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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사슬

트리거

by 강한솔





가만히 앉아있자니 초조해서 견딜 수가 없다. 얌전하지 못한 다리는 춤을 추고 싶어 한다. 달그락대는 손은 벽을 타고 싶어 한다. 눈동자는 지구 끝까지 구르고 싶어 한다. 목소리는 성대 속에서 넘칠 때까지 끓고 싶어 한다. 어디에도 없는 시선이 날 향해있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메트로놈 소리가 일정하지 않게 귀에서 맴돈다. 나는 곧 세상에서 사라질 것만 같다. 딱, 똑, 똑, 똑. 4분의 4박자다. 나는 그 네 박자에 맞춰 일어나, 두 발 걸어, 낙하를 하면 끝. 새로운 박자가 시작할 때 난 세상에서 사라지는 과정을 겪게 될 것이다. 그 과정은 과연 메트로놈의 몇 박자가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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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째다. 나는 응급실에 밥 먹듯 드나들었고, 그 이유는 다양했지만 결국 뿌리는 하나였다. 여기저기 묶인 검정 실들이 나의 인생처럼 꼬이고 또 꼬여있었다. 엄마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표정에선 어떤 감정도 드러나지 않았다. 유이주 님이세요? 녹이 슨 목걸이를 한 어느 간호사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옆엔 가운 주머니에 손을 넣은 의사가 있었다. 요즘 통 잠을 못 자서요. 술 마시고 자해하면 그나마 잠이 와요. 내 이야기를 유심히 듣던 의사는 습관 참 특이하네-. 하며 갸웃거렸다. 의사의 눈에선 '너의 거짓말을 알아챘으니 속일 생각 말라'는 암묵적 의사 전달이 있었다. 암튼 내일은 보지 말자는 의사의 말에 나는 겨우 고개를 끄덕였다. 허나 저 깊은 곳에서는 내일도 이 자리가 내 자리라는 걸 알고 있었다. 아마 의사 선생님 역시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다. 그는 나를 입원시킬 생각이다. 저 멀리서 응급 입원에 대한 이야기가 오갔다. 지금 당장만 아니면 된다. 내일은 정말. 내일은 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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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하나로는 잠이 오지 않는다. 반 알이 하나가, 하나가 두 알이, 두 알이 세 알로. 점점 늘어나는 개수를 보고도 난 아무런 생각이 없었다. 잠이 안 오면 당연히 약 먹어야지. 난 어떻게든 잘 수만 있다면 됐다. 가끔 이주에게 전화가 수십 통 걸려왔지만, 일어나 아무 일도 없었다고 말하기만 하면 상황은 종료되었다. 평소에 오랫동안 자고 싶다고 말하는 나의 탓인 걸 난 모르지 않는다. 하지만 가끔은 나를 방해하는 이주가 귀찮다.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나 벼랑 끝에 내몰린 것 같아.'라고 은근한 기대를 흘리며 말하던 때, 이주가 그랬다. '나 때문에? 난 그런 적 없는데.' 그때 이후로 이주는 나의 방해물이 되었다. 역시 난 매일 벼랑 끝에 매달려 있다. 그리고 이주는 내 손을 제 발로 밟은 채 날 내려다보고 있다. 그리고 나는 내가 정신을 잃으면 이주 역시 날 놓을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다. 난 그걸 시험해 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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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서부터 참 좋아하던 목걸이가 있었다. 친구와 선물을 교환했을 때 준, 꽤 비싼 목걸이였다. 씻을 때도 빼지 않아 녹이 슬었다. 그럼에도 난 그 목걸이를 뺄 줄 몰랐다. 그게 유일한 내 사랑이었고, 그녀의 마지막이었다. -가망 없는데. 나는 그 말에 얼마나 오열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친구는 죽었다. 얼굴이 모조리 깨져있었고, 형체를 알아볼 수가 없을 정도였다. 나는 본능적으로 손쓸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희망을 걸고 싶었다. 그런데 희망은 가끔 헛된 허상이기도 하다. 터무니없는 망상들을 한지도 벌써 2년이나 지난 것 같다. 그중 유일하게 옳은 생각은 단 하나뿐이었다. 나 어려서부터 좋아했던 목걸이가 있었어. 그리고 새 목걸이로 널 따라갈 수 있게 됐어. 가장 높은 의자를 찾아내야만 했다. 튼튼하고 녹슬지 않는 목걸이 역시 중요했다. 이 의자를 발로 차면 나는 끝이다. 끝, 정말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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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호사였던 딸은 이제 세상에서 사라졌다. 그렇게 죽고 못 살던 제 친구를 따라 멀리멀리 떠났다. 유서에는 부모 이름 한 자가 없었다. 오로지 그 아이에 대한 이야기뿐이었다. 위태로워 보이던 아이에게 돌려준 모진 말들로 나는 천벌을 받은 것만 같았다. 한편으론 두려움도 있었다. 간호사 집안인 만큼 너 역시 그렇게 크라며 이 어미가 주던 압박이 결국 자식을 죽게 만든 것인지.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다. 남편과 이혼하고 혼자 애를 키우던 공이 그 유서 하나로 전부 무너지는 것만 같아, 나는 어떤 가치를 상실하고 말았다. 내가 널 어떻게 키웠는데. 괜한 반발심이 든 것도 사실이다. 어쩌면 나는 딸을 끝까지 괴롭히고 싶은 게 아닐까? 그래서 이렇게 뿌연 연기를 향수라도 되는 마냥 마시며 눈을 감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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