한 꽃대 위로 

스멀스멀 고개를 내민다


잠시, 머뭇거리다 

결국, 어둠 속에서 봉오리를 터뜨려 

사악한 꽃을 개화하고

사악한 꽃은 진실로 포장한 잎들을 

고요한 도시에 흩날려 

거리를 거짓된 진실로 물들인다


바람이 불고, 별이 빛난다

하늘에도, 도시에도

바람과 별이 가득하다
하늘에는 별이 빛나고
도시에는 별이 바람을 타고 물결친다


바람은 쉼 없이 별의 숨결을 실어 나르고

그 숨결은 어둡게 물든 거리를 뚫고 멀리 퍼져나간다

그리고, 별빛이 강물처럼 흐르는 밤,

어둠에 뿌리내린 사악한 꽃은
별의 숨결에 서서히 시들어가고
별빛은 남은 욕망의 꽃대를 태워버린다


오늘도

도시에는 바람이 불고 별이 내린다

그리고, 바람과 별은
혹독한 이 계절에 새봄을 목 놓아 부르고

그 봄은, 도시의 거리에 희망의 싹을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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